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2011년 독립영화 ‘파수꾼’으로 영화계 일약 깜짝 스타로 등극했던 윤성현 감독은 무려 9년 만에 ‘진짜’ 장편 상업 영화를 선보이게 됐다. 데뷔작인 ‘파수꾼’과는 비교도 안될 120억 규모의 돈을 손에 쥐게 됐다.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의욕이 앞섰다. 제대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파고들고 파고 들어도’ 어려운 게 영화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현장에 뛰어 들어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영화가 가장 어려운 윤 감독이다. 그래서일지 모른다. 데뷔작 ‘파수꾼’에서 함께 했던 ‘단짝’ 이제훈과 박정민이 합류했다. 독립영화 시절 눈여겨본 최우식과 안재홍도 합류했다. 이름 없는 단역 배우이자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시절의 박해수까지 눈여겨본 뒤 러브콜을 보냈다. 충무로 최고 스토리텔러로 주목 받은 윤 감독의 작품이란 점만으로도 다섯 배우는 무조건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영화에 합류했다. 영화 ‘사냥의 시간’ 라인업이 꾸려졌다. 물론 최근 ‘넷플릭스 분쟁’으로 한 차례 내홍을 겪었지만 더 단단해 지기 위한 과정이라 여겼단다.
윤성현 감독.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공개 며칠 뒤 만난 윤성현 감독은 전작 ‘파수꾼’과 달리 장르에 충실한 영화를 차기작으로 만들고 싶었단다. ‘파수꾼’이 엄청난 대사로 감정을 전달하고 표현했던 영화였다면, ‘사냥의 시간’은 장르 공식 안에서 충실하면서 은유와 비유가 적은 문자 그대로 ‘직선’에 가까운 스토리를 꿈꿨다고. 물론 메시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현대판 우화’를 그리고 싶었단다.
“’지옥’ 그 차제를 그려보고 싶었어요. 2016년도에 한창 ‘헬조선’이란 단어가 유행했는데, 그 단어는 지금도 유효한 것 같고. 그 단어 안에 있는 ‘지옥’ 그 자체에 집중했죠.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젊은이들. 그런 어려움을 정서적으로 그려내 보고 싶었죠. 사실 엄청난 주제 의식을 갖고 접근한 건 아니에요. 이번 영화를 두고 ‘근 미래’라고 말씀하시는 데 그것도 사실 동의하긴 좀 어렵고요. 그저 우화적인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인물을 던져 놓고 싶었어요.”
사실 이 영화의 호불호는 감독이 언급한 ‘지옥’이다. 영화 속 가상의 세계는 시스템 붕괴로 인한 사회 구조화가 작동하지 않는 공간이다. 현실 속 IMF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점을 언급한 대사도 등장한다. 화폐 가치의 폭락, 달러화 통용, 환전 금지 등. 감독은 ‘지옥’ 즉 ‘디스토피아’에 대한 상상으로 자신이 겪었던 1997년의 IMF 그리고 개인적으로 여행을 했던 중남미의 경제 붕괴 현장을 떠올렸다고.
윤성현 감독. 사진/넷플릭스
“저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IMF를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그 시절의 어려움을 기억하고 있죠.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중남미 쪽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의 경험과 이미지가 많이 투영돼 있긴 해요. 거리에 쏟아져 나온 실업자들과 시위, 슬럼화된 도시, 화려한 색깔의 그래피티와 화폐 가치의 붕괴. 당시 돈을 환전했는데, 그 돈을 다시 환전해서 가져가지 못하게 막아놨었죠. 제 기억과 또 저도 모르는 당시의 상처가 저도 모르게 이 영화의 세계관에 녹아 들었나 봐요.”
이 같은 지옥 속에서 주인공 네 사람이 느낄 진짜 지옥의 공포는 현실 탈출이 아니다. 그들을 쫓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자다. 영화에선 이 남자의 과거를 유추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가 제공되지만 그 뿐이다. ‘한’이라고 불리는 한 남자. 배우 박해수가 연기한 이 배역은 공포를 넘어서 서늘함까지 전달한다.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더욱 공포스럽다. 윤 감독은 박해수의 연기에 가장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분위기만으로도 압도해야 하는 지점이 필요했죠. 박해수 배우는 연극 ‘남자충동’을 보고 꼭 한 번 작업해 보고 싶은 배우로 점 찍어 놨었죠. 외국영화에선 종종 사연 없는 악당이 나오잖아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처럼요. 반면에 한국영화는 드라마가 중요하니 각각의 인물과 개연성을 중시해서 이유가 삽입이 되고. 이럴 경우 공포감이 약해진다고 생각했어요. 우주에 대한 막연한 상상과 공포, 심해에 대한 공포가 왜 생길까요. 모르기 때문이죠. 그걸 투영시킨 인물이에요.”
윤성현 감독. 사진/넷플릭스
‘사냥의 시간’은 장점도 많지만 분명히 단점도 강하다. 이런 지점은 우선 ‘한’에게 쫓기는 네 사람의 얼굴에서도 드러난다. ‘지옥’에서 살아가는 또래의 네 사람. 친구들이고, 청춘이다. 어설프고 치기 어린 느낌이 강해야 한다. 하지만 그에 반해 깨끗하고 단정하고 매끄럽다. 비주얼적인 측면도 있지만 감정적인 측면에서도 느껴지는 지점이다. 감독은 충분히 알고 있단 것을 전제로 말했다.
“지적하신 부분은 충분히 동의를 합니다(웃음). 하지만 영화이고, 영화적 표현방식으로 존재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고 봤어요. 좀 더 비주얼적으로 망가트릴까도 싶었죠. 하지만 망가진 비주얼에서 오는 감정들도 존재한다고 봤어요. 제가 생각한 감정은 그게 아니었거든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아픔에 대한 감정에 집중하는 게 아닌 장르적으로 범죄 서스펜스가 중심인 영화이기에 공간이 가진 힘듦에 더 집중하다 보니 그런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런 점은 전적으로 감독인 제 영역이었기에 부인하진 못하겠습니다(웃음)”
반면 이 영화의 장점은 사운드다. 특히 ‘총기 사운드’의 강점은 역대 한국 영화 가운데 단연코 최고라도 해도 무방할 정도다. 다양한 총기가 나오고, 총기에 따른 ‘사운드 디자인’이 압권이다. 근거리와 중거리 그리고 장거리에 따른 사운드 디자인이 치밀하다. 영화 중반 이후부터 등장하는 ‘한’과 네 친구의 추격전에서 나오는 숨막히는 분위기는 오롯이 디테일한 사운드 디자인이 담당했다.
윤성현 감독. 사진/넷플릭스
“영화 전체를 총 3막으로 구성했죠. 1막은 케이퍼 무비, 2막은 서스펜스 그리고 3막이 서부극 형태의 대결구도. 이 가운데 2막과 3막에서 총기가 많이 등장해요. 총기 하나하나에 대한 질감을 살리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어요. 국내 영화에서 총기가 이렇게 많이 등장한 영화는 전쟁 영화말고는 없었을 거에요. 현장에서도 정말 많이 신경을 썼던 부분이죠. 거리감과 상황에 따른 인물들의 긴박한 감정까지 느낄 수 있도록 설계를 했어요. 사운드팀에서 정말 많이 고생하셨어요. 너무 감사 드려요.”
데뷔작 그리고 차기작. 단 두 작품의 간극이 너무 길었다. 당분간은 좀 휴식을 취하면서 또 다른 작품 구상을 할 생각이란다. 혹시 ‘사냥의 시간’ 후속편에 대한 생각도 품고 있을까. 영화를 보면 후속편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결말이 눈길을 끈다. 윤성현 감독은 이에 대해 조금의 고민도 없이 선을 그었다. 그리고 차기작에 대한 밑그림을 조금 공개했다.
윤성현 감독. 사진/넷플릭스
“영화 속 결말을 두고 후속편 계획을 여쭤보시는 분들이 좀 계세요. 단언할 수 있는 건 ‘후속편은 없다’ 입니다. ‘사냥의 시간’은 여기서 끝입니다. 다음 얘기는 제가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려고 해요. ‘파수꾼’처럼 드라마와 감정에 초점을 맞춘 형태가 될 듯합니다. 늘 제가 해오던 방식이었던 익숙하고 편한 작업을 택할 것 같아요(웃음)”
김재범 기자 대중문화전문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