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의제 국가에서는 국민이 국회의원을 뽑아 권리를 양도하고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특권을 부여한다. 헌법적 권리인 국회의원의 특권은 중세 영국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프랑스는 1789년 대혁명 이후 평민계급의 국회의원들이 금장식이 반들거리고 펠트가 깔린 국회 살롱에 등장해 특권을 부여받기 시작했다. 한국도 1948년 이래 국회의원을 뽑고 특권을 부여한다. 이 국회의원의 특권은 종종 사회적 논쟁의 대상이 되곤 한다.
특히 한국 국회의원들의 무소불위 권력은 심심치 않게 논란을 야기했다. 제20대 국회의 막이 오르자 국회의원의 특권은 다시 도마에 올라 여의도를 강타하는 태풍이 됐다. 발단은 서영교 의원의 가족채용 스캔들. 서 의원은 자신의 의원 사무실을 딸, 오빠, 동생을 채용하는 일종의 ‘가족회사’로 만들어 국민의 공분을 샀다.
서 의원 스캔들에 제 발이 저린 다른 의원들은 부리나케 친인척 채용을 고백하거나 면직시키는 등 웃지못할 해프닝을 벌였다. 이러한 행태는 지켜보는 이들을 씁쓸하게 했다. 한국 국회의원들의 당당하지 못한 모습이 초라했기 때문이다. 친인척을 채용했어도 전문성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면 서둘러 면직처분을 하기 보다 왜 가족 채용이 문제가 되는지 논쟁을 일으키는 편이 더 떳떳하지 않았을까? 가족채용보다는 불공정 특혜 채용을 문제 삼으라고 항변하는 국회의원이 왜 한명도 없단 말인가? 결국 이들의 가족채용은 모두 꼼수였단 말인가? 아니면 여론이 무서웠던 것일까?
프랑스에서 어시스턴트(보좌진) 채용은 국회의원의 특권 중 하나이다. 어시스턴트란 하원 의원, 상원 의원, 유럽의회 의원을 돕는 사람을 말하며 이들은 각각 담당하는 분야가 다르다. 약속을 잡거나 스케줄 관리를 하거나 전화를 받는 일과 같이 비서가 하는 매우 기본적인 일부터, 연설문 작성이나 법률안 수정안 작성 같은 보다 전문적인 일까지 다양하다. 프랑스의 많은 거물급 정치인들은 젊은 시절 국회의원의 어시스턴트로 일한 경험이 있다. 마뉘엘 발스 현 총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프랑스의 국회의원 보좌진 채용 시스템은 한국과 다르다. 각 국회의원은 매월 국회에서 보좌진들에게 지불할 비용 9500유로(1200만원)를 받아 요령 있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재량권이 있다. 국회의원은 자유롭게 어시스턴트를 채용해 국회에 한명, 선거구에 또 한명을 둔다. 그러나 풀타임이나 파트타임으로 다섯명까지 쓸 수 있다.
현재 프랑스 하원에는 2100명의 어시스턴트가 있는데 이들은 계약직이고 평균연령은 42세이다. 이들이 받는 평균월급은 약 3300유로(한화 378만원)이며, 대부분은 대학원을 졸업했고 3분의 2가 여성이다. 이들 중에는 종종 국회의원의 가족들도 있다. 이는 위법이 아니며, 꽤 일반화되어 있는 현상으로 국회의원 5분의 1이 부인, 자녀, 형제, 사촌 등을 고용하고 있다. 장 프랑수아 코페 전 공화당 대표는 부인을 어시스턴트로 채용하고 있고, 이는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 국민전선 등 거의 모든 정당도 유사하다.
프랑스인들은 국회의원이 특권을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이를 비난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들이 국회의원의 가족채용을 용인하는 이유는 보좌진이라는 업무는 충직과 신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의원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밖에 누설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일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나 고용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다.
한국도 이런 관점에서 전문성을 갖춘 친인척을 고용한다면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지금 추진하고 있는 국회의원 친인척고용금지법 제정을 둘러싸고 좀 더 활발한 토론을 벌이는 것이 훗날 시행착오를 줄이는 한 방법일 수 있다.
물론 한국 국회 보좌진의 보수체계와 대우를 프랑스와 비교하면 굉장히 좋은 일자리임은 분명하다. 청년들이 갈 자리가 없는 요즘 가족채용은 ‘금수저’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보좌진의 대우 조건을 서구 수준으로 낮추고 보좌진 수도 지금의 절반으로 줄이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국회 보좌진들의 업무는 무엇보다 신뢰가 생명이다. 객관적인 시험을 거쳐 채용하는 일본 스타일보다는 국회의원이 신뢰 속에서 팀워크를 이뤄낼 수 있는 가족적 분위기가 일의 성과를 높이는데 더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지금처럼 꼼수를 부려 가족을 특혜 채용하는 한국 국회의원들을 옹호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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