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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신청 대안, 회유보다는 근본적인 원인해결이 필요하다
대학가/가능 사회
2016-04-05 18:46:42 2016-04-05 18:47:15
매해 2월 초중반의 피시방은 이른 아침부터 붐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버시간’을 띄워놓고 안절부절 못하는 한 무리의 학생들을 볼 수 있다. ‘선착순’인 대학교 수강신청을 위해 조금이라도 빠른 피시방을 찾는 대학생들이다. 서울시립대학교에 재학 중인 A씨(22)도 예외는 아니다. A씨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클릭하기 위해서 인터넷 속도가 빠른 피씨방을 찾는다. 학교랑 가까울수록 서버에 빨리 전송된다는 소문도 있어서 아침부터 학교 근처까지 가기도 한다.” 라고 말했다. 
 
대부분 대학들이 수강신청 방법으로 선착순 제도를 운용한다. 이들이 선착순 제도를 운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정성이다. 인기 있는 강의를 원하는 학생들은 많고, TO(강의를 들을 수 있는 학생 수)는 정해져 있으므로 가장 공정하게 강의를 배분하는 방법은 ‘선착순 배정’이라는 게 학교 측의 논리다. 하지만 선착순 제도의 문제점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오래된 폐단으로 통한다.
 
‘공정성’보다도 수강권 침해가 더 큰 선착순 제도
 
숭실대학교 재학생인 B씨(25)는 올해도 수강신청 ‘올클’에 실패했다. 이번 학기에는 꼭 듣고 싶은 강의가 있어 가장 먼저 클릭했는데도, ‘남는 강의가 없습니다.’ 라는 배너가 떴다. B씨는 “올해도 학교 서버가 터졌다. 4학년은 구글 크롬을 쓰라는 공지를 수강신청이 끝난 뒤에야 받았다고 한다. 선착순으로 신청을 하다 보니 서버가 자주 터진다.” 라고 말했다. 공지를 늦게 전달받은 4학년들이 학교로부터 보상을 받았냐고 묻자 B씨는 “수강신청을 실패한 사람만큼 성공한 사람도 있으므로 학교 측에서는 무조건 학생 측의 잘못으로 돌린다. 어차피 대안이 없다.” 라고 말했다.
 
경희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C씨(21)는 “이번 학기에 수강신청에 성공한 과목이 13학점밖에 안 된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은 상황이 더 심각해서 명함도 못 내밀고 있다.” 라고 말했다. 학생이 많은데 열리는 전공강의 수가 워낙 적다 보니 전공과목 수강신청이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C씨는 “교양과목은 꿈도 못 꾼다. 전공과목이 더 급하다. 교양 과목 먼저 신청하는 과도 있다던데,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다 신청하고 남은 강의 신청했다. 2학년인데 4학년들이 졸업학점 채우려고 듣는 취업 관련 강의를 듣게 됐다.” 라며 울상을 지었다. 
 
B씨와 C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수많은 학생들이 값비싼 등록금을 지불하면서도 원하는 강의를 수강하지 못하고 있고, 수강신청 때마다 마음을 졸이고 있다.
‘문제점을 낳는 거위’, 선착순 수강신청
 
수강신청 실패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경희대학교 학생 D씨의 증언에 따르면 학생들 사이에서 강의를 사고파는 행위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D씨는 “강의를 매매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강의를 받아놓고 받지 못했다며 돈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팔겠다고 해놓고 돈만 받고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돈을 내지 않은 제 3자가 강의를 가로채기도 한다.” 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강의 하나의 가격이 10만 원을 웃도는 경우가 다분하고, 비싼 가격에도 사려는 학생이 줄을 선다고 한다. D씨는 “학교의 불합리한 수강신청 방식이 학생들의 양심까지 망치고 있는 것 같다. 돈을 주고도 강의를 못 받으면 정말 억울하다.” 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 대학교의 강의 평가 게시판을 살펴보면, 수강신청 직후부터 수강 변경기간까지 강의를 사고 파려는 학생들의 글을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이외에도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나 학보 등 강의평가가 이루어지는 다양한 공간에서 어떻게든 강의를 구하려는 학생들의 절박한 심정을 느낄 수 있다. 등록금을 내고도 ‘올클’을 실패하는 경험을 맛봐야 하고, 강의를 사려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하는 현실에 학생들은 분통할 따름이다.
 
사진/연세춘추 강의 경매글 캡처
 
대학 측의 달콤한 회유책 제시
 
이처럼 선착순 제도의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학교 측에서 대안을 내놓기도 한다.
 
숙명여대는 학년-이수학점-성적순으로 수강신청에서 우선권을 준다. 숙명여대에 재학 중인 E씨(21)는 “학년 순이나 이수학점 순으로 하는 것은 내가 졸업에 가까워질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선착순 제도보다는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라며 말을 꺼냈다. 하지만 “같은 학년끼리는 이수학점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성적이 주 기준이 된다. 이전 학기의 성적이 다음 학기까지 영향을 미치니까 좋은 학점을 받은 학생은 계속 인기 있는 소위 ‘꿀강의’를 듣게 된다. 성적이 좋으면 수강신청계의 ‘금수저’다” 라고 말했다. 또한 “전공자들이 복수전공자보다 수강신청 우선순위가 높다. 그러다보니 복수전공을 하면 졸업요건을 채우기가 힘들어 우리학교는 복수전공의 장벽이 높다.” 라고 말했다. 선착순 제도가 학생들의 다양한 커리어 선택도 가로막는 것이다.
 
연세대학교는 지난 2015년 2학기부터 이런 문제점들을 개선하겠다는 취지에서 ‘마일리지 선택제’를 실시했다. 전공별로 일정 마일리지를 부여받으면, 자신이 원하는 과목에 중요도 순으로 마일리지를 배팅하는 방법이다. 학교 측은 ‘마일리지를 많이 배팅할수록 신청 순위가 올라간다. 자기가 원하는 강의에 많이 투자할수록 수강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니 학생들이 원하는 강의를 더 많이 수강할 수 있다.’ 라고 마일리지 선택제를 도입한 이유를 설명했다.
 
사진/연세대학교 마일리지 수강신청 제도
 
연세대학교 재학 중인 F씨(22)는 자신이 예체능 계열 전공임을 밝혔다. F씨는 “우리 과의 전공수업은 다른 과 학생들과 함께 듣지 않는다. 또 인기 있는 복수전공 과목도 아니기 때문에 전공에 마일리지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보니 마일리지가 남아돌아서 인기 있는 교양과목에 투자할 수 있다.” 라고 말했다. 반면 같은 학교 경영대에 재학 중인 G씨는 “마일리지 선택제를 도입해도 선착순 때와 똑같이 수강신청에 실패했다.” 라고 말하며 “우리는 전공 강의가 인기가 많아 마일리지를 투자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라고 밝혔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Collabo 측은 “현재 마일리지 선택제는 학생들이 수강신청에 성공할 수 있는 기준선을 제공할 누적된 정보(수강신청을 성공할 수 있는 마일리지의 양)가 너무 적다고 말한다. 실제로 마일리지 제도를 처음 실시한 2015학년도 2학기에는 실시간 희망 과목의 신청인 수를 알려 줬는데, 이번 년도에는 정보 조작 등의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또한 사전에 강의 수요조사를 위해 실시하는 모의수강신청의 결과도 참여자에게만 알려주는 등 정보의 누락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세대 총학생회는 선착순 제도의 부활보다는 마일리지 선택제의 문제점들을 최대한 개선하고 안정적인 정착을 돕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연세대학교 마일리지 선택제 수강신청 화면
 
수강신청 실패하는 이유...대학평가와 반값등록금이 주범으로 몰려
 
서울시립대학교 재학생인 H씨는 올해가 다른 해보다 수강신청이 힘들었다고 밝혔다. H씨에 따르면 이번에 열린 교양과목의 TO가 증설되기는커녕 현저히 줄어들어 인기 여부와 관계없이 정원이 꽉 찼다고 한다. H씨는 또 교양과목이 많이 폐쇄되고 대부분이 대형 강의로 전환돼 정정기간이 3일째 지났는데도 드랍이 거의 없다고 말하며 고충을 토로했다. 이런 현상에 대한 원인을 묻자 H씨는 “의견이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반값등록금 때문에 강의 수를 줄였다는 의견인데, 이 의견은 정확하다고 볼 순 없는 것 같다. 같은 반값등록금 제도 이후인 지난 학기에도 이정도로 심각하진 않았다. 후자는 대학평가에서 받은 낮은 점수 때문이라고 한다. 대학평가 항목에 전임교수비율이 있는데, 그 비율을 늘리려고 교양과목을 주로 담당하는 시간제강사 등을 많이 내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교양과목 TO도 같이 축소된 것 같다.” 라고 말했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서 대학교육연구소 측은 “전자에는(반값등록금으로 인한 강의 폐강 증가) 동의할 수 없다. 반값등록금이 실현되면 교육 여건이 어려워져 분반이 어려워진다는 의견인데, 그건 대학이 재원 자체를 철저하게 등록금에 의존한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평가에 관한 의견에 관해서는 “정부 정책이 ‘전임 교원이 담당하는 강의 시간을 늘리자’ 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 시간강사의 비율을 줄이기 위해 해고를 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대학에서 강의 수 유지를 위해 시간강사 등을 계속 채용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효용성이 없는 주장이다.”라고 말했다. 
 
사진/정부의 대학평가에 반대하는 시위
 
학교 측에서 다양한 대안을 내놓기 시작했지만, 그조차도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 회유책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강의를 수요에 맞게 제공해 줄 때, 수강신청의 본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학교 측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학생들이 수강신청에서 겪는 근본적인 어려움을 먼저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대학교육연구소의 임희성 연구원은 “수강신청 대안은 학생들이 원하는 강의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상황에서 그나마 불만을 잠재울 수 있도록 나온 차선책이다. 진정한 해결책은 교원을 더 채용하고 재정적 투자를 통해 분반을 늘리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임 연구원은 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대안은 강의를 증설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학교가 내세우는 변명이다.” 라고 말했다. 
 
 
라진주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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