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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5년 전도 관심 모으다 사그라져…또 묻힐까 걱정”
옥시가습기 피해자 임성준 군 엄마 권미애 씨
"국회·정부 책임 떠넘기면 안돼…제대로 해결하는지 지켜볼 것"
“피해자 지원, 단발적 후원 보다 연금 같은 현실적 방법이 절실”
2016-05-16 06:00:00 2016-05-16 11:08:01
[뉴스토마토 이우찬·최기철기자] "저는 괜찮아요. 성준이가 제 옆에 있잖아요." 2011년 8월.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 등으로 소비자들이 대거 사망한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을 때 권미애(40)씨는 누구에게도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아들 임성준(13)군을 그렇게 만든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구입했던 사람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2004년 생후 14개월 된 임군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급성호흡심부전증 진단을 받았고 상태는 계속 나빠졌다. 중환자실로 옮겨져 심정지로 생사의 갈림길에도 선 것도 몇 번이나 됐다. 급기야 호흡을 위해 목에 구멍을 뚫고 산소튜브를 연결했다. 그렇게 임군은 영구장애를 얻었다. 임군은 아직 불편한 몸이지만 학교에도 가고 조금이나마 건강도 회복됐다. 그러나 24시간 내내 산소통에 호흡을 의지하고 있다. 권씨는 그렇게 임군을 키우고 있다.

“도대체 이런 것을 팔게 해준 사람이 누구지, 안전하다고 해서 구입해 사용했는데 왜 이런 피해를 입었는지 정말 참을 수가 없었어요.”

이후 권씨는 피해사실 규명과 대책을 위해 밤낮 없이 뛰었다. 탄원서를 제출하러 옥시 본사를 찾아갔다가 경찰에게 끌려나오기도 했다. 2012년에는 다른 피해자들과 제조사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임군과 함께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도 했다. 각종 기자회견과 국정감사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관심 갖는 이는 적었다.

2016년 수사가 재개되면서 권씨는 다시 한 번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지난 5년 동안 참 힘든 싸움이었다. 그는 “이러다가 또 관심이 사그러들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11살 된 임군의 여동생도 가습기 살균제로 폐질환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권씨의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임성준군의 어머니 권미애(맨 오른쪽)씨가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특위 회의에서 양승조 위원장(왼쪽)에게 발언하고 있다. 권씨 오른쪽에 앉은 어린이가 임군. 사진/뉴시스

성준이 상태는 어떤가.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이다. 학교에 다녀와서는 운동치료를 받거나 미술치료를 받고 집에 와서 쉰다. 몸이 아파 할 것이 없다. 건강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게 전부다. 3개월마다 병원에 간다. 폐로 인해 심장이 안 좋아질 위험이 있어 심장약도 먹고 있다. 아기 때 가습기로 피해를 입고 폐동맥 고혈압이 생겼는데 그게 원인이다. 생후 14개월 때 급성호흡심부전증 진단을 받았다. 중환자실에서 11개월 있다가 퇴원했다. 이 때 폐동맥 고혈압이 왔다. 당시에는 간질성 폐질환으로 악화됐고 만성 폐질환을 앓고 있다. 중환자실에서 있는 동안 햇볕을 제대로 쐬지 못해 뼈가 부러질 정도로 골밀도가 약해졌다.
성준이는 폐기능이 40%밖에 안 된다. 그나마 성장기 때 좋아질 거라 보고 기다렸는데 아직 이렇다 할 차도가 없다. 병원에서도 전망을 하지 못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폐이식을 해야 한다고 한다.
 
치료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집에서 산소발생기를 계속 돌리니까 전기요금만 20만원 가량 나온다. 한번은 한국전력에서 연락이 왔다. 가정집인 것 같은데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온다고. 휴대용 산소통을 일주일에 한 번 교체하러 간다. 한 통에 1만5000원이다. 이동용 휠체어 기름값도 들어간다. 산소발생기에 넣는 증류수도 사야 한다. 이것저것 돈이 참 많이 든다. 심장약은 3개월에 100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 의료보험이 안 된다. 성준이는 산소통과 맥박수치 등을 확인하는 모니터 등이 꼭 있어야 한다. 의료기기 업체에서 구입하는데 의료보험이 안 된다. 바꿀 때마다 160~200만원이 들어간다. 산소발생기는 10년 전 200~300만원 주고 샀는데, 2008년쯤에 기계가 고장이 났다. 비용 때문에 지금은 월 12만원에 대여해서 쓰고 있다.
 
옥시 살균제를 얼마 동안 사용했나.
 
성준이가 태어나서 첫돌이 지나면서 쓰기 시작했다. 성준이 여동생도 생후 7개월 될 때까지 썼는데 여동생도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고 해서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폐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했다. 보통의 경우와 다르다고 했다. 오빠 성준이 얘기를 하니까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이번 주에 아산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간다. 성준이가 병원에 있을 때도 사용했다. 숨 쉬기 편하라고 오히려 가습기 입구를 성준이 쪽으로 돌려놔주기 까지 했다. 내가 성준이를 그렇게 만든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
 
가족들 고통도 참 클 것 같다.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작년 여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는 정말 두려웠다. 성준이 여동생도 면역력이 약한 성준이에게 자칫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까봐 학교에도 못가고 학원도 다 끊었다. 그렇게 셋이 집에만 있었다. 성준이 아빠는 생업 때문에 나갈 수밖에 없었지만 퇴근하면 온몸을 소독하고 애들 한번 안아주지 못하고 바로 방 안으로 들어가 스스로 격리했다. 그렇게 매일 불안한 상태에서 살고 있다. 남편도 고생이 많다. 성준이 입원 1년 동안 입원해 있느라 1억원 가까이 빚이 생겼다. 그걸 다 갚아가면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작은애는 성준이한테 참 잘한다. 한번은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묻는데 다른 친구들은 선생님, 대통령했지만 작은애는 “오빠가 빨리 산소호흡기를 떼는 게 장래희망”이라고 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작은애는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이다.
 
가습기 피해 확인 후 옥시 관계자를 만난 적이 있나.
 
지금까지 두 번 갔다. 첫 방문이 2013년 2월25일이다. 성준이랑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피해자 5~6명이 같이 찾아갔다. 농성을 하러 가거나 항의 방문이 아니었다. 사고 원인에 대한 규명과 입장을 요구하는 탄원서만 전달하러 간 것이다.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다. 경비원이 회사 입구에서 버티고 서 있어 들어갈 수도 없었다. 중간에 성준이 산소통을 다 써서 바꿔가면서 휠체어에 태워 기다렸다. 그런데 경찰이 들이닥쳤다. 옥시 측에서 신고를 한 것이다. 경찰관에게 부탁해서 탄원서만 겨우 전달하고 내려왔다.
2013년 11월20일 두 번째로 찾아갔다. 가습기 살균제가 피해 원인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온 이후다. 옥시가 50억 기금을 내 놓는다고 했다. 그 때 장하나 의원(더불어민주당)과 같이 갔다. 임원급 관계자들이 내려오더니 짐을 싣는 화물용 엘리베이터로 우리 일행을 데려가 올라간 뒤 회사가 아닌 근처 커피숍으로 갔다. 그 내내 장 의원과만 악수 하고 성준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성준이 좀 봐달라고 말해도 보지 않았다. 장 의원이 함께 가서 그나마 만나준 거다. 기금 얘기를 하길래 “잘못도 없다면서 기금은 왜 내놓느냐 그냥 직원들이랑 다 써라”면서 “성준이 얼굴 한 번 보라”고 소리 질렀다. 그때 잠깐 보고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동안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해왔다.
 
성준이가 6년만 지나면 성인이 된다. 지금은 제가 돌보고 있지만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고 있다. 제가 먼저 하늘나라로 가면 혼자 살아야 한다. 지금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은 성준이가 커서 스스로 혼자 살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다. 현실적으로 돈이 문제다. 기금이나 후원 같은 순간적인 것보다 연금처럼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사건이 5년이나 지나서야 조명 받고 있다.
 
지난 9일 국회로 가서 의원들을 만났다. 의원들은 검사도 잘못이 있다고 했다. 5년 전에도 의원들은 있었다. 그날 만난 의원들 중에는 5년 전 똑같은 자리에 있었던 분도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이 얘기를 그 자리에서도 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잘못이 있다. 책임을 서로 떠넘기면 안 된다. 검찰도 5년이 지나서야 수사를 재개하는 것이 잘못이긴 하다. 처음에 담당 검사들을 봤을 때 왜 이제야 수사한다고 하느냐고 거칠게 항의했다. 검사 중 한 분이 “변명 아닌 변명을 드리겠다. 올해 맡았으니까 저희를 믿고 한번 지켜보시라”고 말했다. 그래서 지켜보고 있다. 그나마 피해자들 얘기를 들어주고 원하는 대로 해주려고 노력하는 걸로 보인다.
 
옥시 전 대표가 구속당하고 회사도 사과했는데.
 
최근에 옥시 대표(아타 울라시드 샤프달)를 만났다. 그 전에 요구한 게 있었다. 당신들이 피해자 한 분 한 분 찾아가서 "당신들 가족을 죽인 건 당신들이 아니라 저희라며 용서를 빌라"고. 이번에 만났을 때 정말 그렇게 했다. 피해자 분들이 왔는데 다른 분들한테 정말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옥시 대표가 울더라. 피해자 아기 엄마한테 "당신 자식을 죽인 건 당신이 아니고 저"라고 말하더라. 또 "제가 당신들한테 기쁨은 줄 수 없지만 마음의 평화는 드릴 수 있을 만큼 정말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러길래 우리는 "당신들 용서 못한다. 5년 동안 해온 게 있어서. 당신들이 하는 말들에 대해서 얼마만큼 책임을 지고 정말 진실되게 하는지 지켜보겠다"고 얘기했다.(권씨는 인터뷰 당일 영장실질심사가 실시된 신현우 전 옥시 대표의 구속송치 장면을 지켜보기 위해 임군을 경기도 용인 집에 재워 놓고 서울중앙지검 로비 앞에서 밤을 지샜다.) 
 
정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5년 전 국정감사 때도 다 쫓아다녔다. 모든 사람이 알게 되고 국회의원들도 관심을 보여서 ‘이제 해결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뭐 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올해 이슈가 됐는데 이러다가 또 묻혀버릴까 걱정이다. 그동안 정말 힘들었다. 또 상처받을까봐 걱정된다.
 
권미애씨. 사진/최기철 기자
 
 
 
이우찬·최기철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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