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과로사회와 죽음의 행렬
입력 : 2017-09-14 06:00:00 수정 : 2017-09-14 06:00:00
 
북한 핵개발 뉴스의 홍수 속에서도 국민의 일상은 여전히 바쁘게 굴러간다. 10월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돼 추석연휴가 최장 10일로 늘었다고 하지만, 주말 특근과 잔업이 일상화한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는 남의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경쟁과 생산성의 가치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휴식은 사치이고 노동만이 살길인지도 모른다.
 
그러는 사이 ‘과로(過勞)’는 한국인들의 일상이 돼버리는 듯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6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5년 한국 노동자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이었다. OECD 34개 회원국 중 멕시코(2246시간)에 이어 두 번째로 긴 수치이다. 가장 노동시간이 적은 독일(1317시간)과 비교하면 연간 796시간, 99일을 더 일한 셈이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장시간 노동은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파괴한다. 멀쩡한 가장이 하루아침에 가족 곁을 떠나야 하는 과로사가 다반사로 발생하고, 규제 없는 장시간 노동은 대형트럭과 고속버스를 거리의 흉기로 만들어 한 순간에 가정을 파괴한다. 문재인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을 공약하였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여소야대 국회 탓을 하지만, 여당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여야 정당 모두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동시간 단축과 휴식 있는 삶을 외쳤지만 막상 국회에서는 노동시간 단축 법안을 깔아뭉개고 있다.
 
2004년 주5일제 도입 이후 벌써 10여년이 지났는데,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은 어떻게 가능한가. 노동시간 관련 법이 속빈 강정이기 때문이다. 현행 근로기준법 50조는 주당 40시간, 일일 8시간 이내로 근로시간을 제한하고 있다. 다만 노사가 합의하면 주당 최대 52시간 근로가 가능하다. 그런데 과거 정부는 근로기준법상 ‘1주’를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한 5일로 해석하면서, 실질적인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이라고 봤다. 법은 주당 노동시간이 40시간이라고 말하지만 행정해석으로 주당 68시간까지 늘려 놓은 것이다. 여야 합의로 주당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법제화가 최선이지만 노동시간 단축 논의를 국회에만 맡겨둘 수 없다. 입법이 계속 지지부진하면 정부가 과거 잘못된 행정해석을 폐기하여 주당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규제해야 한다.
 
지체된 노동시간 단축 법안뿐 아니라 정부의 관리감독 부실도 과로 사회를 부추긴다. 올해 들어 연이어 터져 나온 우정사업본부 집배원들의 과로사와 자살 그리고 화물자동차, 고속버스의 대형 교통사고는 휴식 없는 장시간 노동이 만들어낸 참사이다.
 
우정사업본부 집배원들의 과로사 빈발은 사용자가 정부라는 점에서 그 책임이 무겁다. 지난 5일 서광주우체국 소속 집배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해만 벌써 13명이 사망했고, 최근 5년간 70여명이 사망했다. 13명 중 자살이 6명이다. 다른 사망자들도 심근경색, 뇌출혈, 교통사고 등이다. 집배원들의 사망에는 장시간 노동과 인원 부족에 따른 과로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집배원 과로사 근절대책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집배원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1~13시간이고, 휴식은 15분에 불과했다. 월평균 법정근로시간 외에도 평균 57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하고 있지만 연차휴가 사용일수는 평균 3.4일로 나타났다. 매년 4.4회 업무 중 사고를 겪는데도 80%가 병가조차 쓰지 않았다. 내가 쉬면 동료 집배원이 휴가자의 업무까지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정사업본부 경영진의 판단은 다르다. 장시간 노동은 맞지만 전체적으론 연평균 2531시간, 주당 48.7시간이라고 주장한다. 설령 우정사업본부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OECD 회원국의 연평균 1770시간은 물론 한국의 연평균 2113시간과 비교해도 400시간이 더 많다. 이런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것은 국가공무원인 집배원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비정규직 집배원도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규정한 근로기준법 59조에 따라 법정 근로시간을 무한정 초과할 수 있다.
 
대형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졸음운전이 횡횡하는 이유도 운수업이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준공영제가 아닌 지역에서는 대기시간까지 포함하면 하루에 보통 16~18시간씩 일한다. 운수업도 특례업종에 속하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의 규제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 특례업종을 둔 이유가 공중의 편의(便宜)를 도모하는 것이었는데, 현실은 공중 전체에 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더 이상 집배원이 ‘죽음의 직업’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집배인력의 대폭 증원과 노동시간 단축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과로사는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 될 기업 살인이기 때문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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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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