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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제약 '불똥'에 들썩이는 재계..국민연금에 '시선집중'
"주주권 행사 현실화 우려" VS "해외기업 공격엔 함께 대응"
경제민주화 광풍으로 의결권 행사 확대에 무게
2013-01-25 17:54:31 2013-01-25 17:56:30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에 본격 나서면서 파장이 재계 전체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국민연금이 동아제약 분할에 공식적으로 제동을 건 것이 계기가 됐다.
 
재계 1위인 삼성을 비롯해 현대차, SK, 포스코 등 내로라하는 관련 기업들이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큰 손' 국민연금의 힘이다.
 
일각에서는 관치경제의 부활로까지 해석했다. 정부, 특히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이 막대한 보유 지분을 이용해 정부의 입김대로 재계를 움직이려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다만 아직 국민연금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데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놓고 내색할 수 없지 않느냐'는 게 해당 기업들의 공통된 기류였다. 속은 부글부글 끓으면서도 혹여나 불어 닥칠 후폭풍을 우려해 눈치 보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 그룹사 고위 임원은 25일 "경제민주화 요구와 맞물리면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현실화될 것으로 본다"며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적잖이 우려된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그룹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주주가치를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했는데 기준과 개념이 모호하다"면서 "경영에 참여하는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가치(이해)가 매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우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각에 따라 국민연금을 우호 지분으로 볼 수도 있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한 그룹사 고위 관계자는 "외부(해외기업) 공격에는 함께 대응하지 않겠느냐"며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단 이 관계자 역시 '경영권에 대한 침해나 개편이 없는 경우에 한해'라는 단서는 달았다.
 
대부분의 그룹들이 불편해하는 최대 우려 사항은 경영권의 핵심인 지배구조 개선 문제였다. 의결권 행사를 통해 순환출자를 실질적으로 제한, 지주사 체제 전환을 종용할 경우 국민연금 지분은 큰 부담이라는 얘기가 잇따랐다.
 
인수합병(M&A)이나 위험도가 큰 신수종 사업에 대한 도전, 후계 문제 등 이사회 선임, 치안이 불안한 해외지역으로의 진출, 투자계획 등 굵직한 경영 전반에 있어 국민연금이 안정성만을 추구할 경우 적잖은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경이 쓰인다는 얘기다.
 
실제 국민연금은 각종 현안에 제동을 걸 만큼 주요 그룹사들에 대한 보유 지분이 만만치 않다. 논란이 된 동아제약의 경우 지분 9.5%를 보유, 강신호 회장 등 특수관계인(14.64%)과 글락소스미스클라인(9.91%)에 이어 3대 주주에 올라 있다. 캐스팅 보트를 충분히 행사할 수 있는 비율이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최근 7.20%까지 지분율을 끌어올리며 최대주주인 삼성생명(7.21%)을 바짝 위협하고 있다. 삼성물산(9.68%)과 호텔신라(9.48%), 제일모직(9.80%)의 경우 국민연금이 이미 최대 주주다. 
 
삼성그룹에 대한 투자액만 총 20조원에 달할 정도다. 금융 계열사의 비금융사 지분을 제한하는 금산 분리까지 맞물릴 경우 삼성그룹 지배구조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삼성전자 본사
 
포스코(5.94%로 최대주주)를 비롯해 현대차, LG, SK, 롯데, GS, 한진, 현대중공업, 한화 등 10대 그룹에 대한 보유 지분 가치만도 41조8325억원에 달했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확보한 상장사만 230개사에 육박했고, 9%를 넘어선 기업도 60곳에 이른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시장 지배자 위치에 올라선 것이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연기금이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나라는 세계에 유례가 없다"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범위를 어떻게 정할지, 언제 행사할지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좁게는 주주총회 찬반 의결부터, 넓게는 기업의 투자 철회에 이르기까지 의결권 행사 방식은 다양하다"면서 "국민연금이 기업에서 워낙 막강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국민연금이 2030년까지 2000조원 규모로 불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향후 대부분 기업을 지배할 수 있는 규모가 된다"며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국민연금이 '정의의 기사'로 동원돼 의결권 행사를 무작정 강화하면 자칫 '연금 사회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홍정훈 국민대 교수는 "국민연금이 기업 주식을 갖고 있는 대주주인 만큼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의결권 행사는 자연스럽다"고 했으며, 채이배 경제개혁연대 회계사 또한 "국민연금이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국민의 투표권 행사와 마찬가지로 당연한 행위"라고 반론했다.
 
신성호 우리투자증권 전무는 "증시에선 국민연금의 의결권 확대를 나쁘게 보지는 않는 분위기"라며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통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잘못된 경영 관행을 바로잡는다면 해당 기업의 주가는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경영권 부당 승계, 일감 몰아주기, 납품단가 후려치기, 골목상권 진출 등 각종 편법과 불공정 행위에 대해 공공의 대변자로서 목소리를 높일 경우 시장의 투명성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주가 등 단순한 주주가치에만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시장이 건강하게 다시 태어나도록 힘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견이 엇갈리고는 있지만 경제민주화 광풍 속에 여야 가리지 않고 국민연금의 일정 역할을 주문하면서 의결권 행사는 더욱 확대될 것이란 분위기가 우세하다.
 
이미 지난해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주장하며 논란을 촉발시킨 데 이어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대기업에 대해 주주권 및 사외이사 추천권 행사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민연금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것도 이런 상황을 뒷받침 하고 있다.
 
한편 국민연금은 지난해 518차례 주주총회에 참석해 2498건의 안건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중 찬성이 81.5%, 반대가 18.4%였다. 특히 반대표 행사 비율은 2008년 5.4%에서 2009년 6.6%, 2010년 8.1%, 2011년 7.0% 등 증가추세다. 
 
◇10대그룹에 대한 국민연금의 지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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