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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감독님, 선 너무 많이 넘으셨어요
2022-12-07 07:03:00 2022-12-07 07:03:00
타인과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두 남녀. 먼저 남자, 건축설계사다. 그리고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다. 그래서 일까. 소통이 막혔다. 공감 능력도 없다. 한 단어로 규정하기 힘든 ‘이상함’이 이 남자를 대변한다.
 
여자는 좀 더 읽어내기 쉽다. 사회성 점수를 매긴다면 만장일치로 최저점을 받을 만하다. 그는 IT기업 천재 개발자다. 자폐스펙트럼 장애의 한 종류인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자폐’의 특성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사회적 맥락을 읽어내는 게 서툴고 사람들 속에 섞이지 못한다. 외로운 섬 같은 여자가 또 다른 섬 같은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썸바디’의 한 줄 요약이다.
 
‘썸바디’ 시청 후 헛웃음이 터졌다. 여자를 활용한 방식 때문이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쉽게 말하면 ‘똑똑한 자폐인’이다. 우영우와는 또 다른 양상이긴 한데, 아스퍼거 증후군은 수학이나 패턴 등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자폐성 장애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적 소통의 어려움이다. 유창하게 말하는 자폐인이라도 말하는 그대로의 사실(fact)이 아닌 그 안에 녹아있는 사회적 맥락을 읽어내는 게 어려워 타인과의 소통에 애를 먹곤 한다. 하지만 소통에 어려움이 있을 뿐 소통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두 가지는 분명 다르다. 오히려 타인과의 소통이 마음처럼 쉽지 않기에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보다 더 크다. 자폐인이 타인의 표정에 담긴 감정을 읽어내기 위해 다양한 사람 표정을 벽에다 붙여놓고 학습하는 건 너무 뻔한 ‘클리셰’가 되어버린 요즘 아닌가.
 
‘썸바디’는 아스퍼거 증후군 여자의 서툰 사회성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딱 거기까지 좋았다. 이후 스토리를 독창적으로 풀어가기 위해 장애 특성 중 하나에 불과한 ‘소통의 어려움’을 사이코패스의 ‘불통’과 같은 선상에 올려버렸다. 우려되는 장애 인식이다. 물론 자폐인도 사이코패스가 될 수 있다. 그건 자폐인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이라서다. 사람은 누구나 사이코패스로 태어나거나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자폐성 장애의 특성이 외로움을 유발하는 요소가 되고, 사랑에 빠지는 요소가 되고,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원인이 된단 설정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우영우로 대입해 보면 이해가 쉽다. 우영우가 자폐라서 외로워 하다 고독한 사이코패스(사이코패스는 고독할 수밖에 없다. 살인은 누구에게든 공감 받지 못한다)를 만나 “나와 똑같다”며 사랑에 빠지고 그 남자를 잃고 싶지 않아 충격적 선택을 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시청자들은 그럴 수도 있다며 고개를 끄덕일까.
 
자폐성 장애인 아들을 둔 내가 ‘썸바디’를 본 심정이 딱 그랬다. 아무리 콘텐츠가 고갈된 시대 라지만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 ‘썸바디’는 자폐성 장애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비장애인의 무지를 무기로 삼아 색다른 캐릭터와 콘텐츠를 만들어보겠다는 비장애인 제작자들의 욕심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로 인한 피해는 소통에 어려움이 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소통하고 싶고 일상에서 노력하는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의 몫이 됐다.
 
정지우 감독은 대한민국 대표 감독이다. 그의 영화를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지만 만약 그가 영화 안에서 사회적 약자를 그려낸다면 나는 이제 코웃음을 칠 것이 뻔해졌다. 그가 사회적 약자를 담아내는 방식이 ‘이해’가 아닌 ‘소비’에 있다는 걸 ‘썸바디’를 통해 확인해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만들어낸 캐릭터에 불과한 ‘썸바디’ 속 인물들보다 현실의 정지우 감독이 더 무서워 졌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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