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시론)계좌이동제, 안정성 확보를 최우선 고려해야
2015-05-21 12:00:00 2015-05-21 12:00:00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3년 11월에 발표된 금융업 경쟁력 강화방안에서 계좌이동제를 처음으로 언급했으며, 이후 1년 동안 출금이체정보 통합관리 시스템을 만들었다.
 
 
올해 9월부터는 출금이체 정보의 조회, 해지, 변경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내년 1월부터는 납부자 자동이체, 계좌간 자동이체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제 국내에서도 한 번의 신청으로 자동이체 항목을 한꺼번에 옮길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은행산업의 집중도를 완화해 경쟁체제를 유도하고, 고객의 편의성 및 은행 선택권을 확대하는데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제도 설계에 있어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계좌이동제는 유럽연합(EU), 영국, 호주 등 일부 국가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으며, 이들 사례에서 몇 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첫째, EU는 단일시장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 계좌이동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원래 EU의 계좌이동제는 2006년 9월 국경 간 은행계좌 개설(open a bank account cross-border)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됐다. 호주나 영국은 4대 은행의 시장점유율이 60%를 상회하기 때문에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럽과 호주를 제외하고 계좌이동제를 시행하는 국가가 없는 이유이다.
 
둘째, 영국과 호주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점이다. 2009년 도입한 영국은 2013년 9월에, 2008년 도입한 호주는 2012년 7월에 제도를 크게 수정·보완했다. 두 국가 모두 준비기간이 2년 정도 소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다.
 
금융소비자에게 편익을 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공급자 관점에서 제도를 설계한 탓이다. 예를 들어, 영국의 경우 소요기간의 장기화(18~30일), 빈번한 자동이체 오류, 이체오류 손실의 개인부담 등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계좌이동제는 금융소비자에게 외면받고 신뢰감이 떨어지면서 낮은 이용률을 기록했다.
 
셋째, 완전한 계좌이동제는 실현 불가능하다. EU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은 기존 계좌번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은행을 옮겨다니는 계좌번호 이동제(Bank Account Number Portability·BANP)이나 막대한 비용부담으로 사실상 실현하기 어렵다. 제도 도입 시 네덜란드, 영국, 호주 등에서도 이를 검토했으나 고비용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계좌이동제는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매우 편리한 제도이다. 그 동안 금융소비자가 자동이체를 다른 계좌로 옮기기 위해서는 건건이 전화로 연락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른바 전환비용(switching cost)이 높은 것이다.
 
그러나 계좌이동제가 시행되면 금융소비자는 옮길 계좌를 보유한 은행에 방문하거나 인터넷뱅킹을 통해 원하는 자동이체 항목을 체크해 신청하면 일주일 내에 처리된다. 다시 말해서 전환비용이 낮아지면서 여러 계좌에 흩어져 있는 자동이체 항목을 한 계좌로 쉽게 묶을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서 보면 저원가성 예금의 변동성이 커지고 상품 및 서비스 개선 등 마케팅 비용이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고, 과열 경쟁 시 상당한 비용만 지불하고 성과가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계좌이동제는 은행에 있어 기회요인이면서 위협요인이다.
 
지나친 과열경쟁을 지양하고 금융소비자로 하여금 주거래 계좌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가격 경쟁이 아니라 금융서비스의 질적 경쟁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계좌이동제를 빌미로 각종 혜택을 쫓아 빈번하게 옮기는 금융소비자가 많아질 경우 은행의 비용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금융위원회는 한번 옮긴 자동이체는 일정기간 제한하는 등 제도의 효율적인 운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년 동안 제도를 준비해 왔으나 시스템 불안은 여전히 남아있다. 금융은 안정성에 기반한 신뢰가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자동이체 전환 시 전산 오류 등으로 연체가 발생할 경우 금융소비자의 신뢰가 깨질 수 있기 때문에 테스트 기간을 좀 더 확보해야 한다. 시간을 좀 더 늦춰서라도 안정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새로운 제도는 서둘러 시행하기보다 충분한 테스트 기간을 가지고 실무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비단 계좌이동제 뿐만 아니다. 최근 금융위원회에서 추진하는 정책을 보면 마감일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원고를 쓴다는 느낌을 준다.
 
인터넷전문은행,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독립투자자문업 제도, 퇴직연금제도 개선(안) 등 주요 현안들도 시간에 쫓기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새롭게 도입하는 제도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