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호황’보다 어려운 일
2026-09-03 15:49:06 2026-09-03 16:16:06
지난달 21일 삼성전자(005930) 안팎에서는 반도체 호황으로 번 돈을 어떻게 나눌지를 두고 서로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직원들은 추가 보상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고, 회사는 같은 날 최대 110조원 규모의 주주환원 방안을 발표했다.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직원들은 “우리가 벌었다” 했고, 디바이스경험 직원들은 “반도체가 어려울 때 함께 버텼다”고 맞섰다. 주주도 가만있지 않았다. 대한민국주주운동본부는 앞서 7월22일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이 주주 권리를 침해한다며 전영현·노태문 대표를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성과급은 원래 기업과 직원의 이해를 일치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보상을 사업부별 실적과 연동하면서 어느 사업부가 얼마를 벌었고, 누구에게 얼마를 나눠야 하는지 드러나면서 갈등의 단초가 됐다. 회사와 직원의 이해를 맞추려던 제도가 오히려 직원 간 이해를 갈라놓은 셈이다.
 
아울러 성과급 논란의 밑바탕에는 기업과 직원의 서로 다른 ‘시간표’가 있다. 기업은 수년간의 투자와 사업 사이클을 내다봐야 한다. 당장 적자가 나더라도 미래를 위해 거액을 투자하는 이유다. 반면 근속 기간은 짧아지고, 이직도 잦아지면서, 노동자 입장에서 당장의 성과와 보상이 중요하다. 장기투자를 앞세우는 회사와 올해의 기여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노동자의 충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충돌을 합의로 해결한 사례가 없진 않다. 1950년 미국 자동차노조(UAW)와 제너럴모터스(GM)는 임금을 물가와 생산성에 연동해 올리고, 퇴직연금과 의료보험을 회사가 부담하는 5년짜리 협약을 맺었다. 이른바 ‘디트로이트 협약’이다. 협약에 따라 GM은 직원들의 생활 안정과 임금 인상과 복지를 보장했다. 노조는 계약 기간 동안 임금 인상 요구를 하지 않았고 생산과 투자 등 경영 판단에도 개입하지 않았다. 포드와 크라이슬러도 뒤이어 비슷한 협약을 체결했다. 이익이 날 때마다 협상판을 새로 벌이는 대신, 회사와 직원이 가져갈 몫과 지켜야 할 선을 5년간 미리 정한 것이다.
 
삼성전자에서 비 반도체 분야를 맡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중심의 동행노동조합원들이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 사옥 인근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금융권은 일찌감치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금융회사 임직원들은 단기 실적을 바탕으로 성과급을 챙겼지만, 이후 부실이 드러나면서 회사는 막대한 손실을 떠안았다. 국내에서도 2019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가 터졌다. 은행 직원들이 실적을 채우기 위해 고위험 상품을 팔았고, 투자자들은 뒤늦게 원금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 이후 금융권이 성과급 일부를 수년에 걸쳐 지급하고, 손실이 확인되면 삭감하거나 환수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삼성에 이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성과급 일부를 장기 성과와 연동하고, 호황기 재원을 불황기에 활용하는 방식은 노사 간 서로 다른 시간표를 맞추는 데 참고할 만하다.
 
호황을 맞은 뒤 직원 보상과 주주환원, 미래 투자에 쓸 몫을 정하려 하면 충돌은 피하기 어렵다. 액수보다 먼저 정해야 할 것은 배분의 기준과 절차다. 그렇다고 한 번 정한 기준을 계속 고수할 필요는 없다. 디트로이트 협약도 5년의 계약 기간이 끝난 뒤 달라진 상황에 맞춰 다시 협상했다. 경영 환경에 따라 기준은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를 직원과 주주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산업의 근간을 뒤바꾼 인공지능(AI) 혁명이 불러온 반도체 슈퍼사이클. 어렵게 맞은 호황이 원망과 박탈감만 키우는 결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호황을 맞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그 결실을 나누는 것인지 모른다.
 
이보라 산업1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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