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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국정조사 '애먼 기업'은 그만하자
2016-12-14 17:16:17 2016-12-14 17:18:25
정국 향방을 가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전모를 밝히기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도 재개됐다. 행정부 수반이 관저에 유폐된 마당에, 의혹의 대상은 그 누구라도 증인대에 서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이를 자신의 스타 등용문 쯤으로 착각하는 일부 국조위원들에게 있다. 지난 1차 청문회 당시 빚어졌던 촌극을 생각하면 국회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5공 청문회 이후 28년 만에 재벌 총수들이 국회로 불려나왔지만 새롭게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물론, 이들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법망을 피해가기 위해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 탓이라는 해석도 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방패 앞에 국정조사의 칼은 한없이 무뎠다. 더욱이 일부는 호통치기에 바빴고, 일부는 민원성 발언까지 해가며 여론의 빈축을 샀다. 밤늦게까지 진행된 청문회는 녹음기마냥 도돌이표였으며, 최순실 사태와 전혀 상관없는 질의들도 쏟아졌다. 
 
정작 모든 의혹의 중심에 있는 박 대통령은 약속한 검찰 조사마저 불응했으며, 최순실씨는 국회의 동행명령장 발부에도 국정조사를 거부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도 거주지를 이탈한 채 국회를 농락하기에 바쁘다. 5차 청문회에 우 전 수석이 등장하면 앞선 이재용 청문회처럼 다른 증인들은 들러리가 될 확률이 높다. 출석이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다. 주인공인 최씨의 증인 출석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때문에 나머지 증인들은 혹여 주인공들이 빠질 경우를 대비한 담보가 아닌지 의심된다. 탄핵안의 국회 통과 이후 조기 대선 국면으로 진입하면서 청문회가 여야의 유세장이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최순실 없는 최순실 청문회' 속에 국정조사는 또 다시 애먼 기업으로 칼을 돌리고 있다. 대표적 인물이 황창규 KT 회장이다. 최씨의 측근으로 문화계 비선실세로 군림했던 차은택씨의 증언으로 KT에 대한 광고와 인사 개입 여부 등은 전모가 드러났다. 잘못이 있다면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같은 사실을 또 다시 확인하고, 추궁하고, 호통치고, 그래서 기업에 대한 국민적 반감만 키우는 자리로 흘러서는 안 된다.
  
황 회장은 연임을 앞두고 있다. 내년 3월말 임기 만료 전 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다만 청문회 일정이 다가오면서 내부의 시선은 우려 투성이다. 일부에서는 자존심 강한 황 회장이 면박주기의 청문회 이후 연임 의지를 꺾을 수도 있을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어렵사리 본 궤도를 되찾은 KT가 또 다시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역대 정권마다 외풍에 시달려온 KT가 황 회장 만한 걸출한 CEO를 찾기도 쉽지 않다.
 
황 회장에 대한 안팎의 평가는 극히 우호적이다. 통신 외에 다른 사업들로 손을 뻗치며 재무구조를 망쳤던 이석채 전 회장과 달리 황 회장은 통신 본연의 경쟁력을 되찾게 했다. KT렌탈과 KT캐피탈 등 비통신 자회사들을 매각하는 한편 방만경영으로 지목받던 몸집 줄이기도 단행했다. 일선 고객센터까지 챙기는 현장경영에 조직의 느슨함도 고삐를 죄게 됐다. 이런 노력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2014년 임직원의 명예퇴직 비용이 반영되며 창사 이래 첫 적자를 기록했지만, 이듬해 매출액 16조9424억원, 영업이익 8639억원의 놀라운 실적 개선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올 들어서도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이 1조2000억원을 넘어서며 이미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을 넘어섰다. 무엇보다 꼴찌였던 고객만족도가 1위에 오르며 국민 사랑을 되찾았다.
 
이미 KT는 황 회장 청문회 출석 준비로 연말 인사나 내년 사업계획 등의 차질도 빚어지고 있다. 당초 19일로 예정됐던 5차 청문회는 우 전 수석을 끌어내기 위해 22일로 연기했다. KT가 일손을 놓아야 할 시간도 길어졌다. 국조 이름을 빈 정치권의 외풍 때문이다. 정권 색깔에 따라 KT가 흔들리는 고난사를 또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산업1부 재계팀장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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