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건과 같이 기업들이 불법적으로 만든 제품을 이용한 소비자가 사망할 경우 개인당 최고 9억원씩 배상받을 수 있는 안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지 주목된다.
대법원은 지난 20일 곤지암리조트에서 열린 '2016 사법 발전을 위한 법관 세미나'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불법행위 유형별 적정한 위자료 산정방안' 최종안을 도출했다고 24일 발표했다.
최종안은 일단 ▲교통사고 ▲대형 재난사고 ▲영리적 불법행위 ▲명예훼손에 대한 위자료 산정방안 등 4가지를 우선 대상으로 했다. 특히 영리적 불법행위와 대형 재난사고에 대한 산정방안의 경우 기업에 대한 징벌적 취지가 엿보여 주목된다. 그동안 법원은 사망사건에 대한 위자료를 통상 1억원 안팎으로 판단해왔다.
최종안에 따르면, 사업자가 재화·용역의 제조·유통판매·공급 과정에서 불법행위로 불특정 또는 다수의 소비자 또는 일반인을 사망하게 한 경우 위자료는 3억원을 기준으로 한다.
고의나 중과실, 영리수단 또는 방법이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없을 정도로 위법한 경우, 영리행위로 인한 이익규모가 현저히 큰 경우 등의 특별가중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기준이 6억원이다.
여기에 일반증액 또는 감액사유가 있을 경우 재판부는 50% 범위에서 위자료를 증액 또는 감액 조정할 수 있다. 이는 이번에 발표된 위자료 산정 최종안 대상 사건에 모두 적용되는 기본 원칙으로,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건의 경우 특별가중사유와 일반증액사유가 모두 인정되면 재판부는 최대 9억원을 위자료로 선고할 수 있다.
항공기 추락이나 선박 침몰, 건물 붕괴 등 대형 재난사고 사망사건 위자료 기준금액도 2억원으로 합의됐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와 같이 고의적 범죄행위로 인한 사고, 불법행위자의 부실 설계·시공·제작에 의한 경우, 관리·감독 및 운영상 중대한 주의의무 및 안전의무 위반이 있는 경우, 관리·감독기관, 운영·시공업체 등의 결탁·담합·은폐·조작·묵인이 개입된 경우가 드러나면 특별 가중사유로 인정돼 기준금액이 4억원으로 상향된다. 일반 증감액 사유에 따라 기준 금액의 50% 내외에서 증액 또는 감액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주로 개인이 범하는 불법행위인 교통사고나 명예훼손 사건 등에 대한 위자료도 대폭 상향됐다. 교통사고 피해자가 사망이나 이에 준하는 중상해를 입을 경우 위자료는 1억원이 기준금액이며, 음주운전이나 뺑소니의 경우에는 재판부는 2억원을 가중된 기준금액으로 적용할 수 있다.
명예훼손은 고의⋅중과실에 의한 경우 일반 피해는 기준금액 5000만원, 중대피해는 1억원으로 최종 합의됐다. 단 적시한 사실이 허위사실인 경우나 악의적⋅모해적⋅영리적 목적이 있는 경우, 인지도·신뢰도·전파성 등을 고려할 때 명예훼손 행위로 인한 영향력이 상당한 사람이나 단체의 행위 및 이를 수단으로 한 경우는 특별가중사유로 보아 2배 가중된 금액이 적용된다.
한편, 지난 5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피해자와 가족 436명이 국가와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 20여곳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인단은 사망 피해자의 경우 5000만원, 폐 손상 등 질병 피해자들 3000만원, 피해자 가족은 정신적 위자료 1000만원 등 총 112억원을 청구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영리적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산정안에 따르면, 사망피해자의 경우 기본 위자료 3억원원인데다가 중과실,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없을 정도로 위법한 경우 등 특별가중사유 등을 고려할 때 사망자 개인당 최소한 6억 안팎의 손해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등에 따르면, 올해 10월17일 기준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사망한 사람은 총 1012명으로 추산된다. 그동안 수사로 밝혀진 불법행위 등을 반영할 경우 기준금액은 6억원으로, 선고 가능 위자료 총 6070억원이다.
다만,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에 발표된 위자료 산정안은 일종의 권고 내지 참고일 뿐이지 재판부나 법관들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불법행위 유형별 적정한 위자료 산정방안'이 기업의 불법행위 사건 위자료 기준을 큰폭으로 높인 것에 대해 변호사들은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지하는 변호사ㆍ교수모임’ 상임대표인 김현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법원이 위자료 산정안을 현실적으로 정한 것을 환영한다”고 반겼다. 김 변호사는 그러나 “위자료 산정안이 법관의 주관에 따라 같은 사건이라도 차이가 있을 수 있는 만큼 입법적으로 명백히 기준을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회원들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실태 발표 및 국정조사 특위 재구성 촉구'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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