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나의 알코올 일지17) ‘똑딱주’는 이승에서 한 번만
2026-04-24 08:55:03 2026-04-24 08:55:03
요즘이야 그렇지 않지만, 예전의 술꾼들은 대체로 고주망태가 많았다. 술꾼도 세태에 따라 행태가 바뀐다. 한국 사회가 다소 모던해지면서 지금의 술꾼 중에는 하루키 스타일이 늘어나는 모양새다. 위스키 족이 늘고 있다는 얘기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 가지에 열심인데 하나는 소설을 쓰는 일이고 또 하나는 달리기이며 또 다른 하나는 위스키를 즐기는 것이다. 그의 소설이야 ‘거의 미친 수준’의 글로 그 천재성은 말할 것도 없다. 『1Q84』나 『기사단장 죽이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상상력의 작품들이다. 오죽하면 영화로 만들기가 불가능하다는 얘기까지 나올까.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위스키를 좋아했다. 그는 위스키 책을 쓰기도 했다.(이미지=온누리북스)
 
『기사단장 죽이기』의 주인공 ‘나’는 전설의 화가이자 친구 아버지인 아마다 토모히코의 병실에서 그가 그린 그림 속 인물인 기사단장을 칼로 찔러 죽인 후 병실 바닥을 열고 머리를 내민 ‘긴 얼굴’을 따라 지하의 통로를 거쳐 한참을 걸어간다. 도중에 ‘얼굴 없는 남자’가 지시하는 대로 메타포의 강을 건너기도 하고 어릴 때 죽은 어린 누이동생을 닮은 돈나 안나라는 작은 여자를 만나기도 한다. ‘나’는 그녀의 도움으로 현실과 연결된 좁은 통로를 발견하고 결국 언젠가 집 뒤에서 발견한 이상한 사당 묘 같은 구덩이에 도착한다. 구덩이 위에서는 앞집 남자 멘시키가 기다리고 있다. 멘시키는 일본어의 다른 말로 ‘건너다’란 뜻을 갖는 단어이다. 이 과정이 2권 362쪽에서 440쪽까지 무려 80페이지에 걸쳐 전개된다. 이 페이지를 읽을 때는 유체이탈을 경험한다.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 그건 무라카미 하루키가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건 혼(魂)이 써 내려간 것이지 육신이 써 내려간 글이 아닌 셈이다. 쓰는 사람들로서는 이런 글을 보면 절망하게 되는데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문학적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말이 길었는데 결국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런 글을 쓴 하루키라면 정신을 쉬고 내려놓기 위해 결국 술을 찾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위스키 광이다. 하루키가 가장 좋아하는 술은 아일라 계열의 라가불린인 것으로 보인다. (『기사단장 죽이기』의 앞집 남자 멘시키가 즐겨 마신다) 아일라 계열의 또 다른 브랜드인 아드벡은 국내 유명 화가이자 설치작가인 박찬경이 한때 즐겨 마셨던 술이다. 그의 형 박찬욱은 아드벡보다는 카발란 팬이다. (<헤어질 결심>에서 탕웨이가 죽이는 남편은 카발란을 마신다) 하루키는 자신의 온갖 소설에서 위스키를 등장시키는데 조니 워커(『해변의 카프카』)나 시바스 리갈(『노르웨이의 숲』) 등 비교적 대중적인 위스키를 작품의 분위기에 따라 선택하곤 한다. 하루키는 한때 재즈바를 운영하기도 했다. 장사를 하면 장사 품목에 대한 지식이 는다. 당연히 이때 그는 모든 위스키를 다 마셔 본 것으로 보인다.
 
영화 <헤어질 걸심> 속 탕웨이 남편 기도수(유승목)는 위스키 카발란을 좋아한다.(사진=모호필름)
 
모든 술이 그렇지만 위스키도 좀 알고 마시면 좋다. 최소한의 상식은 스카치위스키냐 버번위스키냐를 구분하는 정도이다. 스카치는 스코틀랜드에서 나오는 모든 위스키이다. 위에 말한 아드벡이나 라가불린 말고도 좀 안다, 하는 사람들이 마시는 맥켈란, 글렌모렌지도 스카치위스키이다. 몰트와 몰트를 섞은, 그러니까 쉽게 말해 위스키끼리 섞어 짬뽕으로 만든 스카치가 발렌타인, 조니 워커, 시바스 리갈 등이다. 시바스 리갈은 박정희의 최애주였다. 폭탄주에 어울리는 만큼 다소 싸구려라는 인식이 있었다. 반면에 미국산 버번은 찰스 부코스키 같은 ‘고주망태 작가’가 즐겨 마신 술이다. 짐 빔, 잭 다니엘, 와일드터키 등이다. 위스키는 이렇게 스코틀랜드산이냐, 미국산이냐에 따라 다르고 여기에 아일랜드산, 캐나다산, 일본산 등이 더 붙는다.
 
지역에 따라 종류도 가지가지이며 이걸 또 재료로 나누고 (보리, 옥수수, 호밀) 이걸 또 제조 방법에 따라 나눈다. 곧 싱글 몰트인가 블렌디드 몰트인가 아니면 이것저것 다 섞은 블렌드 위스키인가에 따라 경우의 수는 어마어마해진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마시기도 전에 질린다. 위스키는 목 넘김의 짜릿하면서도 깊은 배덕의 맛, 코끝으로 서서히 퍼지는 향취, 그리고 뱃속까지 뜨끈해지는 기이한 섹시함으로 마신다. 각자 취향은 19팩토리얼(19×18×17×… ×1)의 수준이 된다. 그건 커피의 종류가 원두가 어디 산이냐, 어떻게 로스팅했느냐, 어떤 굵기로 갈았느냐, 또 그걸 어떤 방식으로 내려서 먹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건 와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같이 술 마실 때 이건 뭐고 저건 뭐며, 그래서 이 맛은 어떻고 저 맛은 어떤지 시시콜콜 얘기하는 사람들을 두고 흔히들 ‘밥맛’이라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은 그래서 건성건성 읽은 편이다. 전문가가 되려고 애쓰기보다 그냥 적당히 자기가 좋아하는 브랜드 하나를 고르면 된다. 개인적으로 아드벡의 솔잎 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스코틀랜드 아일라 지역의 침엽수가 탄 냄새라고 한다. 흔히들 피트라 부르는 게 이건데 개인 취향에 따라 다 다를 것이다. 부산영상위원회의 강성규 위원장은 그 피트 향에 ‘미친다.’ 사람에 따라 아드벡보다는 글렌모렌지의 기묘한 부드러움을 좋아하는 경우도 많다.
 
뜻하지 않게 공연 무대에서의 추락사로 생을 마감한 故김우광 SBS프로덕션 사장으로부터 각종 술을 배웠다. 대표적인 것이 ‘똑딱주’이다. 술자리에서 그는 일단 첫 순배를 ‘살살’ 시작한다. 그러다 분위기가 이게 아니다 싶을 때쯤 시동을 건다. 홀 매니저에게 와인잔 두 개를 부탁한다. 한식당이든 중식당이든 되도록 큰 와인잔을 달라고 한다. 와인잔 두 개가 오면 그걸 조심스럽게 테이블에 두드리거나 수저나 나이프로 톡톡 쳐서 목을 부러뜨린다. 그때 나는 소리가 ‘똑딱’이다. 이렇게 똑딱 목이 부러진 와인잔에 가득 술을 붓는다. 그 술은 와인일 수도 있고 소주일 수도 있으며 소맥일 수도 있다. 그 두 잔을 양옆, 쌍끌이로 돌린다. 물론 자신이 두 잔 먼저 한꺼번에 마신다. 이렇게 양쪽으로 잔이 한바퀴씩 돌 때 걸리는 시간은 거의 광속 급이다. 왜냐하면 목이 없는 와인잔은 바닥에 내려놓을 수가 없기에 우물쭈물하다가는 반대 방향에서 오는 또 다른 ‘똑딱주’를 다시 한 손으로 쥐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우광 사장은 늘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고 그래서 빨리 마시고 빨리 일어나는 쪽을 택했다. 똑딱주 술자리는 시작하면 아무리 늦어도 1시간 후면 파할 수 있게 된다. 대부분 만취 각이다. 일어설 때마다 늘 시킨 안주를 아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 영화계의 술꾼 김동호는 20년전 술을 끊기 전에는 대주가였다. 영화 <미스터 김 영화관에 가다> 중, 일본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함께.(사진=타이거 픽쳐스 제공)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이지만 과거 김동호 부산영화제 전 위원장이자 전 이사장이 한창 술을 마셨을 때 (그는 부산영화제 15주년 때 술을 딱 끊었다. 실제로 그는 이후 지난 15년간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런 그를 두고 ‘지독한 노친네’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의 술 제조 방식은 기본 소맥을 거꾸로 타는 것이다. 맥주잔에 소주 2/3를 붓고 거기에다 소주잔 양의 맥주를 섞는 것이다. 이른바 거꾸로 소맥 잔이다. 지금은 다 거장 감독으로 돼 있는, 세 명의 감독이 김동호 전 이사장에게 ‘흔쾌히’ 혼이 나던 때를 같이 한 적이 있다. 김동호 옹에게 불려 갔을 때는 네 사람 모두 인사불성 급이어서 내가 갔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할지 모른다. 술을 전혀 하지 못하는 L 감독조차 한두 잔을 마신 상태였다. 아프기 전까지 한때 무지하게 술을 마시는 것으로 유명했던 H 감독은 당시까지만 해도 물 만난 고기처럼(은 아닌가?) 마셨는데, 하여튼 그 역시도 무지하게 힘든 모습이었다. 모두 다 20년 전에 가까운 얘기들이다. 다들 비교적 (지금에 비해) 젊고 건강한 때였으며 패기가 있었고 무엇보다 영화계가 황금기였던 때이다. 김동호 전 이사장은 요즘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10분 이상 걷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곧 있을 이탈리아 우디네 영화제의 초청을 받아 출국할 예정이다. 술을 많이 마시면 오래 못 산다는 얘기도 다 거짓말이다. 그래도 ‘똑딱주’는 금물이다. 그 술은 지옥주다. 그래도 한번 미쳐보고 싶다면 인생에 딱 한 번 권한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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