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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시장 '청년상인' 뒤엔 '어른상인' 돌봄 있었다
청년상인 4명 정착기…노하우·SNS 기술 교환하며 상생
2017-04-09 17:15:34 2017-04-09 17:16:02
[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서울 정릉시장이 청년상인과 어른상인의 상생 속에 새로운 활기를 띄고 있다.
 
전통시장 청년상인 육성사업은 전통시장 빈 점포에 청년상인을 입점시켜 전통시장에 젊은 층 고객도 유입하고 청년창업도 활성화하는 취지다.
 
몇몇 성공사례들이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의 시장이 앞다퉈 도입했지만, 정착에 실패한 곳도 적지 않다. 이들의 실패 요인으로는 일천한 청년상인들의 사업경험, 기존 상인들의 반발, 중장기적인 교육·컨설팅 프로그램 부재 등이 꼽힌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0월부터 정릉시장에 문 연 청년상인 4명은 반 년 남짓 지나는 시간만에 고객들과 함께 상인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정릉시장을 만들고 있다.
 
시장의 비수기라 꼽히는 겨울철과 소상공인들마저 문 닫고 광화문으로 이끌었던 탄핵정국 탓에 매출은 아직 ‘대박’까진 아니어도, 바닥을 잘 닦아놓은 탓에 ‘중박’ 이상은 기대할 만하다.
 
정릉시장 율리아청에서 박율리아(26)씨가 수제청을 들고 있다. 사진/박용준기자.
 
지난 7일 정릉천 근처에 자리잡은 2층 ‘율리아청’에서 만난 박율리아(26·여)씨는 익숙하지 않았던 창업 초기에 어른상인(기존 상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정착 비결을 얘기했다.
 
숙명여대 외식경영학 전공으로 전통시장 청년상인 얘기를 듣고 공고도 나기 전에 시청에 전화할 정도로 열정파인 박씨 역시 창업 초기에는 교육·컨설팅을 받았어도 어려운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박씨는 다른 청년상인들과 함께 정릉시장을 일일이 돌며 먼저 어른상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먼저 인사를 건네고 먼저 안부를 묻자 낯을 가리고 거리를 두던 어른상인들이 그 다음부턴 먼저 다가오기 시작했다.
 
박씨 고향인 경북 영천 5일장처럼 정릉시장이 익숙해지자 이제는 박씨의 수제청 솜씨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건강하고 바르게 자란 식재료와 비정제 유기농 사탕수수 원당으로 색소·방부제·합성착향료 없이 만드는 율리아청의 수제청은 창업 초기에는 30·40대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더니 이젠 인근 대학생들까지 즐겨찾는다.
 
박씨는 “어른상인들이 인사를 건네면 항상 반갑게 맞아주신 덕분에 시장은 내게 엄마 같은 이미지”라며 “지금은 서울시 지원이 끝나도 여기서 오래오래 장사하고 있다”며 “여기서 오래오래 장사하면서 내가 만든 수제청으로 여유로운 삶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정릉시장 땡스롤리에서 홍미선(31)씨가 사탕을 들고 있다. 사진/박용준기자.
 
민트색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율리아청에서 나와 시장 상점가로 조금 들어오면 분홍색의 깔끔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사탕가게 ‘땡스롤리’의 홍미선(31·여)씨가 맞아준다.
 
이미 유명 화장품 브랜드 행사에 답례품으로 사탕을 대량 납품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홍씨에게 정릉시장 적응비결을 묻자 “어른상인들에게 사랑받으며 장사하는 기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포장 판매를 주로 하고 온라인 판매 비중이 높은 탓에 평소 가게에 홍씨 혼자 있으면, 종종 어른상인들이 찾아와 “장사 잘 되는거냐”라고 물으며 걱정해 준단다.
 
물론 땡스롤리는 화이트데이나 발렌타인데이 같은 성수기엔 택배 판매를 하지 않아도 이 곳 사탕을 사려고 줄이 늘어서고, 일본인 관광객이 SNS를 보고 먼 길을 찾아올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이 셋을 키우는 경단녀(경력단절여성) 출신의 홍씨는 합성착향료 대신 바닐라빈을 넣어 자극적이지 않은 사탕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홍씨는 제품 자랑에 곧이어 “퇴근 길에 아이들 주려고 떡이나 낙지를 살 때면 어김없이 덤을 더 주시며 예뻐해주신다”며 “이질감 없이 어른들과 지낼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으며, 앞으로도 여기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릉시장 파스타펍에서 강주혁(26)씨가 자신이 만든 음식을 들고 있다. 사진/박용준기자.
 
강주혁(26)씨가 운영하는 파스타펍은 정릉시장의 새로운 맛집으로 꼽히고 있다. 정릉에서만 16년간 산 강씨도 처음엔 정릉 인근에 파스타 집이 많이 없는 만큼 실력만 믿고 창업에 나섰다. 다른 가게에서 4년간 일하며 실력을 쌓았지만 직원과 달리 사장은 신경쓸 부분이 산더미였고 시행착오를 연거푸 겪었다.
 
특히, 강씨는 멘토-멘티 프로그램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강씨를 비롯한 청년상인들은 어른상인들에게 멘토가 돼 어른상인들이 서툰 SNS 활용법과 SNS 홍보를 도와줬다.
 
그렇게 관계를 맺은 어른상인들은 청년상인들의 사업활동에 멘토가 돼 음식점 운영에 필요한 노하우를 맞춤형으로 강씨에게 전수했다.
 
강씨는 “멘토-멘티 프로그램 덕분에 어른상인들과 어울리며 자리잡고 있다”며 “내 가게 하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서로 돕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릉시장 빵빵싸롱에서 청년상인 이현주(39)씨와 어른상인 김영한 성모꽃방(62) 사장이 서로의 제품을 들고 있다. 사진/박용준기자.
 
이현주(39·여)씨가 입주한 ‘빵빵싸롱’은 다른 청년상인에 비해 불리하다면 불리할 수 있는 입지요건이다. 정릉시장 초입과는 멀지 않지만 빵빵싸롱을 가려면 작은 골목으로 한 번 꺽어야 해 접근성이 아쉽다.
 
이러한 빵빵싸롱의 애로사항 역시 어른상인이 해결해주었다. 골목 입구에 있는 반찬가게에서 그 고민을 알고 논의 끝에 기존 ‘천연 조미료 사용’ 현수막에 빵빵싸롱 안내도를 넣어 접근성을 높였다.
 
근처에만 빵집이 3곳이나 있는 악조건은 틈새시장을 뚫는 방법으로 돌파해 나가고 있다. 어느 빵집에나 있는 일반빵은 과감히 포기하고 건강빵, 전문식빵, 컵케이크에 집중한 결과, 지금은 다른 빵집 봉지를 들고도 빵빵싸롱을 온다.
 
첨가물을 넣지 않고 유기농 천연발효로 만드는 빵빵싸롱은 정릉시장 근처에 1인가구가 많은 점에 착안해 일반 식빵 1/3 크기의 큐브식빵을 만들어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맛을 자랑한다.
 
이씨는 “어른상인들이 자주 찾아와 ‘이 시기엔 손님이 없으니 잘 버텨야 한다’고 조언도 해주시고 여자 혼자 하기 힘든 크리스마스 장식할 땐 하나하나 도와주시며 큰 힘이 됐다”며 “골목에 있어도 큰 길에 있는 가게에서 저기 맛있는 빵집 있다고 얘기도 많이 해주신다”고 말했다.
 
빵빵싸롱의 멘토-멘티 관계 어른상인인 성모꽃방의 김영한 사장(62)은 ‘청년상인 전도사’나 마찬가지다. 청년상인 가게 4곳에 전시용 화분을 선물하고 자주 방문해 상품도 구매해 지인들에게 선물로 나눠준다.
 
김씨는 “시장은 젊은 사람들이 필요한 상황에서 청년상인이 와서 고객 연령대가 낮아지고 매출이 오르고 있다”며 “청년상인들이 기존 상인들보다도 더 열심히 하는데 안 예쁠 수가 있나”라고 말했다.
 
정릉시장 청년상인의 교육·컨설팅을 맡은 김상미 ICEO실전마케팅연구소 대표는 “전통시장 청년창업의 핵심은 상생”이라며 “어른상인과 청년상인이 서로의 강점을 극대화해 신규고객 유입과 매출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말했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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