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나의 알코올 일지⑮)0.05까지만 ‘어나더 라운드’를!
2026-03-27 11:36:07 2026-03-27 11:36:07
자, 이번 회차 글의 핵심은 ‘0.05’라는 수치이다. 이 수치에 대해 노르웨이 심리학자 핀 스코르데루가 가설을 세워둔 게 있다.(이 이론은 사실 그의 저서에서 언급된 상상실험과 가정이 잘못 알려진 결과라고 한다) 이 스코르데루 가설이 나오는 영화가 하나 있으니 바로 영화 <어나더 라운드>이다. 뛰어나게 잘생긴 덴마크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가 만들어서 2021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을 탄 작품이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의 주인공 마틴은 평소 알코올 도수 0.05를 유지하려 한다.(사진=엣나인필름)
 
토마스 빈터베르 하면 둘 중의 하나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시네필 급의 영화 고관여층의 경우 아 그 도그마! 할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다가 요즘은 파시스트로 오해받는) 라스 폰 트리에와 함께 토마스 빈터베르는 1995년 일명 ‘도그마 95’라는 순결의 서약을 했다. 현장 촬영은 별도의 소품 없이 하고 녹음은 어떤 후반작업도 없이 현장음만으로, 조명은 자연 빛만을 이용하며 감독 이름을 크레딧에 올리지 않는다, 등의 10가지 규칙이었다. 이 선언에 참여한 일군의 감독들이 벌인 ‘도그마 운동’은 1995년에 시작돼 2000년대 중반 사실상 해체됐다. 그리하여 이제는 토마스 빈터베르 하면 도그마, 하는 식의 연결은 거의 잊혀졌다.
 
대신 새로운 둘 중의 하나다. 그가 2020년에 내놓은 영화 <어나더 라운드>를 본 사람이냐 아니면 그런 영화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냐, 이다. 이걸 알코올 일지의 감도로 재해석하면 이렇게 된다. 당신은 술에 진심인 사람이냐, 아니면 술을 마시면 인생이 망가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냐.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이런 해석도 가능해진다. 당신은 슬픔을 아는 사람이냐, 아니면 오로지 인생은 (거짓말 같은) 은총과 환희로 가득하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냐. 당신은 술과 인생을 아는가, 모르는가.
 
토마스 빈터베르는 <어나더 라운드>를 찍을 때 19살까지 키운 딸을 잃었다. 엄마와 함께 코펜하겐에서 파리로 가던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딸 아이 이다는 <어나더 라운드>에서 주인공 마틴(매즈 미켈슨)의 딸로 출연할 예정이었다. 빈터베르는 슬픔의 오열 속에서 이 영화의 촬영을 마쳤다. 매즈 미켈슨은 감독의 슬픔을 오롯이 자신의 캐릭터에 촘촘히 넣었다. 영화 속에서 마틴은 슬픔과 분노, 고독을 꾹꾹 눌러 담는 연기를 선보인다.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는 이 영화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하면서 딸 이다의 이름을 부르다 울먹였다. 약 20년 전 도그마 선언 때의 패기와 공격성, ‘똘끼’ 가득했던 때에 비해 훨씬 잘 생기고 중후해졌다. 남자는 자신감이 넘쳐 있는 나이일 때보다 슬픔과 고독을 겪은 중년의 나이일 때 훨씬 더 미남으로 보인다. 왓에버.
 
영화 <어나더 라운드> 스틸컷(사진=엣나인필름)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진정으로 술꾼들의 영화이다. 술꾼 4명이 나온다. 다 고등학교 선생들이다. 마틴은 역사 선생이고 토미(토마스 보 라슨)는 체육, 피터(라스 란테)는 음악 그리고 니콜라이(망누스 밀랑)는 심리학(심리 상담) 선생이다. 이들은 학교생활에 지쳤다. 애들은 (여느 나라의 청소년들처럼) ‘드럽게’ 말을 안 듣고 학부모와 학교 행정은 거꾸로 선생들을 강의평가로 재단하려 한다. 이들 넷 모두는 진저리를 친다. 탈출구는 술이다. 그런데 선생은 술을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 중 니콜라이가 이런 꾀를 낸다. 노르웨이 심리학자 핀 스코르데루를 핑계로 댄다. (술꾼들에겐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
 
핀 박사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혈중알코올농도 0.05%인 채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들 모두 0.05%의 술 농도를 유지하고 살아가면 일상이 창의적이고 용감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틴과 친구들은 이 심리학자의 연구를 신뢰해 보기로(핑계로 대기로) 한다. 측정기까지 사다 놓고 이들은 매 순간 0.05%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유지하려고 한다. 와인 두 세잔이나 위스키 한 잔 정도를 먹는다. 당연히 이들은 활기를 되찾는다. 아이들하고도 가까워지고 그간 멀리했던 섹스마저 한다. 그러나 아뿔싸 2, 문제는 ‘어나더’ 라운드이다. 술은 늘 ‘한잔 더’를 끌어당기고 차수 변경을 외치게 한다. 0.05는커녕 0.5 이상의 만취 상태가 이들 네 명에게 곧 찾아오게 된다.
 
매우 안 된 얘기지만 집에서 ‘혼술 각’이 아니라면 밖에서의 어나더 라운드는 삼가야 할 일이다. 현명한 아빠라면 장성한 딸이나 아들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게 옳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을 때, 꼭 집에 들어와야 한다는 강박증을 버려. 가까운 곳의 호텔, 깨끗한 모텔, 시설 괜찮은 사우나로 가. 거기서 푹 자. 그게 훨씬 안전해. 어디로 가는지, 행선지만 아빠에게 얘기해 놔.”
 
프랑스 대표 밀맥주.(사진=하이트진)
 
나야 워낙 IPA 광팬이지만 어떤 노 감독처럼 ‘그거 분 냄새 나서 못 먹겠더만’ 하시는 분들에게라면 라거를 권해야 할 것이다. 단, 우리의 테라나 카스와 달리 소맥을 하지 않을 라거들이다. 그럴 때는 이탈리아의 국민 맥주 ‘비라 모레티’가 나쁘지 않다. 이 맥주의 경우, 더러 편의점에도 캔을 들여놓는다. 4.6도짜리다. 프랑스 밀맥주 ‘1664 블랑’은 주저 없이 주문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밀맥주는 맥주의 주재료인 보리맥아에 싹을 틔운 밀을 50%까지 섞는 것을 말한다. 홉은 비교적 적게 넣는다. 그래서 IBU(쓴맛)가 낮은 것이다. 맥주 이름에 바이젠(Weizen), 위트(Wheat), 비트(Wit)가 들어가 있으면 모두 밀맥주라 생각하면 된다. 사람들이 많이 먹는 호가든이 밀맥주이다. 대체로 향기롭고 달다. 술꾼들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디 모임에 가 있고, 차를 가지고 왔는데 분위기상 한두 잔을 살짝살짝(전문용어로 찔딱찔딱) 마시게 될 때라면 밀맥주를 권한다. 대체로 알코올 도수가 5도 아래이다. 단 몇 가지 조건이 있다. 5~6시간에 걸쳐 천천히 마실 것. 얘기를 많이 할 것.(과묵한 사람은 결국 취하게 돼 있다. 밖으로 알코올을 내뿜지 않기 때문이다) 와인은 금지. 기본 12도이다. 다 필요 없다. 어나더 라운드를 할 것 같으면 차는 버릴 것. 그리고 실컷 어나더 라운드를 외치며 간만에 마음껏 마실 것. 인생 뭐 있겠는가. 酒逢知己千杯少 話不投機半句多(주봉지기천배소 화불투기반구다)이다. 나를 아는 친구와 술을 마시면 천배가 부족하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자와는 반 마디가 넘친다. 술을 마실 때의 좋은 경구이다. 중국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나오는 말이다. 어나더 라운드는 주봉지기할 때 외치는 말이어야 한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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