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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의혹)법원의 어이없는 압수수색영장 기각사유
기각사유.."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계약체결·수사 필요성 소명 부족"
2012-02-08 14:50:53 2012-02-08 15:08:25
[뉴스토마토 특별취재팀] 2010년 11월29일 환 헤지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로 인한 피해를 둘러싸고 피해기업들과 은행 간의 민사소송 판결 선고가 예정돼 있었다.
 
이에 키코 사기의혹 고발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는 판결 선고를 앞둔 몇일 전 키코를 판매한 11개 은행들의 내부 자료를 들여다보기 위해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압수수색 영장은 기각당했다. 핵심 사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계약체결이라는 것이다. 둘째, 수사의 필요성 소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 수사는 은행 내부자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채 진행해야 했다. 그래서 검찰은 한달 후에 미국의 CFTC와 SEC에 의견을 조회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법원의 이 같은 압수수색 영장 기각은 상당히 이례적인데다, 기각 사유는 어이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계약"이라서 압수수색 안된다?
 
당시 수사진은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 기각 사유를 보고 혀를 끌끌 찼다. 특히 "자유의사에 의한 계약 체결"을 기각 사유로 든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고 한다.
 
모 변호사는 "모든 사기 범죄 피해자는 자기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계약을 체결했다가 피해를 당한 것"이라며 "법원처럼 해석하면 이 세상에 처벌할 수 있는 사기 범죄는 없을 것이고,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 사기범죄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다수의 사기 범죄는 계약의 중요한 내용을 숨기거나 오인하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사기 범죄가 처음부터 상대방을 속일려는 의도를 갖고 있어야만 성립되는 범죄도 아니다.
 
결국 법원이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계약"을 기각 사유로 내세운 것은, 그 시점에 이미 키코 피해 관련 민사사건 판결선고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무리하게 영장을 기각한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수사의 필요성이 소명 안됐다"?
 
 
또 다른 기각 사유는 "수사 필요성의 소명이 안됐다(부족하다)"는 것이다.
 
형사소송법 등 관련 법규에 의하면 압수수색 영장청구를 받은 법관은 범죄와의 관련성이 없거나 범위가 너무 넓을 때 영장청구를 기각 할 수 있다. 다만, 이때도 범위 등 부분적인 기각을 할 수 있고 방법을 제안할 수 있다. 그런데도 영장이 기각된 것이다. 
 
변호사 등 법률가들은 당시 이를 두고 상당히 이례적인 결정으로 봤다. 압수수색영장 청구가 기각되기란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법원 사법연감 통계에 따르면, 압수수색 영장청구에 대한 영장 발부율은 최근 5년을 기준으로 평균 90.7%에 이른다. 
 
영장발부 여부는 순전히 담당 법관의 판단에 달려 있지만, 당시 이른바 '키코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를 끌어 모을 때다. 은행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기업만 200여개가 넘었고, 이들이 입은 피해와 맞물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수사 필요성의 소명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한 것을 두고 검찰은 물론, 키코 사건에서 중소기업을 대리한 변호사들도 "코미디 같은 일"이라며 허탈해 했다고 한다. 
 
키코사건과 관련, 당시부터 중소기업들을 대리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은행들을 압수수색해서 관련자료를 까봐야 어떤 의도로 은행들이 키코상품을 팔았는지 진상을 알 수 있는데 아예 그 전 단계에서 기각해버리니까 검찰도, 중소기업도 힘이 빠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게다가, 영장청구가 기각된 시점이 11월29일 직전이라는 점을 두고 여러 의혹을 제기하는 법률가들도 적지 않았다. 2010년 11월 29일은 서울중앙지법 4개 재판부가 118개 중소기업이 제기한 소송 91건에 대해 선고한 날이었다. 
 
판결 결과는 중소기업의 참패였다. 118개 기업 가운데 99개 기업이 패소했다. 일부 승소한 19개 기업도 620만원에서 많아 봐야 약 14억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수십, 수백억원의 손해를 입은 것에 비해 초라한 배상판결이었다. 
 
당시 재판부들은 "콜옵션과 풋옵션의 교환으로 이루어지는 키코계약의 기본 구조는 구조적으로 불공정하거나 환헤지에 부적합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이유를 밝혔다. 
 
특히 환율의 변동성에 대해 은행측이 기업들을 기망했다는 주장에 대해 "환율은 본질적으로 변동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키코 사건에서 중소기업을 3년째 대리하고 있는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은행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을 때엔 벌써 재판부는 결론을 내리고 판결문을 거의 썼을 시기"라며 "이것과 영장기각의 연관성을 지금도 지울 수 없다. 타이밍이 안 좋았다"며 아쉬워했다.
 
이처럼 법원에 의해 은행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검찰은 미국에서 온 의견조회 문건 등을 토대로 치열한 법리검토를 거쳤고, 2011년 1월말에는 기소의견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리고 2월초에 수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2월1일 한상대 지검장이 취임한 이후 기류가 바뀌면서 수사 동력도 잃고, 그로부터 5개월이나 지난 7월19일에야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무혐의로 종결지었다.
 
키코소송을 진행 중인 중소기업들과 변호사,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 등 사건 관련자들은 "결국 법원의 영장 기각이 사건의 큰 흐름을 바꾼 셈"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또 "취임과 함께 금융범죄 등에 엄중하게 대처하겠다던 한상대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사가 다 됐던 은행사건은 덮고 애먼 ELW 사건에만 힘을 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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