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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기후변화시대, 폭염과 혹한은 일란성 쌍둥이
2018-09-10 08:00:00 2018-09-10 08:00:00
더워도 너무 덥다 싶더니 1주 전엔 하늘이 구멍 난 듯 비를 쏟았다. 기상청에 따르면 가장 무더웠던 올해 폭염일수는 6~8월 집계 31.4일이고 열대야는 17.7일로 평년 3배 이상이었다. 역대 최장이었다는 1994년의 29.7일과 17.4일을 경신했으며, 서울의 열대야 일수는 36일이나 됐으니 도시의 밤은 더욱 곤혹스러웠다.
 
이러한 폭염이 물러가는 8월 말의 초가을을 상상하며 휴가계획을 세웠던 필자는 제주도에서 폭우에 시달렸다. 시간당 120.7㎜ 강우. 제주도 기상관측 이래 최대이며 전국 통계로도 1998년 강화에서 내린 시간당 123.5㎜ 강우 다음인 폭우에 서귀포 바닷가에서 한동안 발이 묶였다. 태풍 '솔릭'이 제주에 오래 머물면서 1000㎜ 물 폭탄을 퍼붓고 동해로 빠져나간 직후라 한동안 폭우가 없으리라는 섣부른 예측은 크게 빗나갔다. 기상청에 따르면 폭염으로 수증기 함량이 높아진 대기가 한반도 상공에 머무른 가운데 북쪽의 찬 공기가 남하하면서 생긴 국지적 강우라고 한다.
 
이런 상태가 계속될 가능성도 있다니 자칫 여름은 폭염, 가을은 장마로 공식화될까 우려된다.
 
한국이 유달리 더웠지만, 세계 또한 더위에 허덕였다. 미국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전 세계가 30도 고열로 시달린 2018년이 2016년, 2015년, 2017년 다음으로 역대 네 번째 더운 해였다. 온열 질환 사망자가 속출했고 곡물과 과일 생산이 줄었다. 전기수출국 프랑스가 냉각수인 강물 온도가 높아지자 원전가동을 중지함에 따라 주변국이 일시 혼란에 빠졌었고 스웨덴도 바다 수온이 높아져 원전가동을 멈췄었다.
 
기온상승은 사회에도 큰 영향을 주는데 기온 1도 상승은 노동생산성을 2% 떨어뜨리고, 범죄율은 1.3% 증가시킨다. UN은 전 세계 GDP가 폭염으로 인해 2030년에 연간 약 2235조원이 감소할 것이라 한다. 프란체스코 도토리 유럽합동연구센터는 지구 평균기온이 3도 오르면 한국, 인도, 영국, 이집트, 아일랜드, 에콰도르의 홍수 피해인구는 3배 급증한다고 진단했다. 파리협약에서 결의한 2도 내외의 상승으로도 피해인구는 2.3배 늘어나며, 1.5도로 최대한 억제해도 피해인구는 1.8배 이상 늘어난다. 한마디로 재앙의 연속이고 상상 이상의 경제적 피해가 뒤따른다.
 
이러한 이상기후에 대해 엘레나 마나엔코바 세계기상기구(WMO) 사무차장은 '미래의 시나리오가 현재 나타난 것'이라 했다. 무엇보다도 기후변화는 반드시 지역·국가 간 갈등과 계층 간 갈등을 동반하기에 더욱 위험하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기후변화에 여전히 무관심하다. 나와는 무관하다는 사고가 편재한다. 더웠던 고통은 날이 서늘해지면 바로 잊는다. 그러나 이제는 엄청난 혹한으로 시달릴 공산이 크다.
 
폭염과 혹한은 기후변화로 인해 제트기류가 약화됐기 때문이다. 북위 30°~60° 지표면 위 8㎞~10㎞ 상공에는 지구의 자전 때문에 항상 서쪽에서 동쪽으로 강한 편서풍(제트기류)이 분다. 북극 상공은 춥기에 공기가 수축돼 저기압이 발달하고 상대적으로 따뜻한 중위도에는 고기압이 형성되는데, 이 극심한 기압 차를 해소하려는 대류 현상이 제트기류이며 지구기온의 항상성 유지에 기여한다. 제트기류는 북극이 추울수록 강해져 북극한파를 막아주는 성벽이 되지만, 북극이 따뜻해지면 성벽도 약해져 출렁이며 중위도 지역까지 밀려오게 된다. 온난화로 약해져 제트기류가 출렁임에 따라 혹한이 없던 지역에 혹한이 나타난다. 출렁이는 제트기류는 강력한 고기압에 대항할 힘이 없다. 제트기류가 약해져 정체된 대기 상층에 강력한 고기압이 자리 잡으면 정체기간이 길어지게 되고, 이 때문에 엄청난 폭염이 장기간 지속된다. 폭염과 혹한 모두 제트기류의 약화로 발생하는 것이다. 기후변화시대에 폭염과 혹한은 일란성 쌍둥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최근 40년간 온난화로 북극 빙하는 계속 줄고 빙하에 갇힌 이산화탄소 13%가 방출됐으며, 빙하 중 빙질이 단단해 여름에도 녹지 않던 빙하가 이미 4분의 3이 사라져 고작 25%밖에 남지 않았다. 방출된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를 더욱 재촉한다.
 
올여름 우리나라 폭염도 이와 관련이 있다. 몽골과 바이칼호수 인근의 제트기류가 뜨거운 티베트고기압에 밀려 북쪽으로 상승하면서 대기 상층 자리를 내줬고, 대기 하층에는 뜨겁고 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이 자리 잡았다. 이를 열돔(heat dome) 현상이라 한다. 여기에 태풍도 고기압을 밀어내지 못한 채 더 많은 습기를 제공하면서 폭염은 더 강화됐던 것이다.
 
올해 기록적인 폭염은 혹한의 예고편이며 빠르면 10월부터 한파가 시작한다는 보고도 있다. 폭염 뒤에 한파가 따른다는 통계가 별로 없으니 믿을 바 아니라는 반박도 있지만, 지금 일어나는 기후변화는 인류가 처음 겪은 일이기에 당연히 통계가 있을 수 없다. 앞으로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지속될 것이고 일반화될 가능성도 높다. 과장하면 여름의 폭염이 겨울까지 멈추지 않을 수도 있고, 출렁이는 제트기류로 인해 혹독한 한파가 떠나지 않을 수도 있는 불안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러한 기후변화를 완화하려면 사회·문화·기술·교육 등 다양한 요소의 재구성이 모든 국가에서 실행돼야 하지만, 무엇보다 탈화석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에너지전환이 시급하다. 조만간 한국의 향후 20년 국가에너지 방향을 결정하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이 수립된다. 이번 여름 폭염에 놀라 전력공급 차원의 전원믹스에만 치중해서는 곤란하다. 에너지전환의 함의를 되새기면서 계획 내 전원별 비중 조정과 에너지세제개편, 재생에너지비중 확대와 신산업군 성장에 따른 전력수요 예측이 상충되지 않고 조화되도록 면밀히 살펴볼 것을 정부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송상훈 ㈔푸른아시아 지속가능발전정책실 상근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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