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유서 대필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강기훈씨에게 국가가 손해배상금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다만 강씨 측이 주장한 검찰 수사·기소 전반의 조작 및 위법성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강씨 측은 “사건의 본질을 외면한 판결”이라고 반발했습니다.
'유서 대필 사건'으로 옥살이를 했다가 재심 상고심을 거쳐 24년 만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강기훈씨가 국가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판에 출석한 2016년 11월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변론을 끝내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고등법원 민사5-1부(재판장 송혜정)는 21일 강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대한민국이 강씨에게 5333만원을 추가로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번 파기환송심은 대법원이 2022년 11월 일부 국가배상 책임을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데 따른 겁니다. 앞서 원심은 국가가 강씨에게 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면서도 수사 과정에서 이뤄진 일부 개별 불법행위에 대해선 장기소멸시효가 만료됐고 봤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 판단엔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봤습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번에도 강씨에 대한 추가 위자료 지급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검찰이 사건을 조작했고, 수사 및 공소유지 전반이 위법했다는 강씨 측 주장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사건 손해배상 소송 대리인단은 이날 판결 후 논평을 내고 “이번 결과는 이 사건을 개별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문제로만 한정하고, 검찰이 주도한 수사 전반과 공소제기·유지의 불법성을 끝내 인정하지 않아 ‘유서 대필 조작사건’의 본질을 또다시 외면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서 개별 불법행위와 수사 전반의 조작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며 “검찰이 자행한 가혹행위, 증거은폐, 피의사실 공표는 낱낱의 독립된 인권침해가 아니라, 오직 강씨를 유서 대필범으로 조작해 내기 위해 동원된 불가분의 수단이자 폭력의 구조 그 자체였다”고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91년. 당시 대학가에선 노태우정권에 대한 항의 시위와 분신이 잇따랐습니다. 그런 가운데 1991년 5월8일, 전국민족민주연합 사회부장이던 김기설씨(서강대 재학)가 분신으로 숨졌고, 검찰은 그의 친구였던 강기훈씨(명지대 재학)가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했다며 기소했습니다.
수사 과정에선 밤샘조사와 폭언·폭행이 이어졌고 변호인 입회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김씨의 유서와 강씨의 진술서 필적이 같다는 감정 결과를 내놓으면서, 강씨는 자살방조 혐의 등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됐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대표적인 검찰의 조작 기소 사례로 거론됐고,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2018년 “무고한 피의자를 유서 대필범으로 조작한 사건”이라고 공식 규정했습니다. 강씨는 2015년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받았습니다.
하지만 10년 넘게 이어진 민사 재판에서는 수사기관의 개별 불법행위에 대한 일부 국가배상 책임만 인정됐습니다.
2017년 7월 1심 재판부는 검찰의 밤샘조사·폭언·폭행 등의 불법성 일부를 인정하며 배상책임이 있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일부 불법 행위는 장기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했습니다. 2018년 5월 2심 역시 “수사 과정에서의 개개의 불법행위와 국과수 감정의 오류만을 근거로 하여 수사 및 기소 전반에 대한 불법행위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원고들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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