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연임을 제한하기 위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 논의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안건조차 올리지 못한 상태인데요. 금융위원회가 정부안을 확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년도 예산안과 세제 개편, 부동산 정책 등 다른 현안에 밀려 연내 결론이 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정무위 법안심사 '감감무소식'
8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는 최근 금융지주 회장 연임과 지배구조 개선 내용을 담은 금융사 지배구조법 개정안들을 법안소위에 심사 안건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현재 국회에는 금융지주 대표이사의 연임을 한 차례로 제한해 사실상 3연임을 금지하는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안과 회장 연임 때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하는 김현정·박홍배 민주당 의원안 등이 계류돼 있습니다.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집권을 견제해야 한다는 큰 방향에는 당정 간 이견이 크지 않지만 구체적인 규제 방식에서는 이견이 여전합니다. 당초 금융당국에서는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을 한 차례로 제한해 최대 임기를 6년으로 묶는 방안이 거론됐습니다. 하지만 주주의 선택권과 금융사 경영 자율성을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3연임 금지 자체를 법으로 명문화하는 방안은 철회하는 쪽으로 가닥히 잡혔습니다.
대안으로 회장 연임 때 회장후보추천위원회 위원의 75% 이상 동의를 받도록 하고 3연임에는 전원 동의를 요구하는 방안도 검토됐습니다. 다만 이 방안 역시 여당 내부에선 실효성이 없다는 반론이 나오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주총회 의결 문턱을 높이는 방안도 제시됐는데요. 현행 보통결의보다 요건이 까다로운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해 주주의 견제 기능을 강화하자는 취지입니다. 다만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이 과거 주총에서 높은 찬성률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실제 장기 연임을 막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견해도 나옵니다.
금융위가 마련 중인 지배구조 개선 관련 정부안도 당초 예상보다 계속 늦어지고 있습니다. 금융위는 장기 연임 통제뿐 아니라 이사회 독립성 강화와 기관투자자의 역할 확대, 내부통제 실패 때 성과급을 환수하는 방안 등을 함께 검토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연임 제한 방식을 놓고 당정 간 이견이 이어지면서 최종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정책실장 공백도 변수입니다. 김용범 전 실장이 사퇴한 이후 경제·금융 정책 전반에 대한 청와대와 정부 간 조율을 담당할 후임 정책실장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금융위 내부에서도 지배구조 개선안을 확정하려면 추가적인 정책 조율이 필요하다는 분위기입니다.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정기국회에서는 내년도 예산안과 세법 개정안을 비롯해 부동산 대책 등 정부 핵심 정책을 둘러싼 논의가 예정돼 있다"면서 "10월 국정감사 일정까지 감안하면 정무위가 지배구조법 논의에 집중할 수 있는 기간은 더욱 줄어들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금융위가 정부안을 확정하더라도 정무위 법안소위와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까지 거쳐야 하는 만큼 연내 처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유동수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3일 여의도 국회에서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KB 등 현행 기준으로 인선 진행
법 개정 작업이 늦어지면서 최고경영자(CEO) 인사를 앞둔 금융사들은 새로운 규제의 직접적인 영향권에서 한발씩 벗어나는 모양새입니다.
가장 먼저 인선이 마무리되는 곳은 KB금융입니다.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오는 11일 3명의 차기 회장 후보를 대상으로 심층 평가를 진행한 뒤 차기 회장 최종 후보 1명을 확정합니다. 이후 자격 검증과 이사회 추천을 거쳐 오는 11월 임시 주주총회에서 차기 회장이 선임됩니다. 양종희 현 회장의 임기는 11월20일까지입니다.
KB금융은 당초 새로 마련되는 지배구조 개선안이 처음 적용되는 금융지주로 꼽혔습니다. 금융당국이 연초부터 지배구조 개편 논의를 진행하면서 현 회장의 연임 여부부터 새로운 기준을 적용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개선안 발표가 수개월째 미뤄지는 사이 KB금융의 회장 승계 절차는 막바지에 달했습니다. 지배구조법 개정에 앞서 금융당국이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내놓더라도 최종 후보 확정 이후 경영 승계 절차에 소급해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수협은행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오는 11월17일 임기가 끝나는 신학기 수협은행장이 연임에 도전한 가운데 차기 행장 공모에는 신 행장을 포함해 모두 6명이 지원했습니다. 은행장추천위원회는 이달 중 후보 면접 등 후속 절차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시중은행장들도 연말 임기 만료가 줄줄이 도래합니다.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등 5대 은행장의 임기가 모두 연말에 만료됩니다. 지배구조법 개정이 연말까지 지연될 경우 은행권 인사 상당 부분이 기존 법 제도를 근거로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내년 3월 황병우 회장의 임기가 끝나는 iM금융도 조만간 차기 회장 승계 절차에 돌입할 예정입니다. 당국 지침에 따라 승계 일정을 예년보다 앞당겨야 하는데요. iM금융은 최근 CEO 세부 자격요건을 정비했고 이르면 이달 말부터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지주사들은 법 개정 여부와 별개로 당국이 지배구조 개선 방향을 제시하면 정관이나 내부 규정에서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을 검토하고 승계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입장입니다. KB금융 역시 이번 회장 선임 과정에서 후보 평가 기간을 늘리고 단계별 일정을 사전에 공개하는 등 승계 절차를 이전보다 강화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방향 자체는 이미 분명하기 때문에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새로운 법이나 구체적인 기준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 중인 승계 절차를 바꾸기는 어렵기 때문에 일단 현행 규정에 맞춰 인선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복도에서 직원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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