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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깨지고 쓰러져도 국민들이 좋다면
2017-01-12 08:00:00 2017-01-12 08:00:00
어느 시대 어느 상황이건, 어느 계층이건, 어느 직군이건 간에 철천지원수(?) 같은 라이벌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부정하지 못할 건 우리내 인생에서 라이벌은 한계를 뛰어 넘게 만드는 에너지를 제공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트리플 러츠'의 김연아와 '트리플 악셀'의 아사다 마오와 같은 유명인들이라면 그 에너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선사한다.
 
박관종 건설부동산부장
조금 엉뚱하지만 엄청난 라이벌 한 쌍을 소개해 보겠다. 이들은 무려 70여 년 동안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매일같이 쫓고 쫓기는 사투를 벌이며 즐거움을 주는 '톰과 제리'.(비록 생명 없는 캐릭터에 불과하지만)
 
1940년대 초 극장용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소개 돼 1975년 TV방영을 시작한 이후 오늘날까지 사랑 받고 있는 미국의 애니메이션이다.
 
꾀돌이 생쥐 제리와 매번 당하기만 하는 고양이 톰의 좌중우돌 추격전, 그때 마다 벌어지는 상상 불허의 슬랩스틱은 연령을 초월한 재미를 준다. 만화는 아카데미상을 7차례 수상했으며, 심지어 북한에서도 방영됐을 정도다. 그들이 아늑한 주인집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접전은 해가 갈수록 기상천외해 졌고, 요즘 시대에 맞게 진화하면서 여전히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두 캐릭터 이야기는 사실 여기서 다시 꺼내기 식상할 정도의 상식이다. 하지만 건전한 라이벌 관계가 주는 캐미, 사랑받기 위한 지속적인 발전에 다시 한 번 주목해 보자. 최근 대한민국에도 톰과 제리처럼 오래도록 사랑받아야 할 라이벌이 한 쌍 더 생겼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2016년 12월 9일 117년의 대한민국 철도 역사상 최초로 경쟁체제의 포문이 열렸다. 큰형 코레일의 KTX와 큰형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SR의 수서발 고속철도(SRT)가 라이벌의 주인공이다.
 
사실 수서~평택 간 고속열차 노선(총연장 61㎞)이 개통되기 까지는 엄청난 시련이 있었다. MB정권 말기인 2012년 12월 27일, 국토교통부(당시 국토해양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철도 경쟁체제 도입을 내부 결정해 보고한다. 당시 정부가 운영에 참여할 대기업을 염두 해 뒀고, 몇몇 기업들은 벌써 수지타산까지 따져 봤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대기업 특혜다', '철도 민영화 꼼수다'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결국 민간 자본 유치는 논란 속에 수포로 돌아갔으나, 이 노선에 대한 '경쟁체제'를 결정한 정부는 2013년 12월 SR 설립을 주도하고, 고속철도사업면허를 발급한다. 면허발급 과정에서도 야당과 시민단체, 철도노조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정부가 코레일에 지분 41%를 부여하고, 차후 지분 확대 가능성을 열어두며 꾸역꾸역 사업은 진행됐다.
 
그렇게 꼬박 4년 만에 어렵사리 문을 연 SR의 실적이 놀랄 만하다. 딱 한 달 만인 지난 8일 136만명 가까운 승객이 SRT를 이용했다. 하루 평균 4만3000명이 이용한 셈이다. KTX보다 10%정도 요금이 싸긴 하지만 막 탄생한 신생 노선의 인기가 이렇게 뜨거운걸 보면 확실히 범 강남권 수요 예측은 잘된듯하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코레일의 대응이다. 마구 치고 올라오는 동생이 눈에 거슬렸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서비스가 좋아지고 있다.
 
멤버십 회원에게 KTX 이용 요금의 5%를 적립해 주는 마일리지를 3년 만에 부활시켰다. 각종 할인제도도 대폭 개선했으며, 무정차 운행도 더 늘리기로 했다. 사당역과 광명역을 오가는 직통 셔틀버스 운행도 시작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라이벌의 경쟁에서 생긴 질 좋은 에너지인 셈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SRT 개통으로 코레일의 올해 영업적자가 1700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가격 경쟁에 따른 출혈을 적자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애초에 철로가 여러 개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대한민국 철도의 경쟁체제는 같은 선위에서 제살을 깎아먹는 무늬만 경쟁이란 주장이 일면 이해가 간다.
 
거기에 그 불똥이 벽지노선에까지 튈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가 올해 공익서비스 보상 예산을 삭감해 벽지노선의 운행 횟수를 절반가량 축소해야 할 판이란 것이다. 노선에서 수익이 줄고 공익 예산도 줄었으니 사람들이 덜 찾는 노선을 줄여야 한다는 논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두 회사를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통합이니, 축소니 조금 나중에 고민하자. 일단 고객들을 먼저 생각해보자. 100여년 만에 기상천외한 서비스로 감동을 줄 차례가 됐다는 이야기다. 경쟁하며 넘어지고 깨지는 슬랩스틱이라도 앞으로 70년, 아니 100년을 국민에게 사랑 받는다면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박관종 건설부동산부장
pkj31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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