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당신은 당신이라고 믿을 수 있나’라고 묻는다. 그런 적도 있다. 내가 사실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구인 것 같은. 그럼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 인가. 내가 내가 아니면, 다른 누구인가. 그럼 그 다른 사람은 또 누구란 말 인가. 질문은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난다. 내가 너일 수도 있다. 알고 보니 네가 나일 수도 있단 얘기다. 선문답이다. 답 자체가 없는 질문이고, 의문이다. 환상일 수도 있고, 현실일 수도 있다. 그 답은 본인이 찾아야 한다. 질문은 던지는 사람의 몫이 아닌 받는 사람 몫이다. 이게 바로 배우 정진영이 연출 데뷔작으로 선택한 ‘사라진 시간’이다.
한 남자가 있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게 사라졌다. 자신은 존재하지만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자신은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만 제외하고 모든 게 없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관객은 궁금하다. 그 세계에 존재했던 형구(조진웅)는 미치겠다. 기억하고 있다. 확신한다. 그런데 갈수록 스스로도 혼란스럽다. 혼자서만 초자연적인 어떤 힘에 이끌려 구멍 속으로 빨려 들러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다. 형구도 그렇고, 그를 바라보는 관객도 그렇다.
‘사라진 시간’은 시작과 끝이 같다. 홀로 어딘가를 걷는 형구의 모습이다. 처음 오프닝은 흑백이다. 불안한 표정의 형구, 그리고 그 뒤로 뉘엿뉘엿 보이는 공간. 그 공간에서 형구는 혼란스럽다. 이상하다. 낯설다. 그는 왜 혼란스럽고, 낯설까. 그 이유를 찾기 위한 시선이 시작된다.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시선은 시골 마을에서 시작된다. 수혁(배수빈)과 이영(차수빈). 두 사람은 부부다. 수혁은 이 마을 학교 선생님이다. 전원 생활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 시골로 발령을 자처했다. 비밀 때문이다. 아내 이영은 밤바다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수혁의 돌아가신 엄마, 전설의 코미디언 이주일, 거구의 프로레슬러 역도산 등. 매일 밤 매일매일 이영도 불안하다. 스스로도 무엇으로 변할지 모른다. 자신을 바라보며 사는 남편 수혁이 불쌍하다. 아이를 갖고 싶지만 불안한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확신이 서지 않는다.
우연한 기회에 수혁과 이영의 비밀이 마을 사람들에게 들킨다. 순박한 마을 사람들은 불안하다. 그들의 비밀을 위해 마을 사람들과 두 사람은 ‘어떤 약속’을 한다. 하지만 그 약속이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만들어 낸다. 여기서 영화는 한 번의 변곡점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이 마을에 형사 형구가 나타난다.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형구는 아내 지현(신동미) 그리고 두 아들을 둔 평범한 가장이다. 형구는 이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을 수사하며 마을 사람들을 용의 선상에 놓고 수사망을 좁혀간다. 그러던 중 또 다른 사건을 겪은 형구는 다른 세상에서 깨어나게 된다. 죽은(사라진) 수혁의 집에서 깨어났다. 수혁이 선생님으로 재직했던 학교 선생님이된 형구다.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는 다른 사람이 산다. 몇 년 동안 쓰던 휴대폰 번호도 없는 번호다. 바로 어제만 해도 ‘형사님’이라 부르던 마을 사람들은 이제 ‘선생님’이라고 그를 부른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게 사라졌다. 남은 건 형구의 기억뿐. 이제 형구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선 판타지 시선으로 접근했다. 수혁과 이영 부부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사라진 걸까. 아니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걸까.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의 마지막을 유추할 수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확신은 없다. 확신을 위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머물던 집과 그들을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은 존재한다. 두 사람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아니면 아내 이영이 겪던 불행이 단초가 됐을까. 비극적 최후를 선택했나. 창문 너머로 일렁이던 불빛은 무엇이었나. 그리고 등장한 형구. 그가 겪는 초자연적인 상황. 어떤 연결 고리가 있을까. 영화는 형구의 불안한 내면을 따라간다. 장르적 정공법을 따라가던 흐름이 갑작스럽게 목적을 지워버린다. 이제 사건이 중심이 아니다. 형구는 사라진 자신을 찾아야 한다. 관객도 사라진 수혁과 이영 부부가 목적이 아니다. 형구의 지워진 실체를 찾기 위해 혼란을 총동원한다. 이제 형구가 바로 관객이 된다.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그럼 판타지의 목적은 보이지 않는 힘 일까. 사라진 이영은 초반부터 다른 사람이 되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을 겪고 있었다. 오컬트 영화에 등장하는 ‘빙의’일까. 그것도 아니다.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하지만 ‘사라진 자신’에 대한 단서는 ‘사라진 이영’을 통해서 유추가 가능하다. 수혁의 아내 이영은 이(異) 영(靈)이다. 다른 영혼을 뜻한다.
그럼 이제 시선은 형구에게 옮긴다. 형구가 깨어난 공간은 수혁과 이영 부부가 사라지기 직전 함께 있던 공간. 형구는 자신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또 다른 세계로 빠져 들었다고 믿는다. 현실이 꿈이고, 꿈은 기억이라고 확신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입에선 현실만 나올 뿐이다. 지금의 형구를 설명하는 단서들이다. 반면 마을 사람들은 형구의 기억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건 형구 혼자만의 꿈일 뿐이기 때문이다.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이제 형구는 현실을 쫓는 게 아니라 기억을 쫓는다. 바로 꿈을 쫓는다. 지금의 현실이 아닌 기억 속 현실이 부정되는 상황을 하나 둘 확인해 나간다. 받아 들일 수 없지만 그게 현실이다. 이미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 꿈이 됐다. 이젠 혼란을 넘어서 존재 자체에 대한 혼란까지 온다. 지금 있는 자신이 자신이 맞는지, 아니면 기억 속 자신이 진짜 자신이었는지.
‘사라진 시간’은 감독 데뷔를 꿈꾸던 배우 정진영의 자아 찾기처럼 다가온다. 자신을 지우고 다른 사람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배우로서의 숙명은 정진영 본인이 가장 잘 알고 또 겪어온 혼란이다. 수십 년을 배우로 살아오면서 매번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했던 자신에게 묻는다. 지금의 나와 그 나 너머에 존재하는 나, 그리고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나. 진짜 자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그 질문의 근원은 본인이 겪었고, 지금도 겪는 혼란의 밑바닥이다. 배우로서 느껴야 하는 숙명이고, 그 숙명은 배우란 직업적 굴레 안에서 더욱 힘을 얻어 싹이 터버린 ‘감독’에 대한 욕망일 수도 있다. 카메라 앞에서만 존재했던 자신의 자아를 바라보는 감독 정진영이 상상한 카메라 뒤 정진영이 이 영화 ‘사라진 시간’ 마지막 화면 속 형구의 존재였을지 모른다.
흑백으로 시작한 오프닝과 함께 컬러로 클로징 되는 ‘사라진 시간’의 시작과 끝. 같은 공간 속에 존재하는 자아에 대한 현실과 기억의 거리감은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 나선 과정의 거리이기도 하다. ‘사라진 시간’은 감독 정진영이 던지는 선문(禪問)이다. 선답(禪答)은 관객들의 몫이다. ‘사라진 시간’은 그 답을 스스로에게 전하는 과정일 뿐이다. 개봉은 오는 18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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