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5G 필수설비 공유, 씁쓸한 합의
입력 : 2018-01-14 15:21:58 수정 : 2018-01-14 15:21:58
5G 선도국가를 향해 가는 과정에 ‘대의를 위한 희생’ 등 우려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정부가 이동통신 3사를 중재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려는 효율성은 이해되나 그것이 어느 한쪽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정당성, 합리성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 절차에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 전 정권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촛불민심을 통해 출범한 새 정부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향해가는 여정에 일말의 불합리가 있어선 안 될 것이다.
 
정부는 5G 상용화를 앞두고 통신 3사로 하여금 필수설비를 공유토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에 있다. 요컨대 KT가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필수설비를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빌려 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필수설비는 전주(전봇대), 광케이블, 관로 등 전기통신사업에 필수적인 유선설비를 말한다. KT는 필수설비 공유에 난색을 표했으나, 최근 조건부 찬성으로 돌아섰다. 필수설비를 나눠 쓰면 중복투자를 방지해 비용 효율을 높이면서 5G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시점도 앞당길 수 있다. 결과만 보면 KT의 결정은 국가적으로 바람직하다. 하지만 KT의 결정이 있기까지 과정은 썩 좋지 못했다.
 
KT는 당초 무분별한 개방이 타 사업자들의 ‘무임승차’로 이어져 투자를 위축시키고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며 필수설비 공유를 반대했다. 굳이 이 같은 부작용이 아니더라도 자유시장경제에서 자신이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구축한 설비를 나눠 쓰라고 하면, 더군다나 경쟁사에 빌려줘야 한다면 반발은 자연스럽다. 이번 3사의 협력은 암묵적인 담합에 대한 의심도 낳는다. 국가적 대의를 위한 명분으로 예외가 허용됐지만, 예외란 말 그대로 일반적 규칙이나 정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가급적 있어선 안 되는 일임에도 정부가 강요하는 듯한 모습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부터 기자단 송년간담회 등 수차례 대외적으로 “필수설비를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그것이 KT에 공공연한 압박으로 비쳐지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KT는 정권 교체기마다 CEO 교체의 잔혹사를 반복하는 주인 없는 기업이다. 이번 사례 역시 KT가 억지춘향 식의 찬성 의사를 밝힌 것으로 시장은 바라본다. 그간의 사정을 고려했다면 정부는 철저히 '물밑 중재'에 그쳤어야 했다.
 
KT는 5G 상용화를 놓고 SK텔레콤 등과 일전을 앞두고 있다. 결과에 따라 시장 구도가 송두리째 뒤바뀔 수도 있다. 5G는 단순 통신망의 개념을 넘어 4차 산업혁명의 필수 인프라로 인식된다. 주력인 무선사업이 극심한 정체를 빚고 있는 상황에서 그간 공 들였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때문에 엄격히 해석하면 이번 KT의 결정은 주주가치에 반하는 배임행위로까지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답을 정해놓고 KT 결정을 유인했다.
 
정부의 개입은 필요하다. 단, 조건이 있다. 애덤 스미스가 주장했던 시장의 자유방임주의는 자원의 최적배분이 일어나지 않는 모순이 드러났다.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골자인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는 국가재정 파산 위기를 초래했다. 어느 쪽도 정답은 아니었다. 자본 논리로 시장이 자연스럽게 발전하며 자본이 낭비되는 곳엔 정부의 조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하거나 사회적 합의를 깨뜨리지 않도록 정부가 보다 세밀하고 합리적이며 신중한 접근으로 다가서야 할 것이다.
 
이재영 산업1부 재계팀장 이재영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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