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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효

딥 스로트와 호루라기

2022-05-04 07:07

조회수 : 2,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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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십수년전 몰입해서 봤던 미국의 워터 게이트 사건을 다룬 영화를 다시 봤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갑자기 몇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당시 기자는 이미 다른 언론에서 보도된 바 있는 모 회사의 구조조정안에 대해 더 구체적인 취재를 위해 여러명의 취재원을 만나는 중 문건을 입수했다. 내부고발자들의 제보였다.
 
기사가 나간 뒤 홍보담당자는 "이 문건을 누가 줬느냐"고 물었다. 홍보담당자는 그동안 중요 기사마다 기자에게 “우리 회사 사람 중 누가 이런 말을 했느냐, 회사를 비방하거나 비판하는 직원들과는 같이 일을 못하겠다, 이런 멘트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등 직원들의 긍정적인 비판조차 폄하해왔다.
 
대답해줄 수 없다고 했다. 기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취재원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감사실을 중심으로 여러 계열사까지 전사적으로 취재원 색출에 나섰다. 기자와 친분이 있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핸드폰 통화 내역 등을 제출하라는 등 이 감사의 주요 목적은 바로 내부 고발자 색출이었다.
 
취재원 보호는 언론자유의 핵심이며 언론인에게 생명과도 같은 직업윤리다. 독일은 형사소송법에 기자에게 취재원 보호를 위한 ‘증언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 주 헌법 등에는 'SHIELD LAW (방패법)'라는 게 있어 언론사나 취재기자가 취재원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도 되도록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취재원을 숨길 수 있는 비닉권과 수사나 재판에서 신문에 임할 때 밝히지 않아도 되는 증언거부권 등이 방패법의 핵심이다.
 
우리나라에 방패법은 없지만 기자 윤리강령에 취재원의 불이익 방지와 안전을 위해 밝히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내부고발자 색출은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을 사실상 마비시킨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단서를 뉴욕타임스에 제보한 ‘딥스로트’가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을 지낸 마크 펠트라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는 3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것도 본인이 고백해서 알려졌다.
 
딥스로트`는 미국 현대정치사의 최대 비리 사건인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가 제보자의 신원을 감추기 위해 실명 대신 명명한 취재원의 별칭이다.
 
1972년 발표돼 현대 포르노 영화의 효시가 된 `목구멍 깊숙이(딥 스로트/ Deep Throat)`의 제목에서 빌려 왔으며, 이후에 이 단어는 `내부 고발자`를 뜻하는 말로도 쓰이게 됐다.
 
수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바뀐 것이 없다. 우리나라 내부 고발자들은 험난한 길을 걷는다. 특히 기업의 내부 고발자들은 기밀누설죄, 명예훼손, 무고죄로 법정에 서거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시달린다.  
 
더 큰 문제는 내부고발자가 이처럼 공공연히 드러날 경우 해당 당사자는 회사 내부에서 ‘왕따’로 전락하고 자신의 양심에 부끄럽지 않고자 공익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선 사람들은 회사 내에서 이른바 배신자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다.
 
회사에 부담되는 내용을 발설한 사람을 찾아내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식의 내부 고발자 색출은 이제 없어져야한다. 내부고발자는 공공의 적이 아니다. 반역자, 배신자 프레임은 더더욱 안된다.
 
미국에서는 내부고발자를 보통 '휘슬 불로워(whistle blower)'라 부른다.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어 범죄를 경계하고 위험을 경고하는 데서 유래했단다. 그렇기에 미국 뿐 아니라 외국에서는 이렇게 `호루라기 부는 사람'은 후한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부고발자에겐 따가운 눈총을 보낸다. 상사나 동료의 비리를 고발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배신행위이기 때문이다. 물론 궁극적으로 조직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도 조직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좋아할 관리자는 없다. 그래서 문제가 터지면 내용 확인과 개선 조치보다는 제보자 색출에 급급하다.
 
우리나라 사회가 건전하고 투명한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호루라기를 두려움 없이 불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선한 양심을 보호하지 못하는 회사가 어떤 미래를 만나게 될 지는 확연한 일이다.
 
박상효 산업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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