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록 폐기사건', '초안'의 성격이 운명 가른다
검찰 "초안은 완성된 대화록..삭제자 처벌 적극 검토 중"
전문가들 "'초안'은 완성된 대화록 아니야"..'삭제행위' 처벌 방침에 논란 불가피
2013-10-10 16:38:47 2013-10-10 16:42:34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2007년 남북정상 회의록 폐기의혹'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삭제됐다고 밝힌 회의록 초안의 성격이 사안의 핵심쟁점으로 떠오르 있다.
 
박성수 참여정부 법무비서관 등 참여정부 인사들은 지난 9일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발표와는 달리 청와대이지원에는 회의록 초안과 수정본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검찰은 청와대이지원에서 발견하지 못한 회의록 초안(복구본)과 수정본(발견본)을 봉하이지원에서 발견했으며, 특히 초안은 삭제된 것을 복구해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대화록(회의록)은 반드시 이관되어야 할 것이다. 이관이 안 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삭제가 되었다면 (문제가) 더 크다"고 밝혔다.
 
또 "초안이나 수정본, 국가정보원에서 보관하는 것 모두 다 완결된 형태이고 내용도 동일하다"며 "완성된 대화록 문건이 어느 것이든 삭제된 것이 중대한 문제"라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검찰측 발언을 종합해보면 검찰은 초안 역시 하나의 완결된 형태의 문건으로 대통령 지정기록물 대상이며 이를 삭제한 것에 대해 비중을 두고 형사처벌 가능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특히 "초안(복구본)이 원안에 더 가까운 완성본"이라며 초안에 상당한 의미를 두고 있음을 거듭 밝혔다.
 
이에 대해 참여정부 인사들은 "초안은 삭제된 것이 아니고 수정본과 함께 동일한 내용으로 청와대이지원에 탑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중복을 피하기 위해 제목 등의 표제부만 삭제된 것이고 내용은 존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참여정부의 이같은 주장이 나온 직후 "복구본, 발견본의 성격을 과학적 입증을 통해 결과를 발표하겠다"며 초안(복구본)을 대화록 중 하나로 보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검찰의 시각과는 달리 초안을 대화록의 한 문건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게 기록물관리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국기록전문가협회 관계자는 "공적인 기록물의 완성은 결재권자가 절차에 따라 결재를 하면서 효력을 가질 때 완성된다"고 전제했다.
 
또 "대화록 초안의 경우 결재권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프로세스에 따라 검토를 했지만 결제하지 않고 수정할 것을 지시하며 되돌려 보낸 만큼 결재한 것으로 볼 수 없고, 이 때문에 초안은 완성된 기록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따라서 청와대이지원이나 봉하이지원에서 완성된 대화록은 수정본 하나로 봐야 한다"며 "절차에 따라 폐기되었는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반려된 초안은 기록물이 아니기 때문에 삭제여부가 문제될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에서 정보기록관리학을 강의 중인 한 교수는 "검찰이 삭제된 초안을 복구했다고는 하지만 초안이 기록물인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은폐를 목적으로 고의적으로 지웠음이 입증되지 않는 이상 '삭제'라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기록관리학을 전공한 한 박사급 연구원도 "대화록 초안은 수정본을 만들기 위한 전단계 작업과정에 불과하다"며 "초안을 수정해 대통령이 승인한 수정본이 있는 이상 초안을 완성된 대화록 중 하나로 보기는 무리"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안으로 보면 초안을 삭제한 것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여부도 불투명하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초안의 문서성을 떠나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삭제를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으로 의율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초안을 일반적인 공문서로 볼 경우 '공용서류 등의 무효죄'를 검토할 수는 있겠지만 고의가 입증되지 않는 이상 형법상 처벌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검찰이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법리를 구성할지 매우 주목된다"고 말했다.
 
청와대이지원에서 대통령기록관으로 수정본이 이관되지 않은 것 역시 처벌 가능여부를 두고 앞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노 대통령의 이관지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삭제했다면 당연 형법상 공용서류 등 무효죄 등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는 데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대부분 일치한다.
 
그러나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고의성은 물론 목적성이 규명되어야 하는데 검찰이 이를 어떻게 입증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전날 참여정부 인사들은 "수정본은 당연히 이관된 줄 알고 있었으며 이관 대상에서 빠진 이유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말했다.
 
검찰은 모든 의혹에 대해서는 최종 수사결과발표 때 과학적인 입증을 통해 밝히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0일 검찰 고위관계자는 "나름대로 다 완성본이다. 이 시각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정치권도 수사결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으로 안다. 결과를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김경수 참여정부 비서관(사진 가운데)이 지난 9일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의록 폐기 의혹'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인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