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흑자 속 고환율?…해외주식투자 쏠림이 만든 '기현상'
경상흑자 웃도는 해외 투자…기관·개인 투자 약 132조
무역수지→소득수지 중심으로 재편…과거 일본 전철
2025-12-05 16:43:23 2025-12-05 16:51:26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흑자에도 원화 약세가 지속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통상 경상수지 흑자가 늘면 국내 외환시장에 달러가 증가해 원화 가치가 상승(환율 하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최근 이런 공식은 옅어지고 있습니다. 국내 기관과 개인의 해외 주식 투자가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올해 1~10월 국민연금과 서학개미를 비롯한 한국 기관·개인의 해외 주식 투자 규모는 약 899억(약 132조원)에 육박했는데, 같은 기간 경상수지 흑자를 웃도는 규모입니다. 경상수지로 벌어들인 달러만큼, 해외 투자로 유출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기관과 개인의 해외 투자가 원화 약세의 핵심 요인이 되면서 환율이 전통적인 무역수지 중심이 아니라 자본시장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 같은 경제구조는 수출로 벌어들이는 것보다 해외 투자로 소득이 높았던 과거 일본이 밟았던 길이기도 합니다. 
 
경상흑자에도 1500원선 위협하는 환율 
 
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10월 국제수지(잠정치)'를 보면 10월 국제수지는 68억1000만달러(약 10조447억원)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30개월 연속 흑자로, 2000년대 들어 두 번째로 긴 흑자 행진입니다. 다만 경상수지 흑자가 134억7000만달러에 달했던 지난 9월과 비교하면 반 토막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긴 추석 연휴로 조업일수가 줄어든 영향 때문입니다. 
 
통상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면 외화 유입이 늘어 환율을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최근 원·달러 환율 흐름을 보면 이 같은 공식이 깨졌습니다. 실제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 10월 초 1400원대에 진입한 이후 가파르게 상승하며 1500원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4일에는 주간거래 종가 기준이 1477.1원을 터치하면서 지난 4월9일(1484.1원) 이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치솟는 환율에 외환당국은 국민연금을 끌어들여 4자 협의체를 가동, 환율 안정에 나섰습니다.
 
경상흑자 흐름에도 고환율이 지속되는 배경에는 국내 기관·개인의 해외 주식 투자 급증이 지목됩니다. 이른바 서학개미와 국민연금 등의 해외 투자가 늘면서 달러 수급의 불균형이 초래되고, 이는 원화 약세 고착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투자자들은 환차익을 노리기 위해 미국 주식을 팔아 원화로 환전하는데, 최근 들어서는 되레 비싸진 달러로 미국 주식을 더 산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쌓아두는 점도 달러 수급 불균형과 환율 상승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경상흑자보다 많은 기업·개미 해외 투자
 
이날 한은이 발표한 국제수지 통계에서도 우리나라의 기관·개인의 해외 주식 투자 규모가 경상수지 흑자를 웃도는 규모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올해 1~10월 우리나라 해외 주식 투자는 898억789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12.0%나 증가했습니다. 올해 1~10월 경상수지 흑자 895억8000만달러를 웃도는 규모입니다. 경상수지를 웃도는 규모의 해외 주식 투자가 원·달러 환율의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일반정부의 1~10월 해외 주식 투자는 286억3090만달러로, 1년 전보다 138.4% 늘었습니다. 역대 1~10월 기준 일반정부의 해외 투자로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한은은 국제수지 해외 주식 투자 통계상 일반정부를 국민연금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서학개미를 비롯한 개인투자자로 분류되는 비금융기업 등의 해외 주식 투자도 올 1~10월 240억442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67.0% 늘었습니다. 올 1~10월 우리나라 전체 해외 투자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1.9%, 서학개미는 26.8%로 집계됐습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1월부터 10월까지 내국인 해외 증권 투자가 1171억2000만달러로, 작년 동기 710억달러보다 상당히 늘었다"면서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10월보다는 약하지만 11월에도 해외 주식 투자를 중심으로 증권투자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역대 최고 수준의 경상흑자에도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는 것에 대해 전통적인 경상수지와 환율과의 관계보다 이제는 해외 투자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탓이라고 분석합니다. 더불어 이 같은 구조가 일본과 같이 해외 투자 소득 비중이 높아지는 경제구조로 전환되고 있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진단합니다. 
 
이주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직·간접 해외 투자 수요로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이 여전하다"며 "장기적으로는 누적된 한국의 해외 투자가 결국 수익을 창출하며 국내 자산소득으로 유입될 것이고, 소득수지가 무역수지 흑자 축소를 만회해주는 국면에 진입할 경우 대외 투자 수요에 따른 원화 약세 압력 완화가 가능하다"고 짚었습니다. 이어 "과거 일본이 밟았던 길로, 일본도 그 단계를 거쳐 성숙 채권국 단계로 진입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1470원대를 웃도는 가운데, 서울 명동의 환전소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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