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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_당신도 혐오받고 있다)⑤"규제보다 소통이 먼저"
"유엔, 형사보다 민사로 해결·사법보다 비사법 접근 권고"
전문가들 "'직장 내 갑질'처럼 일상 안정 병행해야"
"혐오 정치에 '먹이'주지 마라"…정치·언론 책임도 막중
2021-08-06 06:00:00 2021-08-09 10:10:12
 
[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전문가들은 혐오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 같은 법에만 매달리지 말고, 혐오를 방지하는 교육이나 갈등 집단간의 소통을 병행하고 혐오가 나오게 된 사회 환경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집단에 대한 극단적인 표현을 규제하는 법이 없다시피했다.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는 '개인'이 명예가 훼손되거나 모욕당했을 경우 작동하는 법이지, 집단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때문에 최근 들어 혐오가 심해지면서 차별금지법이나 평등법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실제로 손해배상을 명시한 법안들도 발의되고 있다. 혐오나 차별이 특정 성별이나 연령대 등 집단을 상대로 이뤄지는만큼, 시대에 맞는 법이 필요하다는 발상에서다.
 
지난 5월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더불어민주당·정의당·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 평등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사진=뉴시스
 
하지만 법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은 2년여에 걸친 전문가 워크숍을 실시한 끝에 지난 2013년 ‘라바트 행동계획'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라바트 행동계획은 '불법적인 표현 방식에 대한 형사제재는 최후 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취지로 권고하고 있다. 민사 제재와 행정적인 제재도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기도 하다. 어떤 표현을 형사제재하고 민사 제재하며 행정 제재할지 주의깊게 구분하라는 주문까지 포함됐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은 "가급적 형사적 접근보다는 민사적 접근, 사법적 접근보다는 비사법적 접근, 교육이나 문화적 접근 통해서 인식 전환 도모하는 (취지)"라며 "법적인 규제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게 유엔의 공식 입장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차별금지법에 형사처벌이 없고 교육 문화적 접근을 강조하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법 위반시) 징역 10년에 처한다고 하면 남녀 갈등이 폭력적으로 전개된다든가, 종교간 갈등이 심해지는 등 굉장히 심각한 사회 부작용을 동반한다"고 덧붙였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도 "공식적으로 선진국가가 된 한국이 선진국에 합당한 태도와 문화, 가치를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며 "성적지상주의에 의해 도외시돼온 민주시민교육에 더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 교육을 오랫동안 받은 유럽에서도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보인다"며 "'직장 내 갑질'을 없애는 등 일상을 안정화·민주화시키는 변화까지 병행해야 스트레스를 풀 속죄양을 찾는 현상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11월19일 취재진들이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네모에서 열린 편견과 혐오의 인류사를 다룬 아포브 전시회 '너와 내가 만든 세상'의 프레스투어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갈등하는 집단끼리의 소통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9년 서울시 산하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여성혐오 관련 연구보고서는 10~20대 여성과 남성 면접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모순을 지적한다. 면접 참여자 대다수가 여성혐오·젠더갈등에 대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하는데도, 개인 차원에서는 지인끼리 대화할 때 관련 사안들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기조차 꺼린다는 것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혐오를 부추겨 표를 얻으려는 정치 세력의 시도를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갈등하는 집단들끼리 소통할 필요가 있다"며 "남녀와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가 가족·친구 단위로 이야기하고, 인터넷에서 댓글 달아 의견 교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선이 임박한만큼 정치인과 언론의 책임도 강조됐다. 박창호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사회가 SNS 등에서 일어나는 혐오 담론을 큰 문제인양 다루는 것이 오히려 해당 담론을 확산시키기도 한다"며 "정치인들이 인터넷상의 혐오 현상을 이용함으로써 혐오 이슈의 중요성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임 교수도 "공적 언론이 정치판의 저급한 언어·표현을 덜 받아쓰거나 순화·자정하는 기능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라며 "언론이 공적 기능을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소장은 "대선 국면에서 대통령 후보자들이 차별·혐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공약을 제시하는 건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면서 "특히 현재까지 제출된 차별금지법과 평등법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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