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초원 기자] 금융당국이 이달부터 '금융그룹 통합감독제도'를 시범 운영하면서 금융그룹 관련 자본규제가 더욱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비금융계열회사가 부실해질 경우 같은 그룹 내에 이곳 주식을 가진 금융회사가 함께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겠다는 게 이번 제도의 핵심이다. 이에 따라 삼성, 미래에셋 등 대형 금융그룹은 금융회사가 보유했던 비금융계열사 주식을 일부 매각하거나 자본을 더 쌓는 방식 등으로 자본적정성 관리에 나서야 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가 이달부터 시범 운영하는 '금융그룹 통합감독 모범규준' 최종안은 지난 3월 말 공개한 초안과 큰 틀에서 동일하다.
시범 감독 대상은 2가지 이상의 금융업을 영위하면서 금융자산이 5조원을 넘는 복합금융그룹이다. 삼성, 한화, 교보, 미래에셋, 현대차, DB, 롯데 등 7개 그룹이 대상이다. 이들 그룹은 각자의 대표회사를 선정해 위험관리정책을 수립하고, 건전성 관리와 관련된 업무를 이행해야 한다. 또 대표회사 이사회 내부에 위험관리기구를 설치해 주요 사항을 심의해야 한다.
위험 관리실태를 정기적으로 평가해 관리가 취약한 금융그룹에는 위험관리 개선조치를 권고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실태평가 항목으로는 ▲그룹 위험관리체계의 적정성 ▲금융그룹 자본의 적정성 ▲내부거래 및 위험집중의 적정성 ▲동반부실위험 관리의 적정성 등이 있다. 예컨대 A금융그룹의 자기자본비율이 부족할 경우 금융당국은 경영개선계획 수립 등 위험관리 개선 조치를 권고할 수 있다. 이에 따라 A금융그룹은 자신이 보유한 비금융계열사 등의 자산을 매각하거나 증자를 추진하는 방식으로 구체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이번 시범 운용에서는 '금융그룹 명칭 사용 금지', '동종금융그룹 전환 권고' 등 경영개선계획 불이행에 따른 제재 사항이 제외됐다. 제도 도입 초기인 데다, 행정처분은 국회 입법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위는 올 하반기 발의할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가칭)'에 이 항목도 포함시킬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무엇보다도 이번 제도의 핵심을 '자본적정성 지표'에 두고 있다. 자본적정성 지표 수치에 따라 그룹별로 쌓아야 할 자기자본이나 축소해야 할 위험자산 수준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금융위가 공개한 초안을 보면, 금융그룹은 적격자본(실제 손실흡수능력)을 필요자본(업권별 자본규제에서 요구하는 최소기준의 합계) 이상으로 유지해, 이 지표를 100% 이상으로 관리할 의무를 갖게 된다. 대기업그룹에 소속된 금융회사가 비금융계열사의 경영 악화 리스크를 전이받지 않도록 '도미노 부실'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적격자본에서 실제 손실충당에 사용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중복자본'이 차감된 것이 눈에 띈다. 신규자금의 유입 없이 금융그룹 내 출자를 통해 생성된 자본은 물론이고, 금융계열사간의 직접출자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인 손실흡수능력이 떨어지는 상호출자, 순환출자, 교차출자는 적격자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금융그룹에 순환출자를 포함한 내부 출자가 많을수록 자본적정성 비율이 떨어져, 그만큼 자본을 쌓아야 할 부담이 커진다.
또한 아직 구체적인 산출 기준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특정 거래상대방에 대한 위험노출액(익스포져)가 유난히 높거나 이해상충 가능성이 높은 대주주와의 거래가 많은 경우를 '집중위험'으로 묶어 필요자본에 합산할 예정이다. 비금융계열사 출자액을 일정 수준 이내로 관리하는 내용도 이 항목에 포함된다. 아울러 내부거래가 많거나 소유·지배구조가 건전하지 않은 경우 등을 기준으로 그룹의 위험관리역량을 평가한 뒤, 이를 바탕으로 필요자본에 '전이위험'을 가산하는 방식을 준비 중이다.
이같은 자본적정성 지표가 구체화되면 상호출자를 포함해 지배구조가 복잡한 대형금융그룹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비금융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을 대규모로 보유한 삼성생명은 앞으로 지분 매각, 증자 등 자본적정성 관리에 나서야 할 전망이다. 보험업법 개정에 따른 추가 지분 매각 이슈에 금융당국의 자본적정성 규제까지 더해지며 정부 차원의 압박도 거세지는 분위기다.
금융위도 집중위험 항목에선 삼성이, 중복자본 항목에선 미래에셋이 각각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지목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가졌고, 미래에셋도 계열사간의 출자 문제가 있어 자본적정성 지표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경영 의사결정을 할 때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아도 됐지만, 앞으로는 내부거래를 한다든지 계열사 지분을 취득할 때도 사업 지배력 확장만을 생각할 수 없을 것"이라며 "금융그룹들이 이런 리스크 관리를 고려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게 이 제도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통합감독 제도가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법제화 과정이 필수적이다. 단순 '모범규준' 차원에서는 법적 강제력이 없다. 금융위는 지난 2014년에도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를 받아 통합감독 제도 도입을 추진했지만, 재벌그룹들의 반대에 부딪혀 중도 포기한 바 있다.
금융당국은 법안 제정에 앞서 각 금융그룹별로 선제적인 자본적정성 관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 제도가 금융그룹에 큰 영향을 주려면 입법적 근거가 필요하지만, 일단 모범규준을 통해 하드웨어적인 측면이 잘 정비가 되면 향후 입법안을 통해 실질적인 자본규제 방안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이번에 공개한 자본규제 초안을 바탕으로 연말까지 영향평가와 의견수렴을 거쳐, 내년 4월 말 금융그룹별 자본적정성 비율을 산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올해 말까지 자본규제 최종안을 확정하고, 하반기 중 모범규준을 토대로 통합감독법안 국회 논의를 추진할 방침이다.
정초원 기자 chowon616@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