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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 스케치) 진짜 투자정보는 주총장에서 나온다
목소리 커진 소액주주…지분 모아 감사선임·배당확대 등 관철시켜
2018-04-04 08:00:00 2018-04-04 08:56:41
[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주총 시즌이 마무리됐다. 주주권익을 스스로 찾으려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공동 대응하는 사례가 많아져 회사 측이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뉴스토마토가 6곳의 주총 현장을 찾아 그 작은 변화들을 취재했다. 가감 없이 현장을 전하기 위해 기자 신분을 드러내지 않았음을 밝힌다.
 
◇소액주주, ‘3%룰’ 걸린 감사선임 타깃
 
국내 기업 상당수는 12월 결산을 하고 있어 정기주주총회는 3월에 집중된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결산 90일 이내에 주총을 끝내고 사업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 올해는 휴일이 끼어 4월2일이 사업보고서 제출시한이었다.
 
올해 주총도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임직원을 동원해 “이의 없습니다”, “동의합니다”를 형식적으로 반복하며 주총 안건들을 통과시키는 풍경도 비슷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주권을 행사하려는 소액주주들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기업들도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감사위원을 선임 또는 해임 의결할 때 주식지분을 3%까지만 인정하는 ‘3% 룰’도 소액주주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그에 따른 변화도 감지됐다. 소액주주 측에서 추천한 감사 후보를 선임하거나 회사가 추천한 감사의 선임을 반대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서 일부는 통과되기도 했다.
 
3월 29일 서울 강서구에서 열린 그랜드백화점 주총에서는 소액주주들이 ▲감사 선임 ▲액면분할 ▲자사주 소각을 주주제안으로 올려 이중 감사 선임은 통과됐고 액면분할과 자사주 소각은 부결됐다.
 
이에 앞서 23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KISCO홀딩스 주총에서도 ▲감사 선임 ▲주식 액면분할 ▲배당 확대 등이 안건으로 올라왔다. 표결 결과 감사 선임은 불발됐지만 액면분할과 배당 확대 안건은 통과됐다. 주주의 권리를 적극 행사하려는 소액주주들의 노력이 미미하지만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삼천리, 농심홀딩스, 대한방직, 한국가구, 대웅, BYC, 조선선재, 티엘아이 등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소액주주들이 모여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대주주의 벽이 높아 성공보다 실패 사례가 많아도, 흩어진 채로 산발적인 항의만 하다 돌아가던 과거와는 딴판이다.
 
물론 아직도 다수의 현장은 그렇지 못하다. 주주가 주총에라도 참석하면 다행이다. 신일제약 주총은 27일 충북 충주시 양성면 본사에서 열렸다. 평일에 외진 곳까지 찾아올 수 있는 주주는 많지 않겠지만 개인 참석자는 기자 한 명뿐이었다. 주총은 행사 순서에 맞춰 발언할 내용까지 미리 써둔 유인물을 그대로 따라 읽는 직원들에 의해 진행됐다.
 
그럼에도 이런 자리마저 주주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주총이 평소의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개인 주주가 별로 참석하지 않는 주총에서는 회의 시작 전 회사 관계자가 먼저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진짜 주주인지 ‘주총꾼’인지를 구별하기 위해서다. 이럴 때 주총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을 약속하고 별도의 질의응답 시간을 달라고 요구하면 대개 받아들여진다. 보통 재무담당 임원이나 주식담당자가 응대하지만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는 경우도 있다. 신일제약 역시 정미근 대표가 직접 질문에 답하며 주총에 와준 데 대한 감사인사를 전했다.
 
◇투자정보 없는 비상장기업, 주총 가야 궁금증 풀 수 있어
 
상장기업은 주총이 증권사의 리포트나 뉴스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비상장기업은 다르다. 기업 규모에 따라 분기보고서를 공시하는 곳도 있지만 K-OTC에 올라있는 기업이라고 해도 1년에 딱 한 번, 한 장짜리 감사보고서만 내는 곳도 많다. 종목 리포트도 없고 뉴스도 찾아보기 드물다. 그래서 비상장기업에 투자하고 있다면 주총에는 반드시 참석할 필요가 있다.
 
K-OTC 등록기업인 대우산업개발 주총은 23일 인천시 남동구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렸다. 큰 공연장 좌석이 휑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 참석했지만 거의 대부분 직원이었다. 주총은 10여분 만에 일사천리로 끝났다. 질의응답 시간을 요청해 재무부서 부장을 비롯한 일부 직원과 마주 앉아 묻고 답한 내용은 이렇게 대면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같은 K-OTC 기업임에도 개인 주주들이 대거 몰려든 주총도 있다. 29일 경기도 성남시 성남산업진흥재단 대강당에서 열린 지누스 주총에는 사측이 준비한 유인물이 동날 정도로 많은 주주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미국 아마존 매트리스 판매 1위로 유명한 기업이다. 올해 기업공개(IPO)가 예상돼 투자자들의 관심이 크다.
 
지누스도 주총 안건이 많다며 질의응답은 안건 표결 뒤로 미뤘다. Q&A에서 나온 개인 주주들의 질문은 구체적이고 날카로웠다. 회사의 동향과 실적에서부터 아마존과의 이익배분 방식과 경쟁상황, 판관비 증가의 원인이 된 원자재(TDI) 가격 동향, 상장 준비 등에 관한 질문이 쉴 새 없이 쏟아져 12시가 다 돼 서둘러 마무리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지누스는 IFRS에 맞춰 재무제표를 작성하느라 수정할 것이 많아 감사가 늦어졌다며 이날 재무제표 승인을 안건에 올리지 못했고, 사업보고서 제출 마감시한인 4월2일 오후에 계속회를 열어 통과시켰다.
 
◇상장펀드 주총에선 마음 편히 Q&A
 
개인 주주들의 참여비중이 비교적 높은 주총이 또 있다. 상장펀드의 주총이다. 상장펀드 상당수가 분배금 수익률을 내세워 상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상장펀드를 은퇴자산 등으로 활용하는 투자자들이 많아 주총장에는 중장년층 참석자가 많은 편이다.
 
15일 서울시 중구 청소년수련센터에서 열린 하이골드12호 선박펀드의 주총에는 전체 발행주식의 4분의 1 미만이 참석, 의결정족수 미달로 27일로 주총을 연기하고 폐회됐다. 운용사 관계자는 상장펀드의 경우 이런 일이 가끔씩 생긴다고 전했다. 다행히 27일에 열린 계속회에서는 안건을 처리할 수 있는 주식이 모여 안건을 의결했다.
 
정족수 미달에도 참석 주주들을 위한 Q&A 시간은 마련됐다. 주주들은 이미 펀드 청산 기일이 두 차례나 연장됐는데 한 번 더 연장하는 데 따른 위험은 없는지, 분배금은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지, 중고선박 가격 동향은 어떤지 등을 물었다.
 
대표적인 상장펀드인 맥쿼리인프라는 올해 주총이 열리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맥쿼리인프라 펀드는 재무제표를 주총이 아니라 이사회에 올려 통과시켜도 된다”며 “정기주총은 감사를 선임이나 보수 승인 등 주요 안건이 있을 때 개최한다”고 설명했다. 감사이사의 임기는 3년, 3명 감사 중 1명은 내년, 2명은 내후년에 재선임해야 하므로 3년에 한 번 주총을 거르는 것이다.
 
한편, 국내 증시에 상장된 외국기업들은 사업보고서 제출시한에 30일 더 여유가 있어 대부분 4월에 주총을 개최한다. 경영상황이 악화된 데다 한국 주주들과의 소통에도 문제가 있어 몇 년째 갈등을 빚고 있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올해에도 이들의 주총장 분위기는 뒤숭숭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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