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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전환점에서 길 잃은 배터리 산업 정책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
2021-05-19 06:00:00 2021-05-19 06:00:00
지난 2010년 초반 소형 원통형 이차전지 세계 1위를 달성했고 2020년 배터리 전기차용 중대형 파우치 이차전지로 세계 1위를 달성하며 기세를 올렸던 우리나라 리튬이온 이차전지 산업이 2021년 들어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극과 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상황이다. 국가 합산 1위에 더해 엘지 에너지 솔루션 단독으로 세계 1위를 달성했지만, 몇 달 사이 우리나라 합산 시장 점유율로도 중국 CATL 하나를 이기지 못하며 국가간 합산 시장 점유율로는 격차가 더 커진 상황이다. 2021년 초 분위기로 보면 중국이 국가 합산 시장 점유율로 50%를 곧 넘을 기세이다. 도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냉온탕을 오가는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에 요인을 한 번 조목조목 짚어보고자 한다. 이 상황은 갑작스런 ‘사고’에 준하는 ‘사태’가 아니란 점을 유념해야 한다. 사고에 준하는 사태로 ‘급락’한 게 아니라 오래도록 침잠해온 이유로 ‘쇠락’에 준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먼저 이 책임은 관성적이고 방향성 잃은 정부 정책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먼저 산업 기술 정책을 들여다보면 이차전지 산업 초창기 때의 정책 기조에서 하나도 달라진 게 없을 뿐 아니라 외려 1990년대 후반 수준으로 퇴조한 상황이다. 국가 연구개발(R&D)은 인력양성, 기술개발, 기반구축, 국제협력의 기본 체계는 잘 유지하고 있지만 알맹이는 낙제점이다. 2000년대 중반, 학연의 ‘기타 리튬금속 계열 구세대 전지’ R&D 투자 지원 요청을 각하하고 소형 원통형과 중대형 파우치 리튬이온 이차전지로 선택과 집중한 ‘차세대전지 성장동력 사업단’의 성과가 세계 1위로 이어지게 했던 반면, 후속 산업 기술 정책은 기본 없는 차세대 전지로 예산만 낭비되며 엉망진창이었다. 여기에 더해, 최근 황망한 사건으로 ‘니켈·코발트·망간(NCM) 삼원계 전구체’ 수입 관세유예가 2021년부터 새로 시작된다는 소식이다. NCM 삼원계 전구체는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양극활물질 기술의 정수로 전구체 단계에서 (니켈, 코발트, 망간)의 ‘농도 분포 구조’가 결정되기 때문에 삼원계 양극활물질 정수라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중국 전구체 제조사와 합자사에서 공급받고 있어 공급망 차원의 위협 요인도 상당하다. 만일, 2019년 한일 무역 분쟁마냥 한중 사이에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가장 큰 타격은 이차전지 분야는 삼원계 양극활물질일 수도 있다.
 
리튬이온 이차전지는 ‘성능’뿐 아니라 ‘안전’ 쪽으로 학연의 깊이 있는 기초 연구를 해야 할 타이밍을 놓쳤다. 2010년대 들어 수백 억 이상 투자되었고 리튬이온 이차전지용으로도 ‘공정 단순하고 대량 생산 용이’하다는 전극활물질이 수백 건 이상 논문으로 발표되었지만 상용화된 사례는 하나도 없이 연구비만 낭비됐다. 
 
우리가 십여년 이상 이렇게 시간과 돈을 죽이고 있을 때, 미국과 유럽이 리튬금속계 상용화에 천착하던 전략을 선회하여 리튬이온 이차전지 산업이 깨어나기 시작하였다. 중국은 탄탄한 배터리 전기차 생태계를 기반으로 LFP와 삼원계 모두에 능통한데 더해 조금 낮은 수율에도 탄탄한 기초, 기초 소재력, 앞선 가격 경쟁력, CTP, CTC 같은 뛰어난 집적화 능력을 보인데 더해 외려 유럽과 미국의 자동차 제작사들도 중국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뒤늦게 모방하는 상황이지만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다.
 
SK이노와 LG엔솔 분쟁도 또다른 이면이 우리나라 이차전지 산업의 기초와 깊이 부족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인력 문제의 근원은 어찌 되었든 학교 책임이다. 인력이 부족하네, 중국 등 후발국으로 거액의 연봉을 받고 가네, 이직하면 거액의 축하금을 받네 하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넘쳐나는 와중에 몇 년 전엔 모 이차전지 제작사가 사업 정리한다고 명예퇴직을 지속적으로 받아 인력 유출을 자초할 때도 있었을 정도다. 지금은 유사전공 학부 졸업생들도 배터리 제조사에선 입도선매하듯 모아가지만 그래도 모자라다. 한편, 국제협력은 더 참담하다. 우리의 주요 국제협력 대상은 ‘중국계’ 연구자임에도 중국은 실력이 없다는 이중적면서도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또한 국내에서 나온 좋은 아이디어가 갑자기 뜬금없는 곳에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로 둔갑하여 발표되며 국제협력이 외려 기술유출 통로로 악용되기도 한다.
 
‘차세대 전지’라 주장되는 전고체 전지는 외려 리튬이온 이차전지 시작 때 경쟁했던 리튬금속폴리머 이차전지 개념과 박막 전지 개념에 근간하였고, 최근 핫한 퀀텀스케이프, 솔리드파워, 솔리드에너지 등이 열렬히 연구하는 ‘애노드 프리’ 타입은 1999년경 미국 ORNL에서 초소형 박막전지용으로 개발한 개념과 라미네이션앤스태킹 코어셀에 기초하지만 그다지 극적이지 않다. 이미 30년 전에 리튬이온 이차전지에 패퇴했던 이차전지 시스템들이 다시금 도전하지만 외려 30년 전보다 리튬이온 이차전지 진영은 강고하고도 강고하다. 이런 현실을 십수년간 외면하며 갈라파고스가 대양과 대륙인양 자위해온 결과이다. 이건 비극이랄 수밖에 없으며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잘 모르는 차세대 전지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다가올 10년 안엔 아직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꺾을만한 ‘진짜 차세대 이차전지’는 아직 맹아도 싹트지 않았다는 걸 받아들이고 ‘리튬이온 이차전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고속/초고속 충전에도 열화 정도가 적고 자동차 수명과 같이 가는 장수명 리튬이온 이차전지 핵심 소재와 전지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거기에 더해 안전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원리와 기술을 개발하되 더 이상 고체 전해질에 천착하지 않아야 한다. ‘진짜 차세대 이차전지’가 우리나라 학계에서 움트고 십수년 후에 ‘차세대 이차전지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선 기본으로 돌아가 다양한 기초 분야 학자들의 좋은 아이디어를 모을 수 있게 ‘스몰 사이즈 연구과제’를 작고 많이 폭넓게 지원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특허청이 국내 최초의 CNT 나노 분산 소재 특허로 인정한 필자의 ‘고밀도 CNT/CNF’ 기술이 개발된 지 십수년 후에야 그 개념을 차용한 유사 기술을 엘지에너지솔루션이 상용화하여 도전재로 적용하고 있는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요즘 들어 2019년 한일 무역 분쟁 때 소부장 쪽 대거 지원이 있은 후, 이차전지 쪽도 전지협회 등이 정부나 언론에 부르는 연구비 규모가 급기야 ‘년 1000억’대까지 부르는 황망한 상황에 와 있다. 30여 년 가까이 연구개발과 국가 R&D 정책, 그리고 이차전지 로드맵을 전담해 그린 경험으로 이는 얼토당토않은 소리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거대한 예산 지원이 아니다. 외려 예산 지원은 차고 넘치지만 막상 지원이 가야할 곳엔 돈이 말랐고, 엉뚱한 곳에 끝없이 지원되어 낭비되고 있다. 방향을 잘 잡고 효율적인 지원이 되어야 하고 제대로 선택과 집중을 한 후에야 부족한 투자 예산 규모가 잡힌다. 
 
여의도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포퓰리즘이 산학연까지 넘어와 국가 R&D에도 연구 포퓰리즘이 성행하고 있다. ‘나라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이 많다. 곳간 타령 말고 도둑을 잡자‘는 말 처럼 연구 포퓰리즘을 경계하도록 하고 제대로 된 기획에 근간하여 연구비가 낭비되지 않도록 하자.
 
박철완 서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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