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하림 기자] 원재료 가격 변동을 납품대금에 반영하도록 도입된 납품대금 연동제가 시행 3년째를 맞았지만,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 업종에서 원가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못하는 가운데, 제도적 예외와 거래 관행 등이 연동제 활용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입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인쇄·플라스틱 등 여러 업종에서 납품대금 연동제를 실제 거래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소액 계약에 대한 적용 예외부터 복잡한 절차, 거래처 상실 우려까지 제도 활용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도 다양합니다.
인쇄업계에서는 소규모 계약이 많은 업종 특성과 거래상 지위의 한계로 납품대금 연동제를 활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한국인쇄협동조합연합회 관계자는 "인쇄업계는 소액 계약이 많아 납품대금 연동제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중소 인쇄업체들은 거래에서 '을'의 입장에 있다 보니 제도가 있어도 적용을 요구하기 부담스럽다"며 "계약금액이 크더라도 연동제를 적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앞서 연합회는 지난 2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쇄용지 가격 상승에 따른 피해 구제와 정부 지원을 촉구했습니다. 인쇄업계는 제지 대기업들의 가격담합으로 원가 부담이 커졌지만, 납품단가에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연합회는 이러한 경영난 속에 중소 인쇄업체 4000여곳이 폐업 위기에 놓였다고 호소했습니다.
플라스틱 업계에서도 제도 활용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특히 절차상의 부담과 업체 간 경쟁이 걸림돌로 지목됩니다. 한국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 관계자는 납품대금 연동제에 대해 "잘 시행되지 않는다"며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해 실제 활용에 불편함이 많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업체 간 과당경쟁이 심해 거래처를 잃을 우려가 있다"며 "중소업체들은 협상력이 부족하다 보니 납품대금 연동제 적용을 요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원청업체에 대한 높은 거래 의존도는 산업단지에 입주한 중소 제조기업에서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원재료 가격이 오르더라도 납품단가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상승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인화 산업혁신파트너스 대표는 "50인 미만 소기업은 원청 대기업이나 1차 협력사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절대적이므로 대체 불가능한 독자 기술이 없는 한 단가 협상에서 철저히 '을'의 위치"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중소기업이 마진 축소를 고스란히 감내하며 비용 전가의 악순환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2023년 10월부터 시행된 납품대금 연동제는 수탁·위탁거래에서 주요 원재료 가격이 사전에 정한 기준 이상으로 변동하면 약정된 산식에 따라 납품대금을 조정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현행 상생협력법은 거래 기간이 90일 이내이거나 납품대금이 1억원 이하인 수탁·위탁거래 등을 연동 약정 의무의 예외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거래 당사자가 연동하지 않기로 서면 합의하는 것도 허용합니다. 결국 중소기업들은 약정 요구가 부담스러워 제도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지난 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중소벤처기업부 국정감사에서는 원가 정보 공개에 대한 부담도 납품대금 연동제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됐습니다. 송재봉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원가 정보가 오히려 납품단가 인하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여러 원재료 가격이 각각 상승하더라도 개별 원재료의 연동 기준에 미달하면 납품대금 조정이 이뤄지지 않는 문제도 짚었습니다.
정부도 연동제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이소영 중기부 장관은 이에 대해 "실제 제재가 약하다 보니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며 "연동제 발동 요건 보완과 제재, 계약 단계에서의 자동 적용 방안 등을 포함해 제도 전반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정부는 오는 12월부터 납품대금 연동제 적용 대상에 전기·가스 등 에너지 경비를 추가할 예정입니다. 다만 적용 범위 확대와 함께 현장의 거래 관행과 협상력 격차를 개선하는 것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소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7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중소벤처기업부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하림 기자 poetr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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