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첫 여성 변호사 출신 대법관인 박보영(사법연수원 16기) 대법관이 6년 임기를 모두 마치고 29일 퇴임했다. 박 대법관은 이날 열린 퇴임식에서 국민의 기대와 법제도 사이의 차이를 지적하면서 법원의 끊임 없는 소통의 노력을 강조했다.
그는 변호사 시절 자신이 만난 의뢰인들과의 일을 떠올리면서 “국민은 재판을 통해 단순히 권리를 실현하려는 데 그치지 않고 억울함까지 해소하기를 바라고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면서 “법원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심판자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려움을 알아서 해결해 주는 정의의 구현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법관은 “그러나 현실적인 법제도는 법원이 심판자의 역할만 하도록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어, 국민이 바라는 재판이 구현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물리적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사건이 증가하는 것도 개별 사건에 충분한 심리를 하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국민의 기대와 법제도 사이의 차이 때문에 구체적인 사건에서 억울함이 풀려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법원에 대한 신뢰가 심각하게 저하된다”며 “법원과 국민간의 끊임없는 소통 노력을 통해서 법원의 임무와 법원 구성원의 헌신적 노력, 재판과정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얻어야 비로소 법원이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법관은 대법원의 사건에 대한 부담이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고 우려했다. 그는 “최고법원인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무엇이 정의인지를 밝히는 것을 주된 책무로 하지만 밀려드는 사건으로 대법원이 그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며 “대법관, 재판연구관의 희생과 사명감에 기대기에는 이제는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법치주의 실현에 그만큼 차질이 생기게 된다”면서 “국민의 권리구제에 소홀함이 없으면서도 대법원이 본연의 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제도개선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법관은 김영란, 전수안 대법관에 이은 역대 세 번째 여성대법관이다. 2011년 1월3일 취임했다. 임기 동안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던진 첫 판결을 많이 선고한 대법관이다. ‘여성 할례’를 우리나라에서 처음 난민요건으로 인정한 대법관이다. 뇌종양에 걸린 삼성 반도체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를 처음 인정한 대법관도 박 대법관이다. 이 외에 자신의 개를 공격한다며 전기톱으로 이웃의 개를 죽인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에게 동물보호법위반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판결, 자녀를 가질 수 없는 성염색체 이상과 불임 등의 문제는 혼인취소의 사유가 될 수 없다는 판결, 장애인의 신체 기능을 대신하는 의족(義足)이 근무 중 파손된 데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판결 등이 그가 내린 첫 대법원 판결이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실시된 통합진보당 당내경선 온라인 전자투표에서 대리투표를 한 통진당원들에게 유죄 확정판결을 내리면서 당내 경선 대리투표는 위법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이 서로 다른 기업 집단임을 확인해 금호 오너 형제의 다툼을 종식시켰으며, 여의도순복음교회로 하여금 비상장법인 주식을 적정가격보다 비싸게 매입하게 해 약 131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 등으로 기소된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와 아들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에게 유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이른바 ‘BBK 주가조작 사건' 피해자들에게 김경준(50)씨와 옵셔널캐피탈이 일부투자금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으며, 이른바 '도가니 사건'의 실제 범인인 광주인화학교 행정실장에게 징역 8년의 확정판결을 내렸다. 정치 지망생이 국회의원 선거일 1년 전에 자신의 명함 300장을 지역구 내 차량 앞유리에 끼워 자신을 알린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무죄를 확정했고, 보수 시민단체인 대한민국어버이연합(어버이연합)을 인터넷 매체 칼럼에서 ‘망나니’, ‘아귀’로 표현했다가 고소를 당한 영화평론가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국가정보원이 주도한 희대의 '간첩사건 증거조작' 사건에서 유우성씨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 및 탈출, 간첩, 회합 및 통신'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하면서 증거 조작을 기획▲실행한 국정원과 검찰에게 완패를 안겼다. 2015년8월 불법 정치자금 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해 전원합의체가 징역 2년을 선고했을 때, 이인복·이상훈·김용덕·김소영 대법관 등과 함께 반대 의견을 냈다.
2009년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 때 해고된 노동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는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했으며, 2013년 2월 이른바 '안기부X파일'에 언급된 '삼성그룹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한 혐의로 기소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의 사건을 맡아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박보영 대법관이 임기 6년을 마무리하고 29일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대법원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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