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그가 등장하면 완벽한 현실도 절대적인 비현실이 된다. 그래서 일지 모른다. 우산 속 게슴츠레 미소 짓던 모습에서 이 세상 모든 여심이 비명을 지르면서도 그 웃음이 내 곁엔 존재하지 않는 ‘그것’이란 점을 애써 위안으로 삼은 아이러니 말이다. 우린 그를 보면서 언제나 항상 아이러니의 현실을 경험한다. 그의 연기력, 그의 존재감, 그의 작품 해석력.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배우란 직업적 소명 의식이 본인에겐 가장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대중에겐 그의 이름 석자 ‘강동원’이 가장 중요하다. 그가 등장하면 영화도 상상 속에선 현실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상상 속 현실은 곧바로 비현실의 절대값을 매겨 버린다. 영화 ‘반도’의 제작자도 이 영화 속 유일한 비현실은 강동원의 외모였을 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비현실의 결정체인 강동원은 그래서 어쩌면 자신의 외모로 스스로 폄하시킬 요량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반도’ 출연은 이런 고도의 계산이 깔렸단 절대적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
배우 강동원. 사진/NEW
이유를 설명하라면 딱히 ‘이유’가 떠오르진 않는다. 하지만 강동원과 연상호 감독의 조합은 언뜻 떠오르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듯싶었다. 물론 연 감독의 전작 ‘부산행’의 주인공 공유가 ‘반도’ 시나리오를 먼저 읽고 연 감독에게 주인공 ‘정석’으로 절친 강동원을 추천했단 얘기는 유명하다. 그 얘기는 후에 강동원도 전해 들었단다. 결과적으로 사실 강동원은 ‘부산행’의 차기 프로젝트인 ‘반도’에 대한 호기심이 그리 크진 않았다고.
“저란 배우에게 ‘반도’는 호기심을 끌만한 작업은 아니었어요. ‘부산행’은 정말 신선했지만 그 다음 얘기라면 당연히 배우나 관객 입장에선 호기심이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죠. 우선 잘 하는 편집감독님이 ‘연상호가 너 보자고 하던데’라고 연락을 받아서 만나 뵈었죠. 감독님에 대한 여러 소문을 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정말 빨리 찍는다’란 소문이었어요. 사실 그게 제일 궁금했죠(웃음). 그 이유를 들으니 ‘정말 괜찮은 비주얼이 나오겠다’ 싶어서 선택했어요.”
당시 강동원이 연 감독에게 전해 들은 ‘빨리찍기’의 이유는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면서 좋은 영화를 찍겠다는 자세는 나와 맞지 않는다’란 얘기였다. 그런 가치관이 강동원을 잡아 끌었다. 첫 만남 이후 바로 다음 날 시나리오를 전달 받았다. 감독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가치관이 본인을 사로 잡으니 이젠 현장의 분위기와 방식이 너무 궁금해졌다. 현장에서 연상호 감독의 자세가 궁금했다.
배우 강동원. 사진/NEW
“현장은 정말 변화 무쌍하잖아요. 아무리 성격 좋은 감독님들도 수백 명의 스태프가 함께 하는 현장에선 한 번은 폭발을 하세요. 연 감독님도 그럴 상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했죠. 그런데 정말 너무 빨리 찍고, 또 시간이 늘어지면 스태프와 배우들이 피해를 본다는 생각이 하시는 건지 싫은 소리를 하시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우선 아무리 늦게 끝나도 오후 4시면 끝이 났어요. 대단하죠.”
그런 현장에서 강동원은 본인만 잘하면 되겠다는 심정으로 임했다. 사실 그는 최근 전작들에서 큰 호응 받지 못해 왔다. 결과적으로 ‘부산행’의 속편에 해당하는 ‘반도’ 출연은 최근 연이은 흥행 실패에 대한 부담을 가중 시킬 선택일 수도 있었다. 더욱이 ‘속편’ 출연은 배우들 입장에선 당연히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분명한 선택이었다. 이런 점은 강동원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부산행’을 좋아하신 관객들도 좋아할 결과물을 내야 한단 부담은 있었죠. 더욱이 사실 제가 좀비 영화를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었어요. 전 오컬트 장르를 더 좋아하거든요. 배우가 선호하는 장르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라 당연히 이것도 하고 저것도 아는데. 이번 기회에 좀비 장르도 경험해 봐도 좋겠다 싶었죠. 그런데 찍고 나니 알겠더라고요. 왜 사람들이 좀비 장르에 열광하는지.”
배우 강동원. 사진/NEW
‘반도’를 찍으면서 가장 많이 마주하고 액션을 함께 한 배우는 좀비로 출연한 단역 배우들이다. 적게는 10명 이상에서 많게는 한 번에 50명 이상까지 촬영장에 매회 차 대기하고 있었다. 이번 ‘빈도’에선 ‘부산행’의 좀비와 달리 많은 부분이 업그레이드 됐다. 우선 좀비가 3가지로 분류가 돼 있었다. 그냥 ‘단역 좀비’ 그리고 무용을 경험한 ‘무용 좀비’, 나머지는 액션을 할 줄 아는 ‘액션 좀비’.
“상황에 따라서 액션 장면을 구성했어요. 일대일의 액션이 많은 게 아니라 다대일의 액션이다보니 사전에 합을 잘 짜서 맞춰야 했을 법한데. 사실 그런 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딱 한번 뿐이었어요. 오히려 현장 세트에 맞춰서 유동적으로 그때그때 감독님과 무술감독님이 구성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이런 장면에선 ‘단역 좀비’, 좀 더 유연한 액션 장면에선 ‘무용 좀비’. 631부대가 점령한 지역의 숨바꼭질 장면에선 ‘액션 좀비’ 분들이 고생을 많이 하셨죠.”
총기 액션이 많은 지점도 눈에 띈다. 강동원은 전작인 ‘인랑’을 통해 이미 국내 배우 가운데 총기 액션에선 끝판왕을 경험한 바 있다. 그는 ‘인랑’의 총기 액션에 비하면 ‘반도’의 총기 액션은 산책 수준이었다며 웃었다. ‘반도’에서 전직 군인 출신이기에 총기를 다루는 모습도 능숙해야 했다. 무엇보다 프로페셔널함이 묻어나야 했고, 또 현장에서의 테크니컬적인 스태프들의 면모에 깜짝 놀랐단다.
배우 강동원. 사진/NEW
“뭐 ‘인랑’ 때에 비하면 이번 영화 총기 액션은 산책 수준이었죠(웃음). 우선 총이 가볍잖아요. 하하하. 그런데 그 총이 전부 모형인줄 아시는데 전부 실제 총이에요. 실탄을 넣으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실제 총이었어요. 그러니깐 원거리에서 총을 쏘는 장면은 공포탄을 넣고 총을 쏘고, 다만 가까운 거리는 모형 총을 썼죠. 이게 총구에서 나오는 불꽃 때문에 실제 총을 써야 한데요. ‘인랑’때도 그랬고요. 모형 총을 쓴 장면에선 바로 현장에서 총구 불꽃 CG를 입혀서 보여주시는 데 정말 기도 안찼죠(웃음). 대한민국 영화계가 이렇게까지 발전했나 싶더라고요. 하하하.”
이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현장편집과 현장CG작업도 있었지만 사실 진짜는 따로 있었다고. 시나리오 단계부터 상상을 해도 언뜻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던 장면이란다. 바로 아역 배우 출신 이레의 화려한 액션이 가미된 ‘카체이싱’ 장면이다. ‘반도’의 카체이싱 장면은 국내 상업 영화에선 단 한 번도 시도 된 적 없는 화려함의 끝판을 담당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싶었다는 의심도 당연했다.
“이미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그걸 글로서 읽을 때는 ‘이게 된다고? 말도 안돼’란 말이 저절로 나올 수 밖에 없었어요. 현장에서 찍을 때는 정말 신기했죠. 거대한 ‘짐벌’이란 특수 기구에 차를 올려 놓고 촬영을 하는데 무슨 장면이 어떻게 나올지도 상상이 안됐는데 영화를 보니 정말 놀라웠어요. ‘부산행’을 좋아하신 관객들에게 최소한 실망은 안드리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카체이싱 하나 만으로도 ‘반도’를 보는 재미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요.”
배우 강동원. 사진/NEW
‘반도’ 역시 ‘부산행’과 마찬가지로 열린 결말 형태로 막을 내린다. 이미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 기획 당시부터 이 세계관을 이용한 확장된 스토리를 구상하고 있단 점을 공개해 왔다. ‘부산행’ 이후 세계관을 공유한 ‘반도’가 나왔다. 이 영화를 통해 또 다시 나오게 될 얘기들은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강동원이 연상호의 시네마유니버스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가 궁금해진다.
“우선 세계관을 형성한 영화 그리고 포스트 아포칼립스 여기에 화려한 카체이싱이 결합된 영화. 국내에선 거의 처음이지 않을까 싶어요. 너무 많은 분들이 많은 노력을 한 작품이니 잘 됐으면 싶죠. 특히 어려운 시기인데 이 영화가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계기가 되면 더 할 나위 없을 거 같고요. 앞으로 제가 어떤 쓰임새가 될지는 모르지만, 감독님이 필요하시다면 뭐 어떻게 해서라도 시간을 빼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당분간은 그 세계에 좀 더 있고 싶은 마음이 크네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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