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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인사이트)사무실이 사라진다…생산성 높이는 '자율적 원격근무'
신뢰 기반의 자율적 근무환경 제공…근무시간 연장이라는 비판도
2016-07-20 12:00:00 2016-07-20 12:00:00
워드프레스라는 블로그 제작 프로그램을 만드는 '오토매틱(Automattic)'은 470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그 중 미국 본사에서 일하는 직원은 20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 세계 45개국에 퍼져있다. 이 회사의 근무 형태는 100% '원격근무'다. 직원들은 사무실에 모이지 않고 집, 카페, 소규모 공동사무실 등 원하는 장소에서 일한다. 근무 시간도 제각각이다. 직원들은 개인의 여건에 따라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선택한다. 개인과제 뿐 아니라 집단과제도 원격으로 진행된다. 오토매틱의 직원들은 메신저 슬랙(Slack)을 통해 동료들과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화상채팅 프로그램으로 회의에 참여하며, 업무용 블로그로 협업을 이루는 등 원격근무로 모든 업무를 완성하고 있다.   
 
미국의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오토매틱의 직원들은 전 세계 45개국에 퍼져 있다. 이들은 자율적인 원격근무로 업무를 진행하고 완성한다. 사진/오토매틱
 
IT 업계를 중심으로 시작된 자율적인 원격근무 체제가 확산되고 있다. '애자일 근무(Agile Working)'라고도 불리는 이 근무 방식은 업무의 완성이 중심인 자유로운 근무 형태다. '애자일'은 영어로 '민첩한'이란 뜻으로, 회사가 비즈니스 환경과 직원의 욕구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휴대전화와 초고속 인터넷 등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고, 직원 복지와 근무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근무 체제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애자일 근무는 유연근무제(Flexitime)와 비슷하지만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본 바탕이 다르다. 사무실 출퇴근을 기본으로 하는 유연근무제는 상황에 따라 직원이 근무 시간이나 장소를 조정할 수 있는 데 반해, 애자일 근무는 모여서 일하는 ‘사무실’이라는 공간이 아예 없다. 직원이 각자 자신이 일할 곳을 정하는데, 집이든 카페든 상관없다. 근무 시간도 편의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면 된다. 직원들이 모이는 회사의 사무실은 가상공간에만 존재한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사무실을 떠난 원격근무가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영국 랭카스터대학이 영국의 직장인과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분 혹은 전체적으로 원격근무를 하는 영국인들이 약 1000만명에 이른다. 2017년까지 원격근무제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힌 영국 기업도 전체의 절반이나 됐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미래의 직장은 네트워크가 중심이 된 형태이며 전통적인 사무실 근무 체제는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PwC의 최근 설문조사 결과에서 응답자의 63%는 일일 8시간 혹은 주당 35~40시간 일하는 시스템은 없어질 것이라고 답했다. 68%의 응답자는 미래의 주된 근무 형태로 원격근무를 꼽았다. 
 
컨설팅회사 '글로벌 워크플레이스 애널리틱스(Global Workplace Analytics)'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직장인의 20~30%가 한 달에 한번 이상 재택근무를 한다. 하지만 원격근무를 원하는 직장인은 80%에 이른다. 이들은 "일주일에 2~3일은 회사에서 협업하고, 나머지는 원격근무로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균형적"이라고 답했다. 
 
회사는 생산성↑ 직원은 효율성↑ 
 
자율성을 존중하는 원격근무 형태는 회사나 직원 모두에게 '윈윈'이다. 회사는 근무 시간에 대한 감시 없이 직원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산성은 할당된 업무에 맞춰 직원들이 스스로 근무 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수 있을 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사무실을 없애면 사무실 임대비용도 절감된다. 사무실 유지에 뒤따르는 여러 가지 부수적인 비용 역시 발생하지 않는다. 
 
한편 직원은 고정된 시간에 얽매이거나 출퇴근에 드는 시간을 아낄 수 있어서 좋다. 집중이 잘 되는 시간에 효율적으로 업무를 볼 수 있다. 학창시절처럼 원하는 시간에 편리한 장소에서 혹은 잠옷을 걸친 채로 방해 받지 않고 편하게 일할 수도 있다. 개인의 컨디션이나 상황에 따라 근무 시간을 조정할 수도 있으며, 휴식도 선택에 달려 있다. 또한 가정과 일의 양립이라는 문제도 훨씬 쉽게 풀 수 있다. 
 
이러한 근무 형태는 직원에 대한 회사의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회사는 직원이 근무 시간에 딴 짓을 하지 않을까, 정해진 근무 시간을 채우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애자일 근무는 '업무 완료'를 기준으로 한다. 맡은 업무를 끝내기만 하면 되므로 시간을 적게 쓰고 많이 쓰고는 개인의 선택이다. 회사의 근무 시간 감시가 적합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렇다고 직원이 회사와 소통 없이 독자적으로 일하는 것은 아니다. 직원은 언제든지 회사와 채팅 시스템, 인트라넷 등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임대료·관리비 절감…탄소배출도 감소
 
캐나다 통신회사 텔러스는 원격근무에 기반을 둔 애자일 근무를 일찌감치 도입했다. 십여년 전 한 젊은 직원이 '근무 방식'이라는 제목의 아이디어를 내놓은 데서 시작된 원격근무는 생산성 향상에 큰 기여를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관리를 담당하는 샌디 맥킨토시 부사장은 "직원들에게 근무 유연성을 제공하고 사무실 공간을 줄이며 탄소 배출을 감소하는 방안으로 원격근무를 채택했다"고 말했다. 2만7000여명인 텔러스의 캐나다 직원 중 70%가 현재 '모바일' 근무를 하고 있다. 이들은 집과 사무실, 거래처 등 각기 다른 곳에서 모바일로 접속해 업무를 진행한다. 
 
맥킨토시 부사장은 이를 "엄청난 문화적 변화"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는 회사를 이끄는 중역들의 반대에 부딪혀 도입과정이 순조롭지 만은 않았다며 "이 방식이 직원, 환경, 비용절감을 위해서 옳다고 여기기 시작했을 때 효과가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텔러스 직원들의 업무 성과 점수는 지난 6년간 54점에서 87점으로 61% 상승했다. 텔러스의 사무실 임대비용 등 부동산 관련 지출은 연간 4000만달러 줄었고, 직원들의 통근거리도 연간 3300만㎞나 단축됐다. 이에 따라 환경을 오염시키는 탄소 배출이 연간 8000톤 감소하는 효과를 봤다. 
 
미국 스탠포드대학은 원격근무의 생산성을 연구하기 위해 9개월간 중국의 콜센터 직원들의 업무 완성도를 조사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집에서 근무를 하는 콜센터 직원이 사무실에 나와서 근무하는 동료보다 13.5% 더 많은 전화 업무를 완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원격근무를 하는 직원의 이직률이 50%나 낮아 직장 만족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상 24시간 근무' 비판도
 
직원들에게 자율권 주는 이러한 제도가 오히려 직원들의 근무 시간을 늘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업무 시간이 끝난 후에도 모바일에 접속되어 있기 때문에 직원들은 사실상 24시간 일에 묶인다는 설명이다. 자율적으로 설정한 근무시간은 경계가 모호해 자칫 종일근무로 이어질 수 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메일 수신함을 확인하게 되고 종종 답변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듯 애자일 근무는 자율을 가장한 채 속박을 강화하는 장치라는 비판이 거세다. 
 
미국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버퍼(Buffer)는 2014년부터 애자일 근무제를 시행해 왔다. 그러나 회사의 창립자들은 이 제도가 오히려 직원들의 초과근무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게다가 휴가를 내는 직원도 줄어들었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은 대체로 더 많은 할 일을 찾고 더 오래 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밤 11시에 이메일을 확인하는 상황이 하루에 그치지 않고 일 년 내내 계속되고 있음을 파악한 버퍼는 직원들이 휴가를 낼 때 보상금 1000달러를 지급하는 것으로 직원들의 휴식을 장려했다. 
 
전문가들은 직원들의 업무 시간이 연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프랑스 정부는 근무 시간 외에 노트북과 휴대폰의 연결을 해제할 수 있는 권리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제도는 50인 이상 직원을 고용한 사업주들이 직원들에게 공휴일이나 휴일, 개인 휴가 시 휴대폰 등으로 업무 연장을 하지 말 것을 권유하도록 요구한다. 프랑스 정부에 이어 독일의 대기업들도 근무 시간 외의 이메일을 제한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디지털 홍수가 초래하는 '업무 극대화'라는 문제에 느리게 반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WEF의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선두 기업 중 53%만이 자사의 미래 인력관리 전략이 적절하다고 자신감을 표했다. 이제 기업들은 기술혁명이 가져온 혁신적 업무 방식의 장점과 단점을 균형 있게 맞추어야 하는 까다로운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는 평가다.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개인적으로 방법을 찾아 나선 사례도 있다. WEF의 사회적 기업가 티나 넬슨은 6개월 전부터 새로운 사업개발 과제에 몰두하기 위해 이메일 회신은 금요일에만 하고 있다. 그는 "이 사소한 변화로 인해 업무 전체가 마법처럼 변했다"며 "효율성이 훨씬 높아져 전보다 덜 일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과제에 더 집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동료들과 협업하는 시간도 많아졌으며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늘었다는 설명이다.   
 
신지선 국제경제분석가·미국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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