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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 벡의 별세와 위험사회
모난돌
2015-01-15 19:05:00 2015-01-15 19:19:03
5년차 사회학도인 나로서, 그의 이름을 모른다면 창피함을 스스로 알고 학교를 뛰쳐나감이 옳다. ‘위험사회론’의 창시자인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지난 1일 심장마비로 숨졌다는 사실이 3일 독일 언론에 보도됐다. 그가 썼던 그 유명한 저서, <위험사회>가 발간된 지 30년이 되는 올해.
 
<위험사회>의 저술 실마리는 1986년 4월, ‘그’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에서 비롯했다. 우크라이나 공화국 수도 키예프시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그 사고는, 사고 당시 31명이 사망하고, 5년 동안 7,000여명의 사망과 70여 만 명의 병원 치료를 부른 20세기 최악의 사고였다. 그 사고로 벡이 우리 사회가 ‘위험하다’고 저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벡은, 좀 앞서 나갔다. 더 큰 비극들이 체르노빌 사고를 집어삼키며 거대한 그림자로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체르노빌은, 21세기 지구촌에서 발생한 끔찍한 사고들의 전초단계에 불과했다.
 
위험사회론은 그 저격대상이 ‘사회’이므로, 그 논의의 저변이 과학기술사회학과 범죄사회학, 이어 사회문제론과 나아가 사회복지학까지 넓어진다. 제도와 기술의 첨단화가 오히려 “기술적 선택의 능력이 커짐에 따른 결과의 계산 불가능성의 증폭”을 불러일으키며, 사회에 편재하는 범죄가 낙인을 통해 확산되고, 이로 인한 위험의 증폭으로 사회문제가 심화된다는 논의까지 이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사회가 어디 하나 안심하고 발 디딜 곳 없는 일종의 ‘킬링필드’라는 얘기다. 너무 민감한가, 싶다가도 현실을 반추해볼 때,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진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자연스럽게 위험사회의 시발점인 원전 사고로 돌아가듯이, 한국의 원전이 삐걱댄다. 출처조차 밝히지 못한 해커들의 손에 기밀의 자료여야 할 정보들이 손쉽게 유출되는가 하면, 지난달에는 건설 중인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에서 질소가스 누출로 3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김종신 전 한수원 대표가 원전 용수처리 설비업체로부터 5년 간 부정 청탁과 뇌물을 수수해 징역 5년의 실형을 받은 4일, 원전 내부에서 곪고 곪아 있는 윗선에서의 비리 및 부실경영과 아랫선에서의 느슨한 조작 및 기강 해이가 그야말로 고소(苦笑)를 금치 못하게 한다. 
 
     ◇원전 비리 사태 질타(YTN화면 캡쳐)
 
고소로 그칠 일이 아니다.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 울리히 벡에 따르면, 근대화한 위험은 계급 지위여하를 막론하고 사회 전반에 ‘평등한’ 위험을 분배한다. 부실 경영의 선두주자로 자리를 확고히 한 한수원 덕에 원전 사고라도 발생하면 우리는 모두 ‘평등하게’ 피폭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의례적 대응조차 없이, ‘별 일 아니다’라는 말로 해킹 사태를 일축해버린 한수원에게, 답답함을 넘어선 분노가 증폭된다.
 
벡은 ‘승인된 근대화 위험’이라는 표현으로 위험이 사회화 및 공론화됨으로써 위해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문제로 승인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근대화 위험의 해결이 정치계의 당면과제로 떠오르고, 결국 이것이 공중 가치의 위협이 되느냐 안정 유지가 되느냐의 실마리가 공공기관과 정부의 손에 달린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미 ‘공공의 기관’인 한수원과 이에 대해 올바른 대책을 요구하지 않는 정부의 모양새를 보건대, 우리 사회는 말 그대로 근대화 위험을 ‘승인’만 한 셈이다. 그들이 승인한 근대화는 도처의 위험을 방치하고, 개인이 먹고살기도 힘든 한국 사회를 더 깊은 불안으로 내몬다.
 
이 불안은 정보 유출과 사망자 발생을 스쳐서 뇌물 수수에서 출발한 시설 관리의 해이, 줄줄이 고개를 숙이는 한수원 전·현직 간부들의 모습에서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된다. 지난 해 원전 납품 비리 문제로 호되게 두드려 맞은 ‘원전 마피아’들이, 아직도 제 몫은 남았다며 어디까지가 부패인지 끝장으로 치닫고 있다. 부패가 시작에 있었고, 끝끝내 그 과정과 결과까지 뭉뚱그릴 모양이다.
 
◇성수대교 붕괴 장면(사진=KBS1 캡쳐)
 
2014년 한 해, 경주 리조트 붕괴와 세월호 사건, 판교 테크노밸리 사고 등 ‘사회화한 위험’을 살갗 뜨겁게 느낀 국민들의 진저리가 반복될 판이다. 비단 지난 해 뿐이랴. 197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무허가 건물 정리로 졸속 건물 정비 및 건축에 나선 김현옥 전 서울시장은 3년 내 2000동이 넘는 아파트 건축을 목표로 날림·부실공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부족한 철근 양과 기준의 3배를 넘게 부과한 하중으로, 너무도 당연하고 어이없게 무너져 내린 와우시민아파트 붕괴를 필두로, 세월호 사건의 전신처럼 보이는 전형적 후진국형 인재였던 서해훼리호 사건, 1994년 용접 부실과 눈속임 보수 공사로 수십여명의 사상자를 냈던 성수대교 붕괴와 부실공사의 전형으로 이듬해 광복 이후 최대의 인명 피해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등의 한국 건설 참사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이들의 결정적 원인으로 ‘부정부패’를 지목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재벌그룹과 계열사 간의 부정청탁 및 용역업체와의 비자금을 통한 ‘검은 결탁’, 건설비를 줄여 은닉했던 날림 공사가 일일이 세기도 힘든 핏자국을 한국 건설 역사에 남긴 셈이다. 종이 수장으로 너무도 많은 사람의 목숨이 오갔다. 한국 사람들이 ‘위험 사회’라면 치가 떨리고, 뼈저리게 아플 수밖에 없는 기록이다.
  
울리히 벡은 ‘합리성에 기초한 근대성’을 지적하며 ‘성찰적 근대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 제시로 책을 결론지었다. 인류 공동체가 사회화한 위험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며 시민사회의 올바른 대응을 촉구하는 것이다.
 
그의 후기 저작 및 강연에서 알 수 있듯, 다소 추상적인 해결방안이다. 그의 타계에 깊은 애도가 이어지는 것은 ‘성찰적 근대성’을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대중의 탄식인 셈이다. 그가 부패한 정치와 근대화한 위험을 승인한 위험사회에 대한 시민 사회의 도전을 끊임없이 바랐듯이, 한수원의 부패 양상이 ‘전 대표’의 문제로만 묻혀버리거나, 신고리 원전 사태가 ‘실수’로만 치부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위험’한 일이다.
 
한수원은 해킹 사태에 처벌로 대응하기에 앞서, 이를 승인된 위험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국민들이 만족할 만한 안전한 답변을 보여줘야 한다. 비리를 근절하고, 골수까지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비단 원전의 문제가 아니다. 곪아 있는 제도와 잊힐 법한 비리들에, 우리는 일일이 경계하고 낱낱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근대화에 대한 성찰로써 그들의 변화를 거칠게 요구해야 한다. 울리히 벡은 타계했지만, 여전히 위험사회는 존속한다.
 
 
성지원 기자 www.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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