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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면치레' 그친 한미원자력협정, 국회 비준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등 핵심 목표에 못 미쳐
2015-04-24 21:01:05 2015-04-24 21:01:05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4년 6개월의 진통 끝에 지난 22일 마무리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실질적인 국익이 최대한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우라늄 농축 등 민감한 문제는 ‘양국의 협의체를 통해 해결한다’며 추후 과제로 미루는 등 한계가 분명하고, 정부가 강조하는 ‘핵활동의 자율성 확대’도 따지고 보면 겉보기로만 그렇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처리도 농축도 ‘추후 협의’
 
개정 협상의 최대 쟁점은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다시 연료로 쓰도록 하는 문제였다. 1973년 발효된 기존의 협정은 미국이 제공하는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는 미국의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고 규정했다.
 
이에 한국은 개정 협상에서 ‘포괄적인 자율성’을 요구해왔고, 결국 미국의 장기동의(포괄적 사전 승인) 형태로 바꿨다. 또 두 나라가 사용후 핵연료 재활용을 위해 공동연구 중인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에 대해서는 연구가 끝나는 2017년 이후 연구 결과를 협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현재 한국에 있는 연구 시설에서 파이로프로세싱의 전단계인 ‘전해·환원’ 공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재처리를 위해 가장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습식 재처리는 여전히 불가능하고, ‘전해·환원’은 파이로프로세싱의 첫 공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문제를 연구하는 평화협력원 비확산센터의 이병철 소장은 “기초 공정을 하게 된 것을 두고 '사용후 핵연료를 만질 수 있게 됐다’고 말하면 침소봉대”라고 논평했다.
 
두 번째 쟁점이었던 우라늄 농축에서도 한국의 뜻이 온전히 반영되지 못했다. 정부는 원자력 발전 연료인 우라늄을 20% 미만으로 저농축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이번 협정은 추후 구성될 차관급 상설협의체인 ‘한·미 고위급위원회’에서 일정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농축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미뤘다.
 
이병철 소장은 “재처리와 농축에서 대통령이 높여 놓은 기대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협상”이라며 “대학원이라면 B+ 학점 정도를 줄 만하다”고 평가했다.
 
◇국회 비준 여부에 제1야당 입장 모호
 
앞으로 1~2개월 후 양국 정부의 정식 서명이 이뤄지면 의회 비준 문제가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상·하원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기존 한미원자력협정을 포함해 한국이 체결한 29개 원전협정 가운데 국회 비준을 거친 협정은 하나도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법제처는 현재 비준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탈핵 시민단체인 에너지정의행동은 “외교부는 한미원자력협정은 단순한 ‘행정협정’에 불과하다며 국회 비준까지 필요 없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며 “그러나 미국처럼 가서명한 협상문 전체를 공개하고 국회 비준과 공개토론 등 가장 기본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평화협력원의 이병철 소장은 "외교부의 말대로 부분 개정이 아니라 전면 개정이기 때문에 국회 비준은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1야당의 태도는 분명치 않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23일 ‘비준’을 언급하지 않은 채 “국민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모호한 표현을 썼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원자력협정 가서명식에서 박노벽 외교부 원자력 협력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서명 후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탈핵 시민단체들 “파이로프로세싱은 해롭고 위험”
 
박근혜 대통령이 “(한미원자력협정으로) 자율적인 원자력 활동을 보장받았다”고 자찬했지만, 탈핵·환경 단체들은 부정확한 평가일뿐더러, 설령 그렇다 해도 ‘자랑할 일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에너지정의행동은 22일 성명에서 우라늄 농축과 핵 재처리 등과 관련된 한·미의 합의는 “헛된 꿈이자 위험한 꿈”이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핵 산업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일”일 뿐이며 “동북아 안보, 경제성, 지속가능성 등 다양한 기준을 놓고 보았을 때 국민에게 전혀 이롭지 않은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핵발전소 수출이나 핵연료의 안정적인 공급이란 명분은 핵무기 개발을 꿈꾸는 나라들이 흔히 쓰는 ‘핑계’라는 것이 비판의 이유였다.
 
환경운동연합은 특히 파이로프로세싱을 연구하는 자율권을 부분적으로 확보한 데 대한 문제 제기에 집중했다. 이 방식을 쓰다 보면 기체성 방사성 물질이 다량 방출되고, 간단한 과정을 통해 핵무기의 연료로 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환경운동연합은 “방사능 오염이 확대되고 핵확산으로 평화를 위협하는 재처리 기술에 대한 접근의 길이 열린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며 “원자력계의 밥그릇 확대용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재처리 기술 접근을 위한 협상을 정부가 주도했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정 국민을 위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과학기술이 무엇인지 정부와 언론이 되돌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녹색연합은 정부가 ‘핵주권’을 강조함으로써 문제를 호도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녹색연합은 “원자력 발전 확대와 파이로프로세싱 상용화, 우라늄 저농축에 대해 국민들에게 의사를 물은 적 있느냐”고 따져 물으며 “마치 국민은 원하는데 한미원자력협정 때문에 우리가 제대로 된 핵정책을 펴지 못했고, 이제 그 길이 열린 것처럼 하는 정부의 발언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녹색연합은 파이로프로세싱을 위해 드는 천문학적 비용과 위험 때문에 프랑스·일본에서도 상용화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반도의 평화, 미래세대의 안전,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을 위해 원자력에 의존해야 하는지, 우라늄을 농축해야 하는지 등을 국민에게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준호 기자(jhwang741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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