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中企가 키워놓은 시장..대기업이 '군침'
2013-10-22 18:14:16 2013-10-22 19:26:44
[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간신히 만들어 놓은 중소·중견기업 영역에 대기업이 자본을 무기로 발을 들여놓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경쟁을 촉진하고 시장 규모를 키운다는 평가도 있지만 결국 자본싸움에서 뒤쳐진 중소·중견기업들이 시장에서 밀려나는 형국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동반성장(상생)이 경제민주화 기류 속에 화두로 제시됐지만 생활가전 시장을 노리는 대기업의 행태에 중소기업계는 여전히 불편하기만 하다.  이들의 시장 진입에 속앓이하며 공정한 경쟁을 기대하고 있지만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속내다.
 
◇중소·중견기업 각축장에 뛰어든 대기업
 
김치냉장고는 지난 1995년 위니아만도가 처음 출시한 이래 삼성전자(005930)LG전자(066570) 등 대형 제조사들과 수많은 중견, 중소업체들이 시장에 가세했다. 2011년 들어서는 보급률이 90%를 넘는 등 대중화를 촉진하기도 했다. 현재 '원조' 격인 위니아만도와 후발주자 삼성전자가 시장 1위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그 뒤를 LG전자가 추격하는 모양새다.
 
침구청소기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부강샘스가 지난 2007년 침구청소기를 내놓으면서 시장은 지속적으로 확장세에 있다. 부강샘스는 2010년과 2011년, 2012년에 각각 130억원, 180억원, 250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시장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한경희생활과학과 일렉파워전자 등이 가세하면서 시장 규모는 급증했고 2011년에는 LG전자가, 지난 5월에는 삼성전자가 관련 제품을 출시하며 시장에 뛰어들었다.  
 
◇위니아만도는 최근 에어워셔 신제품을 내놨다(사진제공=위니아만도)
에어워셔 시장은 위니아만도가 지난 2007년 국내 브랜드로는 처음 소개한 이후 중소업체들과 대기업들이 차례로 진입하면서 생활가전 분야의 치열한 전장으로 떠올랐다.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LG전자는 에어워셔를 비롯해 가습기와 공기청정기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는 에어워셔라는 이름을 쓰지 않는 대신 자연가습청정기라는 이름를 사용하면서 시장을 노리고 있다.
 
특히 지난 2011년 살균제 파동으로 에어워셔가 가습기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시장은 60%가 넘는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에어워셔 시장은 2009년 5만대, 2010년 12만대, 2011년 20만대, 2012년에는 약 25만대 규모로 성장했다. 추동의 대표적인 가전제품으로 부상하면서 대기업 역시 이를 놓칠 수 없는 시장으로 인식하고 중소업체들과 경쟁하고 있다.
 
◇시장 확대 VS 과도한 마케팅
 
대기업들이 시장에 들어오면서 '판'은 커졌다. 자본에서 절대 우세인 대기업들은 마케팅에 힘을 쏟고, 이는 자연스레 품목에 관한 홍보가 돼 시장 자체가 커진다는 점에서 중소기업에게는 긍정적이다. 그러면서 시장은 성장기를 맞이한다. 대기업이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시장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대기업 진입으로 인해 기술경쟁이 촉발되기도 한다. 김치냉장고의 형태도 진화했다. 위니아만도가 뛰어든 시장 초기에는 뚜껑형의 형태가 대세였지만 곧이어 일반 냉장고 모양의 스탠드형이 등장했다. 위니아만도는 역으로 딤채 기술을 이용해 대기업의 각축전인 일반 냉장고 시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대기업 진입으로 시장 자체가 커지는 것에 중소·중견기업 관계자들은 내심 반가우면서도 속내는 불편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대기업이 들어오면 시장이 커져서 좋긴 한데…"라며 말을 아꼈다. 언급 자체를 불편해했다. 중소기업과 상생, 동반성장이라는 사회적 요구가 높아졌음에도 중소기업의 대기업 눈치보기는 여전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대기업은 막강한 유통채널과 브랜드 인지도, 자본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손쉽게' 장악한다. 대기업들은 전국 곳곳에 '베스트샵'이나 '디지털프라자' 같은 유통채널을 갖고 있어 손쉽게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 중소기업이 홍보와 마케팅,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입소문' 만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것과는 대조된다. 대기업의 자본력과 마케팅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결국 중소기업은 차별화된 기술력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을 가진다 해도 성공 가능성과 성장 지속성을 예단할 수 없다"면서 "지금 1위 기업이라 해도 대기업의 공세 속에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토로했다.
 
판매가 잘 되거나 높은 점유율을 기록해도 드러내놓고 자랑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한 관계자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듯이 중소기업이 사업을 키우면 대기업이 우회적인 방법으로 견제에 들어온다"면서 "대기업과 출혈경쟁을 벌여 살아남을 중소기업은 그 어느 곳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관계자는 "가격과 기술에 의한 공정한 경쟁이 아닌 과도한 경품 제공과 원가 이하의 덤핑 판매 등 다른 요소를 동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출혈경쟁을 유도해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기업을 무너뜨리고서는 시장 전체를 독점하는 것이 대기업의 기본 전략이란 얘기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결국 중소·중견기업이 차별화된 기술력만을 믿고 시장을 이끌기엔 현재 대기업 중심의 사업구조와 '무한경쟁 생태계' 안에서는 불가능하지 않겠냐는 자조섞인 한숨이 이들의 솔직한 속내다.
 
한편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따돌리고 전성시대를 연 품목도 있다. 전기밥솥이 대표적이다. 밥솥은 삼성전자와 LG전자(前금성사)가 2000년대 중반 중소기업 사업영역을 침범한다는 여론을 의식해 스스로 손을 뗐다.
 
특히 LG전자는 압력밥솥 폭발이라는 뼈아픈 과거를 안은 채 이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이후 쿠쿠와 리홈, 쿠첸 3강 체제를 이루다가 지난 2009년 리홈이 웅진쿠첸의 생활가전사업부를 인수하면서 밥솥시장은 쿠쿠와 리홈쿠첸(014470) 양강구도로 재편됐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