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사냥의 시간’ 박해수, 이 남자의 서늘한 존재감
“한국영화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 그 매력에 출연”
“바닥 알 수 없는 ‘어둠’ 표현 위해 현장에선 고독과 외로움 선택”
2020-05-04 00:01:00 2020-05-04 00:01: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 ‘사냥의 시간’의 마침표는 분명히 배우 박해수가 담당했다. 이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분명히 동의할 지점이다. 다양한 장르의 특색이 혼재된 이 영화에서 박해수는 명확했다. 느와르의 처절함도 아니었다. 스릴러의 가슴을 옥죄는 감정도 아니었다. 잔인하고 인간미라곤 느낄 수 없는 사이코패스적인 감성도 아니었다.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서늘함’ 그 자체였다. 감정을 드러내지도 감성을 전하지도 않았다. 그는 항상 그림자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조용히 존재했다. 텐션을 강하게 잡아당기는 영화 자체의 감성 속에서 박해수가 연기한 캐릭터 ‘한’은 글자 그대로 서늘한 한기를 느끼게 했다. 누군지도 모른다. 이유는 더더욱 모른다. 몇 가지 단서로 ‘한’의 존재를 설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도 추측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실재하는 인물로 등장했고, 실체하는 인물로 ‘한’을 만들어 버렸다. 데뷔 이후 이제 겨우 두 번째 영화다. 영화 데뷔작 ‘양자물리학’에서의 모습과는 완벽하게 다른 지점을 박해수가 그려냈다. 이 배우의 다음 스텝이 너무 궁금해 질 정도의 존재감이었다.
 
배우 박해수. 사진/넷플릭스
 
이 영화를 소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점이 바로 ‘우여곡절’이다. 개봉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과정도 너무 시끄러웠다. 출연 배우들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출연 배우이기 때문에 더 안타까움이 더했다. 그래서 몇 발자국 떨어져서 지켜본 상황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10’ 여파에 대한 우려도 더해졌다.
 
“그 상황들을 제가 어쩔 수 있는 건 아니었기에 뭐라고 말씀을 드릴 건 없을 것 같아요. 뭐 짐작이야 하시겠지만 저도 제 속이 제 속이었겠어요(웃음). 우선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해야죠. 그리고 좋은 쪽으로 진짜 바뀔 것 같아요. 앞으로 시장 상황이 변화를 맞고, 그 변화의 신호탄이 저희 영화가 될 것 같아요. 당연히 큰 스크린으로 보면 더 좋겠지만, 이 영화의 특성이라면 ‘보고 또 보고, 멈췄다가 보고, 멈춰서 살펴보고’ 하면 다른 게 보이실 거에요.”
 
가까운 근 미래가 배경이고, 스토리는 간결한 플롯이다. 하지만 구성 자체가 쉽지 않다. 전반과 중반 그리고 후반의 톤 앤 매너가 완벽하게 다르다. 각각 자기 색깔이 뚜렷하다. 한 작품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3편의 영화를 한 번에 본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안에서 박해수가 연기한 ‘한’은 완벽하게 중심축을 지탱한다. 크게는 영화 중반부터 후반까지를 오롯이 책임진다.
 
배우 박해수. 사진/넷플릭스
 
“너무 과찬이세요(웃음). ‘한’이란 인물로만 보면 한국영화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인물이라고 자부해요. 이 인물의 과거는 단 한 개도 드러나지 않았잖아요. 물론 영화 속 배경 소품을 보면 짐작할 만한 요소들이 몇 개 있어요. 그런 점을 미뤄보면 ‘전쟁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인물’ ‘삶과 죽음 뿐인 인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진 인물’ 등으로 정리를 했어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을 참고 했지만 전혀 다른 인물이에요.”
 
이런 점 때문에 박해수는 자신의 연기 인생 두 번째 영화로 ‘사냥의 시간’을 선택했단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감, ‘한’이란 인물의 근원적 배경이었다. 그 점에서 끌렸다. 설명 불가능한 공포는 영화 속 주인공 4명의 공포감을 극대화시킨다. 이런 점은 관객들에게까지 오롯이 전달된다. 특히나 ‘한’은 영화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한 가지를 끌고 가면서 인물의 특색을 살렸다.
 
“사실 이게 별 거 아닌 포인트일 수도 있는데. 영화에서도 ‘한’보다 훨씬 어린 네 명에게 ‘한’이 계속 존댓말을 써요.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아닌, 난 너희와 ‘존재 자체가 다르다’란 뜻에서 사용해 보면 어떨까 싶었죠. 실 생활에서도 보면 너무 힘이 쎈 사람은 너무 힘이 없는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는 모습을 자주 봤어요. 감독님도 고민을 하시더니 동의해 주셨어요. 상대에 대한 존중이 아닌 하대보다 더 무서운. 상대를 인격 자체로 생각하지 않는 ‘한’의 품격 정도로 해석해 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
 
배우 박해수. 사진/넷플릭스
 
사소한 설정이지만 이런 모습은 ‘한’이란 인물의 기괴함을 더했다. 4명의 주인공을 뒤쫓는 그의 집요함과 함께 잔인함이 극대화되는 디테일을 살리는 도구가 됐다. 무엇보다 박해수는 현장에서 ‘한’의 성격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구석으로 최대한 몰아 붙였다. 영화의 분위기와 달리 현장의 분위기는 코미디를 방불케 할 정도로 화기애애했다고. 하지만 박해수만은 예외였단다.
 
“’한’의 바닥을 알 수 없는 어둠을 표현하려면 저 자신을 좀 몰아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 제가 출연하는 대부분의 장면이 밤 장면이고, 또 어둠 속에서 귀신처럼 등장을 해요. 현장에서 뭔가 외로움을 살려서 촬영 직전까지 끌고 가야 했기에 동생들(주인공 4명) 그리고 감독님과도 최대한 거리를 뒀어요. 현장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정말 외롭고 고독했는데. 오히려 그게 나중에는 편하더라고요. 나중에 당시 쓴 일기를 보니 박해수가 아니라 좀 다른 사람이더라고요.”
 
‘한’의 디테일한 설정과 성격 외에도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총기액션이다. 한국영화에서 총기 액션은 전쟁 영화를 제외하곤 사실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동떨어지는 비주얼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사냥의 시간’은 조금 달랐다. 우선 박해수가 연기한 ‘한’은 총기를 다루는 전문가였다. 주인공 4명과의 총기 액션에서도 그 합은 할리우드의 ‘그것’과 견주어 결코 밀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배우 박해수. 사진/넷플릭스
 
“이래봬도 제가 군대 조교 출신이에요(웃음). 총기에는 좀 자신이 있었죠. 그런데 영화 속 총기는 정말 다른 지점이었어요. 특수부대 출신 분에게 꽤 오래 교육을 받았어요. 총기 다루는 방식부터 상황에 따라 어떻게 총을 들고 있는지. 탄창을 교체하는 방법, 상대를 겨누는 방식 등. 특히나 총기 사운드는 국내 영화 중 최고일거라 자부합니다. 그 디테일을 들어 보시면 감탄을 터트리실 게 분명해요.”
 
사실 감정적으로 가장 궁금한 지점은 ‘한’의 인간 사냥 감성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종종 등장한 감성이다. 인간의 쾌감 중 가장 ‘끝판’이 ‘인간 사냥’이라고. ‘사냥의 시간’에서 박해수가 연기한 ‘한’이 바로 인간 사냥꾼이다. 비록 영화이고, 현실에선 절대 일어날수 없는 지점이기에 궁금했다. 직접적으로 사람을 사냥해 본 배우 박해수가 바라본 ‘한’의 감성.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요(웃음). 단언할 수 있는 건, 정말 잔인한 느낌이었어요. 제가 개인적으론사람이 동물을 사냥하는 것을 반대하는 데, 만약 사람이 사람을 사냥하는 게 존재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이게 맞는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 잠자리 잡아서 날개 뜯어 버리고 메뚜기 잡아서 다리 뜯고 놀고 했잖아요. 그게 아마 쾌감 때문이었거든요. 그런 감정을 두고 연기를 했는데, 만약에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배우 박해수. 사진/넷플릭스
 
‘사냥의 시간’에서 ‘한’은 어떤 과정을 통해 퇴장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리고 주인공 4명 중 한 사람이 마지막까지 등장해 속편을 암시하는 결말로 영화는 마무리가 된다. 박해수는 만약 이 영화의 속편이 제작된다면 출연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까. 이 영화를 통해 아쉬움이 남았을 수도 있고, 또 배우로서 못다한 얘기에 대한 욕구도 있을 것 같았다.
 
“우선 제가 알고 있는 한 속편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속편을 위해 감독님이 결말을 그렇게 만드신 게 아닌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선 감독님이 얘기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으셨던 걸로 압니다. 영화를 보신 많은 분들이 속편 가능성에 가장 큰 궁금증을 갖고 계시던데, 다시 말씀 드리지만 속편 제작 가능성은 ‘없다’가 맞습니다. 이건 감독님도 말씀을 하셨던 부분이에요. 저도 미련이나 욕구보단 후련합니다(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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