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나의 알코올 일지⑬)당신이 IPA의 정치경제학을 안다면?
2026-02-27 09:22:54 2026-02-27 09:23:39
특정 상품명을 얘기해서 좀 뭣하지만, 내가 요즘 즐겨 마시는 맥주는 더블IPA이다. 이름은 ‘포그커터’이다. Fogcutter. 안개를 가르는 자. 이 맥주가 생산되는 북부 캘리포니아는 안개가 유난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누군가 그걸 착안해 만든 이름으로 보인다. 라벨에는 바이크를 모는 해골 남자가 그려져 있다. 해골이 싱긋 웃고 있다. 굳이 해석을 더 붙이자면 홉(Hop)의 풍미가 워낙 강렬하게 들어가 있어 그 맛의 느낌이 안개를 가르고 퍼질 정도라는 의미겠다. 믿거나 말거나다.
 
도수가 8.7도이다. 세다. 표준 싱글 용량인 355ml 병이 다소 작게 느껴진다 해서 이걸 서너 병 ‘순삭’하면 금방 취기가 오른다. 조심해야 할 술이다. 자기가 한 말을 잊어버리거나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울게 될 수도 있다. 술은 늘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순삭’을 금지하면 된다. 두세 번에 꺾어서 마시면 된다. 한 번에 털어 넣는 식이 아니면 된다. ‘첫 잔은 원 샷 아닌가요?’, 라는 말을 사라지게 하면 된다.
 
더블IPA 포그커터.(사진=오동진)
 
더블IPA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모든 걸 다 알 필요는 없다. 더블IPA를 취급하는 매장도 많지 않다. IPA 자체에 대한 수요가 그리 높지 않은 것이 한국 맥주 시장의 특징이다. 소비자 가격이 다소 높기 때문인데 상품에 따라 4900원에서 2만3000원까지도 한다. 이런 맥주를 펍에서 마신다면 가격이 2.5배까지 뛴다. 서민 맥주가 아니다. 비싼 이유는 공정상 아무래도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수입 맥주이기 때문이다.
 
수제 맥주는 국내에서 한동안 우후죽순 격으로 만들어졌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민주당의 한 의원(홍종학)이 발의한 주세법 개정안이 계기가 됐다. 제조 기술을 완화해서 하우스에서도 맥주를 만들 수 있게 했고, 이 하우스 맥주들을 식당이나 마트에 납품할 수 있게 했으며, 무엇보다 과세를 수입신고가 기준으로(종가세) 하지 않고 중량 기준으로(종량세) 했다는 점이다. 수제 맥주가 국내에 쏟아지게 됐던 이유였다.
 
이때 나왔던 수제 맥주가 대(동)강이었다. 공식 명칭은 ‘대강 페일에일’이었는데 최초 마케팅이 대동강 물을 가지고 와서 만든 맥주라고 했다가 이게 기만 홍보라 해서 이름에서 ‘동’자를 뺀 것이었다. 기가 막히게 맛이 있어서 인기가 높았다. 이 맥주 회사의 이름은 ‘더부스 브루잉’이었고 관련해서 다른 맥주들도 나왔는데 ‘국민IPA’가 있었고 치맥에 어울리는 맥주라 해서 ‘치믈리에일’까지 내놨다. 이 ‘더부스 브루잉’은 한의사였던 김희윤 씨와 투자 컨설턴트였던 남편 양성후 씨가 맥주를 너무 좋아하던 부부였고 이들이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이었던 다니엘 튜더를 만나서 맥주 제조 회사를 만든 것이었다. 튜더는 ‘한국 맥주는 대동강 물보다 맛이 없다’는 제목의 기사를 썼던 인물이다.
 
더 부스 브루잉 IPA, 대강 페일에일과 국민IPA.(사진=오동진)
 
‘더부스 브루잉’은 한때 돈을 ‘낙엽 긁듯’ 벌어들였다. 개그맨 노홍철,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과의 콜라보 상품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망했다. 그냥 망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무리한 경영 확장 전략이 문제가 됐다.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 현지의 양조장을 인수한 것이 타격을 입게 했다. 자금 유동성이 급격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광화문 등에 열었던 직영 펍들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지금은 대(동)강 맥주를 찾아보기 힘들다. 맥주 마니아들이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한국 수제 맥주의 역사이다. 이들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대(동)강 맥주는 필자가 서울 서촌에서 잠시 운영했던 ‘반하다’라는 술집의 인기 품목이었다. ‘반하다’는 당시 촛불 시위의 경찰 측 마지노선에 있었던 술집 겸 커피집이었다. 시위에 참여하고 있던 영화인들, 시민들과 이를 취재하던 기자들, 심지어 경찰들까지 들어오곤 했다. 다들 화장실이 급했고 혹독한 겨울 추위의 시위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화인 상당수는 차라리 맛있는 맥주 한잔을 먹고 나갔는데 그게 바로 ‘대강 페일에일’이었다. 주인장이 강력, 추천했기 때문이다. 그때 사람들은 나라가 정상화하기를 간절히 바랐고 정상국가로 전환된 남북이 평화적으로 교류하는 걸 원했으며 그래서 대동강 맥주를 마시자고 했…다…면 지나친 상술이었을까. 그래도 2016년의 겨울이 그립다.
 
2016년 필자가 운영했던 서울 서촌의 카페 ‘반하다’.(사진=오동진)
 
IPA의 입맛은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이거 하나만 알면 된다. 결국 IPA는 맥아(싹을 틔운 보리. 麥芽. IPA와 라거 맥주의 차이는 이 맥아를 어떤 방식으로 발효시키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와 홉(쓴맛과 향을 결정하는 솔방울 모양의 꽃송이이다. 이 홉이 맥주를 상하지 않게 한다. 맥주 거품은 이 홉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다)의 배합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쓴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홉이 많이 들어간 것을 찾으면 된다. 맥아는 단맛을 만들어 내고 홉은 쓴맛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이 균형이 가장 중요할 수 있다. 맥주 라벨에 IBU 수치가 적혀 있다. IBU는 ‘International Bitterness Units’인데 쓴맛의 국제 표준 수치를 말하는 것이다. 예컨대, 처음 얘기했던 더블IPA, 포그커터의 IBU는 80이다. 무지하게 쓰다는 의미다. 일반적인 IPA를 찾는, 당신이 IPA 입문자라면 IBU가 40이거나, 높아야 60 정도인 제품을 고르면 된다. IPA의 대표 격 맥주인 ‘인디카(Indica)’는 IBU가 50이다.
 
‘인디카’의 라벨을 장식하는 코끼리 그림은 인도 힌두교 신 중에서 가져왔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원래 IPA가 인디언 페일 에일에서 온 이름이기 때문이다. 세포이 항쟁 무력 진압 이후 동인도회사로부터 빅토리아 여왕으로 인도에 대한 영국의 통치권이 이관되었던 1850년대 후반부터 문제가 됐던 게 바로 맥주였다. 인도에 파병된 병사들에게 맥주를 보내면(영국인들은 차茶 만큼, 맥주 사랑으로 유명하다) 현지에 도착할 때쯤 다 상해 있기 마련이었다. 이걸 방지하기 위해 홉을 ‘때려 부어서’ IBU를 높이고 과일 향을 더 강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IPA는 제국주의 식민지 역사에서 유래한 셈이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속 펍에서 맥주를 마시는 영화속 인물들.(사진=진진)
 
한국의 IPA 브루어리들은 조기에 흥했다가 조기에 망한 경우가 많다. IPA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그것도 다, 대형 주류회사의 마케팅 탓에 돈 소문일 뿐이다. 한국 맥주는 일부러 싱겁게 만들어서 소주를 들이붓는 이른바 ‘소맥 제조’가 일반화돼있다. 맥주에 소주를 넣지 않으면 맛이 없어서 그냥 맥주만은 도저히 마실 수가 없는 것이다. 술 소비량이 ‘가학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따라서 맥주를 맛있게 만드는 것, 맛있는 맥주를 마시게 하는 풍조야말로 전 국민이 알코올 중독에 빠지지 않게 하는 올바른 길이다. 영국 켄 로치의 영화 <나의 올드 오크>에는 폐광촌 지역의 오래되고 낡은 술집 ‘올드 오크(오래된 참나무)’에 동네 남자들이 모여 맥주 한잔을 놓고 ‘세월아 네월아’ 하는 모습이 나온다. 맥주가 워낙 맛있고 독해서 (그런데다 돈도 없어서) 한 잔이면 족한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되는 게 좋다.
 
코로나19로 다 망한 이후에도 아직 펍을 운영하는 곳이 지역별로 좀 남아 있다. 서울의 미스터리 브루어리(마포 공덕), 어메이징 브루어리(성수) 서울 브루어리(합정), 플레이 그라운드 브루어리(일산), 에일크루 브루어리(마포 성산) 등이 있고 강릉에는 버드나무 브루어리, 부산에는 갈매기와 고릴라 브루어리가, 통영에는 라인도이치 브루어리가 있다. 다들 어렵다고 한다. 경기가 안 좋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가 좋아지고 나라의 경기가 좋아지면 맥주가 좋아진다. 맥주가 그 나라 정치경제의 바로미터다. 특히 IPA가 그렇다. 당신이 IPA의 정치경제학을 아는가. 일단 한잔하고 볼 일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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