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박상효

"죽을 순 있어도 멈출 순 없다"

2022-06-13 10:56

조회수 : 2,134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우리는 더이상 빼앗길 것이 없다. 죽을 순 있어도 멈출 순 없다"
 
지난 2003년 화물연대 총파업 당시 김종인 화물연대 위원장의 말이다. 벌써 20년 전이다. 사회부 발령을 받고 첫 취재가 화물연대 총파업이었고 15일간 이어졌다. 당시 김 위원장은 또 "우리는 국가 물류체계를 바로잡는 애국 투쟁이며, 생존권 사수를 위한 정당한 투쟁"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3년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라는 슬로건 아래 처음 시작된 화물연대의 대규모 총파업은 20년동안 13차례나 이어져왔다. 특히 2003년 15일, 2008년 1주일간의 총파업에 따른 물류대란은 나라 경제가 흔들릴 정도였다.
 
그렇다면 화물연대가 주장한 세상은 바뀌었을까? 아니다. 20년 전 그대로다. 그때나 지금이나 요구사항은 안전운임 보장이다. 화물연대가 2003년 첫 대규모 파업 이후로 계속 요구한 건 적정운임을 보장해달라는 것이고 2008년 총파업 때도 경유 가격이 크게 뛰면서 휘발유 가격을 넘어섰고 화물연대는 '표준운임제'를 요구했다.
 
화물연대는 올해도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와 안전운임제 확대 등을 요구하면서 정부와의 교섭에 진척이 없자 결국 예고한대로 지난 7일 자정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안전운임제는 과로·과속 등을 막기 위해 화물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운송료를 보장하고, 그보다 적은 돈을 주는 화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다. 지난 2020년 도입됐지만 3년 일몰제로 올해 종료를 앞두고 있다.
 
특히 최근 경유가가 리터당 2000원을 돌파해 화물 노동자들이 수백만원의 유류비를 지출하고 있는 가운데, 유가 인상 시 이에 연동해 운송료가 조정되는 안전운임제 안착과 확대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화물연대 주장이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한 상태다. 여기에 정부는 화물연대의 정당한 집회 등은 보장하겠지만, 정상 운행차량의 운송을 방해하는 등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경찰과 협조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의 총파업에 대해 ‘불법행위 원칙 대응’ 기조를 밝혔다. 윤 대통령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든 노동자의 불법행위든 선거운동을 할 때부터 법에 따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천명해왔다”고 말했다.
 
이번 화물연대 총파업도 새삼스럽진 않다. 새정부의 출범과 함께 이미 충분히 예견된 일이였다. 조금만 신경쓰고 조정했으면 방지했을 것을.
 
정부의 대응도 실망스럽다. 공권력 투입, 철저한 법집행. 이것으로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을지언정 전반적인 문제 해결에 이르지는 못한다. 
 
일명 ´생계형 파업´이라 불리며 국민들과 비화물차주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지난 2008년 물류대란 이후, 정부와 업계는 다단계 하도급, 지입제 등 낙후된 물류운송시장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사전에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협의기구 신설이 필요할 때다. 매번 반복되는 화물연대 파업은 화주, 주선사업자, 운송사업자, 화물운송노동자 간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화물연대는 현재 법적으로 자영업자 신분이다. 
 
화물연대 파업 20년이 된 지금, 대전환점이 절실한 상황이다. 커다란 틀의 변화가 이어지지 않는 악순환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기본과 원칙 속에 제도 개선이 이루어 져야 한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제도 개선은 아니 하는 것보다 못한 일이다.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 이후 한국경제에 미칠 파장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며, 정부 차원의 위기관리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  대규모 물류대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종합적인 후속대책도 필요하다. 정부는 하루 빨리 화주, 화물노동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 운송업계의 고질적인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대화와 타협은 민주주의의 발전 동력이다. 불법은 또 다른 불법을 낳고, 폭력과 과격투쟁은 사회 혼란만 부를 뿐이다. 물론 민주사회에선 정부에 불만을 털어놓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화물연대도 파업을 한 이상 분명 책임을 져야 한다.
 
  • 박상효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