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앞두고 반복되는 공공기관 이전…산업은행 인력 이탈 재연되나
짐 싸는 숙련 인력…이전 논의만으로 인력 이탈
정주 여건·산업 생태계 빠진 '무늬만 이전' 경계해야
로드맵 없는 이전 논의…조직 불안·인력 유출 키운다
2026-03-31 17:23:44 2026-03-31 17:54:16
[뉴스토마토 남윤서 기자] 정부가 2차 공공기관 지역 이전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이전 논의가 인력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전 논의가 선거용으로 되풀이될 때마다 공공기관 내부의 불안감은 고조됐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되기도 전에 인력 유출로 이어졌다는 분석입니다.
 
구체적 로드맵 없는 '2차 이전' 논의
 
31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공공기관 지역 이전 논의는 구체적인 추진 계획 없이 정치 일정에 따라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차 공공기관 지역 이전 논의는 2022년 윤석열씨가 대통령 후보 시절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공약으로 제시하며 공식화됐습니다.
 
이에 2023년 산업은행은 이전 공공기관으로 지정됐으나, 본점 소재지를 서울로 규정한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이 지연되며 논의는 장기 표류 중입니다. 이전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가 이어지면서 조직 내부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지방선거를 앞두고 비수도권 광역자치단체 간 공공기관 유치 경쟁도 더욱 과열되는 양상입니다.
 
비수도권 광역자치단체들은 대규모 공공기관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부산은 산은과 한국투자공사, 해양환경공단을 중심으로 금융 특화 도시를 노리고 있으며, 경남은 거제시를 중심으로 해양수산 분야 4대 핵심 기관 유치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경북은 농협중앙회와 한국마사회, 새마을중앙연수원 등 농축산 분야 기관 유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대구는 중소기업은행과 한국산업기술진흥원,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을 핵심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충남은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환경공단, 한국탄소중립진흥원 유치에 나섰고, 전북은 농협중앙회, 한국투자공사, 한국마사회를 희망 리스트에 올렸습니다. 전남은 수협중앙회와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환경공단을, 충북은 대한체육회와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산업기술진흥원, 한국공항공사를 추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광주는 한국공항공사와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을, 대전은 산업기술진흥원과 코레일네트웍스, 지식재산연구원을, 제주는 한국공항공사와 한국마사회 유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산은, 지역 이전 논의만으로도 인력 이탈 흐름
 
문제는 구체적 계획 없는 논의가 구성원들에게는 불확실성으로 다가온다는 점입니다. 이는 산은 인력 지표에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2022년 산은 정규직 직원은 3234명이었지만 이전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2023년엔 3142명으로 92명 줄었습니다. 당시 지역 이전 논의가 인력 이탈을 부추겼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이후 2024년에는 3216명으로 다시 늘어, 실제 근무 인원은 큰 폭으로 줄었다가 회복하는 불안정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지역 이전 이슈가 있던 시기에 4~5급 직원 퇴직이 많다 보니 예년보다 채용도 늘었다"며 "신입 채용은 기본적으로 정원 내에서 이뤄지지만, 퇴직자가 많으면 계획보다 더 뽑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산은은 결원을 메우기 위해 신입 채용을 조정해 왔습니다. 2023년 85명이었던 채용 규모는 2024년 224명으로 급증했다가 2025년에는 168명으로 다시 줄어드는 등 변동성이 컸습니다. 이는 결원 규모에 따라 채용 인원이 결정되는 인사 구조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산은 노조 관계자는 "최근 3~4년간 채용을 많이 한 탓에 지난해 채용이 다소 줄었지만, 그래도 예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많은 수준"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연준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인적자본이 축적되는 데는 굉장히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고 설명하면서 "고숙련 인력들이 빠져나가는 것은 기관 입장에서 큰 타격이고, 이를 다시 신입으로 채운다고 해도 전문성 저하나 경쟁력 하락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논의가 장기화되면 인력 불안이 다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2차 이전 논의 과정에서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핵심 인력 이탈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김 부연구위원은 "이전 지역인 혁신도시 등은 수도권에 비해 교육이나 의료 시설 등 정주 여건이 그렇게 좋지가 않다"며 "아이들 교육 문제나 병원 같은 필수 인프라가 열악한 상황에서 단순히 집을 준다고 해서 퇴사를 막기는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
 
"단순 이전은 실패 반복일 뿐…구조적 혁신안 필요"
 
전문가들은 '공공기관만 옮기면 지역이 살아날 것'이라는 가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김세진 지방분권 태재연구재단 책임연구원은 "금융은 사람과 정부, 네트워크가 모이는 산업인데 뉴욕과 달리 수도권에 집중된 투자자·기업·로펌 등을 떼어놓고 금융공기업만 옮긴다면 어떤 시너지를 내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글로벌 금융사와 자본시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이전은 업의 본질을 외면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김 연구원은 이어 실리콘밸리의 사례를 들어 "스탠퍼드 같은 인재 공급처와 연구기관, 투자 생태계가 세트로 묶여야 창업과 성장이 가능하다"며 "과거 원주나 진천, 세종시 사례에서 보듯 공공기관만 옮겨서 유명 기업이 생기거나 지역이 살아나지 않았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지역 특화 산업과 공공기관의 역할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종합 패키지'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기관 이전 방식으로는 지역 경쟁력 강화에 한계가 있으며, 과거 실패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읍니다. 김 연구원은 "지역의 대학·기업인·공공기관이 모여 특화 산업을 논의하는 등 실질적인 혁신안을 내놓아야 한다"며 "'한 세월 걸리는 일'이 되지 않으려면 수십 년을 내다본 구조적 접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박형준 부산시장과 부산 지역 국민의힘 의원들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대정부 건의 과제 공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들은 가덕도 신공항 조속 건설 및 적기 개항, 해수부 기능 강화 및 공공기관 이전, HMM 유치, 한국산업은행 이전 등을 건의했다. (사진=뉴시스)
 
남윤서 기자 nyyyse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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