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코로나 시대 위로한 연주, 이 시대의 눈물 ‘서울 재즈 위크’
재즈공연사 페이지터너 기획…안온에 관한 무수한 질문들, 음표가 되다
2020-08-26 16:58:22 2020-08-26 23:43:29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지난 20일 저녁 8시경, 서울 종로구 북촌로에 위치한 디귿집내부. 100년의 흔적이 서린 한옥집을 등지고 현악 4중주 악기 편성의 크로스오버 밴드 ‘VRI String Quartet[김신혜(1바이올린), 주소영(2바이올린), 박용은(비올라), 지박(첼로)]’의 연주가 울려 퍼졌다.
 
이들이 지난 14일 발표한 신보 ‘Save The Planet’의 라이브. 마스크를 낀 이들의 장엄하고 고즈넉한 초반의 현악 선율(‘Introduction’-‘Earth’)이 금세 팬데믹으로 얼룩진 오늘날 우리 세계를 눈앞에 그려냈다.
 
코로나 때문에 힘든 시기에 위로가 되는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상상해보시며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첼리스트 지박)
 
이윽고 편안한 현악의 음조가 초반의 무거운 느낌을 걷어낸다. 하늘 방향으로 날개를 펴듯 비상하는 활들이 코로나 이전의 푸른별 지구로 관객들을 잡아끈다. 왼손으로 현을 뜯는 비올라, 첼로의 피치카토 속주(‘Flower’)가 꽃 봉우리처럼 음의 싹을 틔우고, 고음역 대의 제1바이올린 솔로가 투명한 파도처럼 귓가를 철썩였다.(‘Wave’)
 
고상하거나 현학적 연주만이 주가 되는 클래식 공연은 그날 없었다. 음표들은 시종 한옥 위로 불어오는 여름바람 같이 표류하다 붓 자국처럼 삶의 풍경을 그려냈다. 과거 안온했던 인류의 일상과 평온한 자연의 일면들. “파도 소리를 느끼셨나요?” 같은 멤버들의 소통은 곧 관객들의 미소로 번졌다.
 
지난 14일 신보 ‘Save The Planet’를 낸 ‘VRI String Quartet[김신혜(제1바이올린), 주소영(제2바이올린), 박용은(비올라), 지박(첼로)]’. 20일 북촌 한옥 '디귿집'에서의 라이브 연주.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실제로 이날 들려준 라이브의 상당 부분은 신보 ‘Save The Planet’의 수록곡들. 이 앨범의 전체 작곡, 프로듀싱을 맡은 첼리스트 지박씨는 불안한 마음이 가득한 오늘날 시대적 상황에서 오아시스 같은 편안한 순간을 간직하길 바라며이 곡들을 썼다고 설명한다. 코로나로 안온을 잃어버린 오늘날의 고민은 지박씨의 새로운 음악적 영감이 됐다. 일상에 대한 그리움과 인류의 희망, 자연에 대한 찬미.
 
이날 공연은 재즈 공연기획·음반제작사 페이지터너가 마련한 ‘SEOUL JAZZ WEEK’ 일환으로 열렸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적 실력을 갖춘 재즈 혹은 크로스오버 연주자들이 릴레이식으로 공연하는 행사. 코로나19로 대중음악 공연계가 힘든 상황이지만 주최 측은 20명 남짓의 소규모로 사전 공연장 내 방역, 관람객 및 스탭 체온 체크, 객석 구획화 등에 총력을 기울였다.
 
전 레바논 대사관 건물(식스티세컨즈 라운지)과 성수동의 문화복합공간 크리에이터 라운지와 스피닝울프, 근대건축 거장 김중업(1922~1988)이 설계한 건물 文樂HOM(문악HOM)’, 북촌의 한옥 디귿집등 서울의 특색 있는 공간에서 보름 남짓 릴레이식으로 열렸다.
 
지난 14일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스피닝울프’. 재즈 밴드 하드피아노[최병준(드럼), 김승현(기타), 닥스킴(신스베이스), 심규민(키보드·피아노), 전용준(키보드·피아노), 전상민(키보드)] 의 무대.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코로나로 많이들 힘드시죠조만간 저희 모두 이 상황을 극복하고 마스크 없는 세상에서 다시 만나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4일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스피닝울프’. 재즈 밴드 하드피아노[최병준(드럼), 김승현(기타), 닥스킴(신스베이스), 심규민(키보드·피아노), 전용준(키보드·피아노), 전상민(키보드)] 멤버들은 이렇게 말하더니 허비 행콕의 카멜레온을 밴드식으로 해석했다.
 
원곡의 헤드 멜로디를 기반으로 도합 세 대의 신스(무그 베이스, 코르그 크로스, 프로펫)와 그랜드 피아노는 각자의 복잡 방대한 솔로파트를 주무르며 즉흥 연주의 한계에 도달했다. 멤버들 각각은 서태지(닥스킴)와 김현철(전용준), 박효신(심규민) 등 대중음악계 최선두 세션으로 활동하는 연주자들.
 
이날 A Coast Road’, Limitless등 자작곡까지 총 2시간여 무대 이후 만난 멤버 전용준씨는 우리들 각자가 진행하는 커머셜 음악과 프로젝트성인 하드피아노의 정체성은 조금 다르다강렬하고 빠르되 복잡한 연주로 최대한의 즐거움을 위해 치닫는 것, 그럼으로써 관객들이 코로나로 지친 마음을 시원하게 뚫을 수 있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공연예술계는 초토화가 된 상황입니다. 상당수 온라인 콘서트가 생기고는 있지만 역시 무대라는 것은 대면 상태에서 서로 호흡하면서 라이브로 즐겨야 진가가 발휘되는 것 같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언제쯤 우리는 다시 코로나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코로나시대를 위로하는 그 음악들은 단순히 연주를 연주로만 들리지 않게 했다. 공연을 즐기지 못하는 지금이, 보호받지 못하는 안온한 일상에 대한 무수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SEOUL JAZZ WEEK’ 내내 연주는, 음악은 그렇게 시대적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준비한 곡은 ‘Breath’. 우리 말로 숨, 호흡입니다.” 디귿집에서의 공연 마지막 즈음, Vri String Quartet은 앨범 마지막 곡으로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한 활에서 길게 머무를 때 관객들이 긴 숨을 들이켰다 내뱉었다. 이 시대의 혼란을 몰아내는 안온한 현의 울림. 앉아있던 관객 누군가는 눈물이 흐를 뻔했다고 했다.
 
활의 리듬에 맞춰 함께 하는 호흡들은 시종 마스크 안에서 들썩였지만, 음악은 그렇게 사람을 이었다. 연대, 연결의 개념이 희미해져만 가는 이 세상에 한 줌의 빛을 뿌렸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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