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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아버지 시절 비대해진 군부 정상화시키는 과정"
[인터뷰]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군이 국가운영 깊이 개입하는 ‘선군정치’ 폐해 벗어나려…둔탁하게 진행”
“북한의 시장 확대와 개방 흐름 돌이킬 수 없게 진행돼”
“김정일 세계의 흐름에 저항했지만…김정은은 적응하려는 듯”
2015-07-27 18:48:11 2015-07-27 18:48:11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최고의 북한 전문가로,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북한에 관한 모든 문제에 밝지만 특히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피를 나눈 ‘혈맹’이라고까지 불렸던 북·중 관계는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현저하게 냉랭해진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이종석 전 장관을 만나 우선 묻고 싶었던 부분은 바로 이것이었다. 북·중 관계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차가울 것인지. 북한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전 장관의 답은 “북·중 관계의 2중 구조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나라 정부 사이의 관계와 별도로, 중국의 ‘동북 3성’(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과 북한 사이의 경제관계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동북 3성과 북한이 경제적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가 튼튼히 형성돼 있다는 점에서 북·중 관계에는 이상이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 경제 교류를 중국 중앙정부가 통제하지 않는다는 점으로 볼 때 양국의 정치적 관계를 그저 ‘냉랭하다’고만 평하는 것은 단순한 진단이라고 지적했다.
 
북한 내부적으로 주목하는 점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 시절 군부가 비대해진 상황을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라고 말했다. 또 북한의 개방과 시장 확대 흐름이 돌이킬 수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중점을 둔다’는 뜻의 안미경중론에 비판적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한미동맹 일변도가 아닌 새로운 국가전략이 필요하다는 논의를 활성화시켰다는 점에서 안미경중론이 나왔다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경제적 이해관계가 집중된 곳에 안보적 이해도 크게 걸려 있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전쟁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발생한다. 안미경중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경제와 안보를 분리시킬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인식이다. 편을 가르는 진영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원론적으로, 미국·중국 두 나라 모두와 안보·경제 모든 측면에서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증진해 나가는 것이 답이다. 안보와 경제를 융합해 두 요소 사이의 모순을 해소하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처지인 것은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 대외전략의 원칙이나 기조는 무엇이 되어야 하나.
 
한미동맹과 한·중 협력을 균형적으로 사고하는 균형외교, 그리고 한·미·중·일·북이 함께하는 ‘동북아 평화와 공영의 다자협력’을 추구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두 나라 모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제3의 창의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동아시아 다자협력, 그 중에서도 공동안보를 추구하는 것이다. 미·중은 이미 6자회담 과정에서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를 통해 동북아 다자안보를 추구하자는 데 합의했다. 한국을 초등학생으로, 미국과 중국을 중학생으로 비유해 보자. 양자관계만 이뤄진다면 중학생은 초등학생을 일방적으로 끌고 갈 것이다. 그러나 중학생 2명과 초등학생 1명이 머리를 맞댄다면, 만약 중학생들끼리 대립할 경우 결국에는 초등학생에게 ‘누구 말이 맞니?’ 묻게 된다. 그것이 바로 다자협력의 묘미다.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가 창의적인 발상으로 상황을 주도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 역량을 극대화해야 한다.
 
- 현재 북·중 관계는 경제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여도 정치적으로는 2013년 3차 핵실험 이후 거북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향후 북·중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나.
 
중국은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을 제재하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물론 북한 체제의 붕괴까지 불사하겠다는 서방의 입장과는 다르지만. 중국이 국제사회의 대북 압력에 동참하는 것은 미국과 함께 소위 ‘G2’ 국가이기 때문이다.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리더십을 가진 G2 국가로서 북한 핵실험에 비판적인 국제사회의 스탠다드를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북·중 관계에는 2중 구조가 있다. 중앙정부 사이의 정치적 관계도 있지만, 중국 지방정부와 북한과의 경제적 관계가 따로 있다. 중국 지방정부는 북한과 경제교류를 계속 하고 있고, 중앙정부는 그를 용인한다. 과거에는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일방적으로 받았다면, 지금은 상호이익을 갖는 관계가 형성됐다는 점도 중요하다. 중국 동북 3성의 경제에 반드시 필요한 물류의 통로가 바로 북한 나진항이다.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도 중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동북 3성은 북한 인구의 4배가 넘는 인구 1억의 엄청난 교역 대상지역이다. 중국에 노동력도 수출하고 있고, 북한 19개 경제개발구에 중국 기업들이 투자하는 효과도 크다. 이처럼 양측 모두에 도움이 되는 경제적 관계를 알아야 한다. 북한 경제가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에도 불구하고 2009년 이래 완만하게 성장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3년 반이 지났다. 김정은 체제의 어떤 점을 주목하고 있나.
 
첫째, 김정은과 군의 관계를 주목한다. 과거 김정일이 국가적 위기상황을 소위 ‘선군정치’를 통해 돌파하는 과정에서 군이 비대화했다. 비대해진 군은 현재 추진하는 경제개발에 방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군이 국가 운영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 그것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별을 떼었다 달아줬다 하는 ‘견장정치’가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김정은이 견장정치를 통해 군을 다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이 좀 둔탁하게 진행되면서 우리가 보기에는 불안정한 측면이 있다. 더 세련되게 할 수 있는데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선군정치의 폐해를 시정하는 과정에 있다.
 
두 번째로 주목하는 것은 불가역적인 시장 확대 및 개방의 흐름이다. 19개 경제개발구를 지정했고, 경제특구도 여러 곳 추진하고 있다. 북한 전체가 개방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제재 때문에 중국 자본의 일부만 들어가고 있지만, 북한이 외국자본을 받겠다며 시장 개방을 향해 가고 있는 것만은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다. 결과적으로 북한 특유의 대외적 호전성도 완화되는 쪽으로 갈 것이다.
 
-김정은의 3년 반을 평가한다면.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다만 선대와는 분명히 다른, 자신의 통치스타일로 가는 측면이 있다. 과거 김정일은 변화하는 세계의 흐름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김정은은 적응하려고 하는 것 같다. 장성택과 현영철을 숙청하면서 무자비한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돼 있어 우리가 놓치기 쉽지만, 선대와 비교할 때 자신의 행위를 공개하고 있고 정책도 상대적으로 투명하게 하고 있다. 실용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다.
 
- 대외정책 분야에서 야당이 국민들을 설득해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하려면 어떤 ‘물건’을 내놔야 한다고 생각하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많은 비판도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통일·안보 분야에서 상당히 많은 성과를 거뒀다. 우선 남북관계가 확실히 진전됐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에는 군사적 충돌이 한 건도 없었다. 민간인과 군인의 희생 없이 5년을 지낸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10년 동안 민주정부가 성취한 것을 새정치민주연합이 소중한 자산과 유산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야당이 과거에 정부를 운영하면서 만들어 놓은 유산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황준호·이성휘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24일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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