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영업비밀을 이유로 사용 중인 화학물질의 공개를 거부했던 기업의 결정에 제동이 걸렸다. 법원의 판결 때문인데, 정부도 연내 기업의 영업비밀을 규제할 대책을 발표한다. 노동계는 산업재해 판정에 유리할 것으로 전망하지만, 기업은 기술 유출을 이유로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4일 노동계와 경영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와 법원에서 노동자의 알 권리가 기업의 영업비밀보다 중요해지는 추세다. 기업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는데, 정부와 법원은 제동을 거는 분위기다. 노동자의 건강과 관련된 정보는 영업비밀로 취급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지난 1일 법원은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삼성전자 온양공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유해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은 6개월마다 작업환경을 검사하고, 결과를 지방고용노동청 등에 보고해야 한다. 보고서에는 유해물질 사용실태, 작업공정, 작업자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삼성전자 온양공장에서 근무한 이모씨의 유가족은 2016년 고용부에 보고서 공개를 요청하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고용부는 "이씨는 중간관리자로 라인 밖에서 근무해, 보고서와 직접적 관련이 없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1심 법원과 달리 2심 법원은 영업비밀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보고서가 있어야, 어느 곳에서 유해인자에 노출됐는지 알 수 있다”며 “노동자의 생명, 신체와 직결된 정보는 공개되어야 할 필요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지난해 서울고등법원은 2013년 삼성전자 화성공장 불산 누출 사고 당시 고용부의 보고서에도 비슷한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정부도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해 관련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영업비밀 심사제도를 연중 도입할 방침이다. 기업은 생산공정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유해성과 주의사항을 MSDS에 기재해야 한다. 하지만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기재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했다는 게 노동계의 설명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지난해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3건 발의해,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와 법원의 이 같은 추세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산업재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당사자가 재해와 업무연관성을 입증해야 한다. 직업병의 경우 업무연관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작업장 내 유해인자를 확인하려면, 사업주의 협조가 필요하다. 하지만 사업주가 공개를 거부하는 경우가 허다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종란 노무사는 "작업환경보고서가 공개되면 직업병을 판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영계 관계자는 "화학물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며 "첨단산업으로 갈수록 보안이 중요한데, 영업비밀 심사제도는 불필요한 규제"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삼성 직업병 피해자 모임인 반올림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