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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소녀상 지킴이’ 활동, 국가 대신 학생들이 나선 것”
(오영중 위원장)“고통 같이 한다는 순수함…범법자로 몰면 안돼”
“지킴이 활동은 제3자가 이익 떠나 대신 나선 새로운 표현 방법”
2016-02-25 06:00:00 2016-02-25 06:00:00
대학생들의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두고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새로운 집회문화의 태동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특정 상징물을 매개로 노숙형태의 평화적 모임을 열고, 시민들이 밥차 등 물적 지원을 하면서 지속성을 부여하고 있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기존 일반시위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다. 오는 3월1일에는 대규모 집회로 발전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그런 가운데 이에 대한 경찰대응은 인권 탄압적 요소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생들의 지킴이 활동은 24일 현재 60일에 육박하고 있다. 활동 초기 대학생들은 방한텐트를 설치하려 했으나 경찰이 빼앗았다. 불법집회용품이라는 이유에서다.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해 대학생들을 연이어 소환 조사하고 있다.
새 집회 문화형태를 보이고 있는 ‘소녀상 지킴이 활동’과 이에 대한 경찰 대응의 정당성을 오영중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을 만나 짚어봤다. 그는 혹한 속에서 노숙모임을 이어온 지킴이 대학생들을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신청하고 현장을 찾아 문제점을 살펴본 인권 전문가다.
 
 
오영중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위원장
 
‘소녀상 지킴이 활동’은 현재 어떤 상황인가.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만 해도 상당히 많은 대학생이 참여했다. 올해 대학생이 되는 교생들도 와서 동참했다. 지방에서도 많이 올라와 같이 활동했다. 하지만 강추위가 계속되면서 학생들이 많이 아팠다. 장기간 추위에 노출되면 건강에 치명적인 상황이 올 수 있다. 우리도 현장에 겨우 2시간 있었는데 다음날까지 몸이 얼얼했다. 현재는 활동 초기보다 다소 인원이 줄었지만 여전히 왕성하다. 지금까지 한번이라도 밤을 새운 대학생들을 헤아리면 수백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일반 시민은 제외하고다. 활동 참여에 대한 강제성은 없다.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힘들면 귀가했다가 다시 나온다. 현재는 추위보다 매연이 학생들을 더 괴롭힌다. 주위를 통제·감시 중인 경찰 차량들이 차내 난방을 위해 시동을 켜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방한텐트를 왜 못치게 하는가.
 
고정된 시설물을 설치하면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대학생들이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텐트를 들고 갔을 때 펴보지도 못하고 경찰에 빼앗겼다. 불법시위용품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경찰은 일련의 활동 금지에 대해 구체적인 법적 근거규정을 적시하지 않고 있다.
 
지킴이 활동을 집회나 시위로 볼 수 있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와 관련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집단적 이익을 위한 일반적인 집회나 시위와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소녀상은 일종의 상징물이다. 70~80년 전 일본의 탄압과 위안부 문제, 진상규명, 진정한 사과와 보상의 요구와 거부 등 모든 의미가 스며있다. 그곳에서의 지킴이 활동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문제를 기억하는 장소다.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 침해가 진행되고 있음을 기억하고 확인하는 일종의 표현의 장소다. 이런 행위 자체가 헌법적 가치가 있다. 우리 헌법에는 삼일정신이 있고, 임시정부의 법통을 정부가 계승한다는 내용이 있다. 독립유공자와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보호하고 책임지는 것이 헌법이 국가에게 부여한 의무이다.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이 같은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국가에 대한 아주 작은 형태의 국민적 저항권 활동으로도 볼 수 있다.
 
일반적인 집회·시위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최근 대표적인 집회로, 대한문집회, 세월호집회 등이 있었다. 이 농성들은 이해당사자들이 주축이 돼 요구사항을 표명했다. 대한문집회는 해고노동자들이 복직을, 세월호집회는 유족들이 진실을 규명하라며 직접 나와 농성을 했다. 일반적인 농성은 직접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기 때문에 분노수위가 높고 그것을 동력으로 투쟁한다. 그러나 지킴이 활동은 다르다. 우선 주체가 당사자들이 아니다. 자신들의 이익과는 전혀 무관하다. 숭고한 목적을 위해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진행한다. 소녀상을 상징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같이하겠다는 국민적 표현이다. 새로운 형태의 표현방법으로 볼 수 있다.
 
인권위 조사활동은 진척이 있나.
 
미온적이다. 바닥에 전기장판을 쓰고 있고, 소녀상 20m 밖에 텐트 치는 것을 경찰이 허용했기 때문에 건강권이 침해되는, 긴급구제가 필요한 사항으로 보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인권위 담당조사의 연락을 최근 받았다. 이후 조사는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조사관 조사 뒤에 위원회에 상정해야 하는 데 초기 조사단계에서 멈춘 것이다. 정치적 이슈가 뭉쳐 있어 그렇지 않나 생각된다.
 
왜 20m 밖에 텐트를 치지 않나.
 
무엇보다 실제 공간을 보면 칠만한 곳이 없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면 학생들은 경찰의 의견을 따른다는 것을 굴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지킴이 활동의 상징적인 소녀상과 공간적으로나마 분리·단절되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는 아예 지킴이 활동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집시법을 보더라도 20m 밖에 텐트를 설치하라고 하는 것은 어떤 근거나 의미가 없다. 그저 ‘우리가 쳐 준 가이드라인에 따라 집회하라’는 것이다. 반대로 소녀상 20m 내에 텐트를 치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설명을 않고 있다. 그나마 20m 밖에 칠 수 있게 한 것도 야당의원들이 강신명 경찰청장에게 요구해서 된 것이다.
 
지난 1월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중학동 구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주위에서 밤샘 농성 중인 대학생들이 이불과 비닐을 덮고 강추위에 맞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집시법 위반이라는 경찰 주장은 정당한가.
 
집시법의 본 취지는 헌법상 평화적인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촉진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도 같은 입장이지만 설령 미신고 집회라 하더라도 평화롭게 진행되면 일단 적법하다고 간주한다. 야간 집회도 사실상 위헌선고를 받았다. 학생들의 소녀상 지킴이 활동의 목적과 방법은 순수하고 평화롭다. 주변은 다 사무실이 꽉찬 높은 빌딩이다. 그리고 일본대사관은 공사 중이다. 지킴이 활동으로 평온이 깨질만 한 것들이 없다. 그러나 경찰은 지킴이 활동을 미신고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해산명령에 불응했다고 학생들을 소환조사 하고 있다.
 
학생 조사과정에서 위법사항은 없었나.
 
학생들 얘기를 들어보면 위법사항은 없었던 것 같다. 경찰 조사는 배후와 책임자 색출에 맞춰져 있다. 이렇게 추운 상황에서 장기간 활동을 이어가는 데는 배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임을 해산시키기 위해서는 배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임은 학생들 자체의 자율적이고 순수한 모임이다. 경찰이 집시법 위반으로 몰아가는 자체가 안타깝고 어처구니없다. 조사 받은 학생들이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조사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 20여분이면 끝난다. 그러나 학생들을 거듭 소환하면서 심리적 압박을 넣고 있다. 이것은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일부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 점을 우리도 우려하고 있다. 서울변호사회만 해도 관변 단체인데 인권위원회 변호사들이 현장에 찾아갔을 때 학생들이 우리를 경계하지 않을까, 마음을 닫아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상당히 컸다. 다행히 받아들여줬다. 정치인들 중에 사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시민이 찾아와서 소위 ‘인증샷’ 날리면 참여의 표시이자 확장성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사진을 찍는 것은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데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소녀상 지킴이 활동이 그런 식으로 이용되면 안 된다. 정치적 이용이 있다는 지적과 비판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정치인들도 많이 가서 참여를 해야 한다. 학생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문제점을 확인하고, 그들의 주장을 대변하고 해야 한다. 국회의원이라면 그에게 부여된 권한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많다. 참여를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지킴이 활동이 시민운동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소녀상 지킴이 활도 이전에는 광우병 촛불시위가 새로운 시위형태였다. 촛불 자체가 평화롭게 시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 당시 이슈는 국가·사회적인, 현재적인 문제로 대정부 이슈파이팅을 하는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장기농성과 문화제를 통해 가치를 실현하려는 성격이 있다. 참여하는 사람들의 연결고리가 타이트하지 않으면서도 확장성과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위안부라는 문제가 이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형식의 모임이 언제 또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방식이 앞으로 새로운 집회 모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모여서 농성할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물론이다.
 
이 활동이 세력화 되어서 순수성을 잃을 우려는 없나.
 
모임이나 조직화가 자발적이고 고유목적의 지속성과 확장성을 보장하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실질적으로 어떻게 확장될 것이냐가 문제될 것이다. 조직이 되면 의사결정 등이 원래 취지와 다르게 갈 수도 있고, 그 때문에 내부 의견 충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외부에서는 그것을 빌미로 조사하거나 진압할 수 있다. 지금보다는 넘어야 할 산이 더 크고 많을 것이다. 그것이 원래 목적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지 장애가 될지는 지켜봐야겠다.
 
앞으로의 대책은 무엇인가.
 
서울변호사회 인권위 정책이 올해부터 현장 중심형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번 소녀상 지킴이 모임 현장이 공식적인 1호 활동이다. 그러나 변호사 단체로서 정치적 문제에 휘말려서는 안된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국가인권위 진정 등의 활동 외에는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도움이 부실한 것이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안타깝다. 하지만 현재도 학생들의 인권과 표현의 자유 침해 상황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필요할 경우 학생들에 대한 인권구제절차와 국가에 대한 의견제시 등을 준비 할 것이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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