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키로 한 데 이어, 상호출자금지와 채무보증금지 제도까지 축소하기로 해 ‘경제검찰’로서의 공정위 기능을 사실상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공정위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완화를 위해 다른 회사 출자액을 순자산의 40%이내로 제한하는 출총제를 없애기로 했다. 대신 재벌 스스로 출자현황을 공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출총제 폐지로 현재 출총제 적용을 받고 있는 삼성, 현대·기아차, GS, 현대중공업, 한진, 금호아시아나 등 7개 그룹 소속 25개 기업은 앞으로 자유롭게 출자를 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대규모 기업집단 규제는 41개 그룹을 대상으로 하는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 금지, 부당내부거래 규제 정도만 남게 됐다.
공정위는 또 외환위기 이후 만들어진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 금지 적용대상 기업도 자산 2조원에서 5조원 정도로 완화하기로 했다.
이로써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 금지 적용을 받는 대규모기업 집단 수도 33.8%가량 줄어들게 됐다.
공정위는 상호출자현황 등을 수시로 공시하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감시 감독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정위에서 상호출자 등을 엄격하게 제한해도 기업들이 편법을 동원하는 상황에서 공시제도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상호출자는 가장 악성적인 출자형태로, 가공의 자산으로 기업을 무한증식 시키는 제도이기 때문에 상호출자금지 완화는 곧 기업의 지배구조와 시장질서의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정위는 상호출자 금지제도의 적용을 받는 기업을 줄이자는 것이지, 제도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미국 유럽연합(EU) 영국 독일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조차도 자산규모와 상관없이 원칙적으로 상호출자를 철저히 규제하고 있다.
채무보증금지제도 완화도 논란의 여지가 크다. 계열사간 채무보증은 신용평가에 따른 대출이 관행화된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형태다. 금융당국 또한 신용평가를 통해 대출을 해줄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향과도 역행한다.
공정위는 게다가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현장조사나 직권조사를 법 위반 혐의가 상당하거나 소비자 피해가 큰 경우에만 한정하기로 해, 공정위의 조사기능이 사실상 무력화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공정위의 이 같은 정책은 기업에 대한 사전규제를 대폭 폐지하는 대신 사후감독을 철저히 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기업들의 불법부당행위가 드러났을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나 집단소송제 같이 경영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 장치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또한 재벌폐해가 사라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철폐는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높아 향후 법 개정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진규 온라인뉴스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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