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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벼랑 끝의 난민, 미국에서도 갑론을박 '시끌'
"국가 안보 위협" vs "미국 가치 훼손" 대립…오바마, 포용 의지 강조
2015-12-03 15:19:00 2015-12-03 15:19:00
130여 명의 사망자를 낸 파리 테러 이후 시리아 출신 난민들의 삶은 더욱 고달퍼졌다. 테러리스트들이 난민으로 위장해 잠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며 이들에 대한 의심의 눈빛이 커졌기 때문이다.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 난민 수용을 거부하고 있는 국가는 물론, 난민 수용에 적극적인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지에서도 "난민과 테러리스트를 구별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며 경계감을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대선을 1년 가량 남겨둔 지금 난민 문제는 정치권의 논쟁 거리로 부상했다.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한 민주당은 난민 포용을, 공화당은 난민 거부를 각각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초당파 원로 인사들까지 가세해 난민 정책에 대한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내년 중 시리아 난민 1만명을 수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달 말레이시아의 한 난민 센터를 찾은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척 헤이글 전 국방장관 등 20명의 전직 각료와 장성들은 의회에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들의 수용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지난달 19일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하원에서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될 때까지 시리아나 이라크 출신의 어떤 난민도 받지 못하도록 하는 '외적에 대항하는 미국인 안전법'을 찬성 289표, 반대 137표로 통과시킨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의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원로들은 "미국의 안보와 안전이 침해되지 않는한 미국은 폭력과 박해를 피해 조국을 떠난 난민들에게 계속해서 피난처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행의 난민 심사 절차는 충분히 강력하고 철저하다"며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미국의 개방과 통합 정신에도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원로들은 난민들도 테러리즘의 피해자임을 부각시키며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이슬람과 서방 국가들의 전쟁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이슬람국가(IS)를 돕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1만명 수용 계획에 "우리 주는 안돼" 반발
 
시리아 난민을 둘러싼 미 정치권의 논쟁은 오바마 행정부가 내년 중 시리아 난민 1만명을 받겠다고 밝힌데서 시작됐다. 2011년 이후 미국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이 2000명도 채 되지 않아 "난민 문제에 소극적이었다"는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아들여 수용 규모를 대폭 늘리기로 한 것이다. 이를 반영한 미국 정부의 2016회계연도(2015년 9월~2016년 8월)의 난민 수용한도는 8만5000명으로 전년도의 7만명에서 1만5000명 확대됐다.
 
난민 수용에 부정적이었던 공화당은 파리 테러 이후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전체 51개주 가운데 31개주에서 수용 거부 의사를 밝혔다. 대부분이 공화당 소속인 주지사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개인 SNS는 물론 오바마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연방 정부가 난민 수요을 계속하더라도 그들이 자신이 속한 행정구역에 정착하는 것은 막겠다"는 뜻을 밝혔다. 모두가 시민들의 안전을 앞세웠다. 급기야 공화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도날드 트럼프는 텍사스주에서의 유세 중 "시리아 난민을 받겠다는 것은 미친짓"이라는 과격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주지사들은 난민에 대한 백그라운드 체크와 선별 작업을 보다 엄격히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중들의 입장도 강경한 쪽으로 기울고 있어 공화당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블룸버그 폴리틱스가 파리 테러 직후인 지난달 16~17일 성인남녀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3%는 "시리아 난민 수용 프로그램을 중단해야 한다"고 답했다. 현행의 검증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난민 수용을 계속해도 된다는 의견은 절반인 28%에 그쳤다. 난민을 수용하되 기독교도만 받자는 부분적 찬성 의견은 11% 였다. 테러리즘이나 IS 격퇴는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부상했다. 미국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이 돼야 하느냐란 질문에 35%가 테러리즘과 IS를 선택한 것. 9월 실시했던 직전 조사(18%)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고용, 이민, 헬스케어, 연방정부 부채라는 답변들의 합과 같은 비중이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올바른 길로 잘 가고 있다는 응답은 23%로 3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난민도 피해자…종교로 차별하는 것은 나치와 같아"
 
반난민 정서가 높아지고 있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난민 수용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난민들도 테러리즘의 피해자이며, 이들을 배척하는 것은 이민자로부터 시작된 미국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추수감사절이었던 지난 26일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난민들을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 대륙에 당도한 최초 이민자들에 비유하며 "난민들은 단지 자신과 가족들의 안전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화당이 제기하는 안보 문제에도 "엄격한 보안 심사를 거치지 않고서는 어떠한 난민도 미국에 들어올 수 없다"며 "이는 파리 테러 이전이나 이후 모두 해당한다"고 일축했다.
 
난민 수용 옹호 발언은 민주당쪽 인사들을 중심으로 계속되고 있다. 잭 마켈 델라웨어주 주지사는 성명을 통해 "파리에서의 비극적인 사건을 이유로 난민들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며 "우리가 논의하는 것은 테러의 가해자들 뿐"이라고 밝혔다. 릭 스나이더 미시건주 주지사 역시 "새로운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스나이더 주지사는 "지역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 가치임은 변함없지만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의심을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리 테러는 소수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일 뿐 세계 각지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중동 출신들은 평화지향적이라는 얘기다.
 
더 나아가 난민 지원 단체에서는 "출신 지역이나 종교를 이유로 난민들을 차별하는 것은 나치즘과 다를바 없다"고 강도 높은 비난을 했다. 마크 헤트필드 유대인이민지원협회(HIAS)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가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주지사나 대통령 후보라는 사람들이 태어난 장소나 종교에 따라 사람을 차별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정권이 유대인들을 노골적으로 탄압했던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일격했다. 일본계 미국인 배우인 조지 타케이는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내 일본인들을 격리했던 어린 시절을 상기하며 자신의 SNS에 "파리 테러로 난민을 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난민들을 핍박하는 것은 미국 역사에 어두운 페이지를 추가하는 것과 같다"는 글을 남겼다.
 
난민 수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미국이 문을 걸어잠글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원에서 통과된 '안전법'이 상원에서 통과되더라도 최종 발효를 위해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간의 불협화음은 커질 수 있다. 스테픈 블라데크 아메리카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법적으로 주 정부는 어떤 것도 선택할 권리가 없다"며 "주 정부의 거부권 행사는 연방 정부에 장애물을 더하는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케빈 애플비 전미가톨릭주교회의(USCCB) 이민정책 담당자 역시 "특정 주에서는 이주민 정착비용과 같은 재정 지원을 끊을 수도 있지만 이 같은 현상이 보편화 될 경우 연방 정부는 1980년 제정된 난민법을 근거로 난민들을 강제로 배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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