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지방 발전을 가로막는 ‘지방화’의 족쇄
2026-07-02 06:00:00 2026-07-02 06:00:00
제8회 6·3 지방선거가 끝났지만, 그 여파가 오래 남아 있다. 사상 초유의 투표지 부족 사태를 초래한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분노가 거세며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논의가 뜨겁다. 지방선거 결과와 별도로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정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는 지역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자 내년부터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추진할 계획이다. 전국 10곳의 혁신도시에 총 153개 공공기관을 내려보내는 1차 지방 이전이 2019년에 완료되었고 나머지 수도권 소재 350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2차 지방 이전이 진행될 예정이다. 
 
1차 이전은 대규모 공공기관을 지방에 나누어 분산하다 보니 단순히 인구만 늘려주었을 뿐, 지역 산업 발전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단점을 노출했다. 이 문제를 해소하고자 2차 이전은 지역별로 ‘산업 클러스터 구축’을 목표로 설정했다. 즉, 특화된 전략 산업과 연관되는 기관과 기업들을 묶어 한 지역에 배치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장을 호남권에 신설하는 안이 진지하게 고려되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 수요 확대에 따른 신규 생산설비 투자를 비수도권에 유도하기 위해 파격적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방안을 제공할 방침이다. 반도체 공장의 비수도권 건설은 장단점이 명확히 대조되기 때문에 실제로 이행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무엇보다 반도체와 같은 첨단 공장을 지방에 설립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노력뿐 아니라 지자체의 전폭적 지원과 지역 주민의 포용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단순히 공장 부지와 혜택만 제공하는 것을 넘어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우수한 인재가 자발적으로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기업이 원하는 여건이 갖춰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1차로 지방에 이전한 공공기관들을 살펴보면 이전 후 성과는 그리 밝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1년에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이 기업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혁신도시 인근 지역에 산업 기반이 조성되어 있지 않고 공공기관의 자율적 운영을 옥죄는 제약이 많다는 것이 그 원인으로 꼽혔다. 특히, 공공기관에 유무형의 지역화 의무를 부과해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것이 문제로 밝혀졌다. 
 
‘지역 인재 채용 할당제’가 대표적이다. 신입 사원을 채용할 때 일정 비율 이상을 지역 대학 졸업자로 선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 결과, 공공기관의 인력 구성이 지역 대학 출신에 편중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4년 보고서에서 한전, LH 등의 공공기관에서 대졸 지역 인재 전형 합격자 중의 50% 이상이 특정 대학 졸업자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공공기관 인력에서 한 대학의 동문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 학연 중심의 파벌이 형성돼 조직의 위계질서가 흔들리고 경쟁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신입 사원뿐만 아니라 기관장과 임원 자리도 지역 유지와 정치인이 밀고 들어온다. 혁신도시의 공공기관 대다수에서 기관장, 감사, 상임이사, 비상임이사를 맡은 토착 정피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방 이전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임원 중에 지자체 단체장, 지역 국회의원·도의원·시의원, 시민단체 출신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 보면 놀랄 만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치열한 자리다툼에 국제적 시각과 전문 능력을 갖춘 인재가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다. 
 
공공기관이 활용하는 외주 업체도 지방화 압박이 강하다. 지역경제와 상생을 명분으로 지방 기업을 도와주라는 부탁과 로비를 막아내기 쉽지 않다. 전국 조직을 갖추고 전 국민 대상으로 봉사하는 공공기관이 지방에 이전한 다음부터 지방 기관으로 전락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민간기업이라고 지방화의 족쇄에서 자유롭지 않다. 수도권에서 지방 도시의 산단으로 공장을 이전한 기업인은 지자체장이 교체될 때마다 새로운 정책에 협조해 달라는 요구가 쏟아진다고 하소연한다. 그런 요구에 부응해 지자체장이 중점을 두는 사회공헌 사업에 기부했더니 그다음에 경쟁 후보가 당선되며 전임자와의 유착을 파헤친다고 샅샅이 조사해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공장을 유치할 때는 온갖 혜택을 내걸다가 일단 공장을 지으니 그게 인질이 되어 무리한 요구를 해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에 소재한다고 지방화를 강요하는 연성 규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지방의 발전은 요원하다. 분절적이며 폐쇄적인 지방화를 탈피해야 글로벌 기업도 몰려오는 세계적 수준의 지방으로 발전할 수 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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