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최근 법원이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근무한 노동자의 다발성경화증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면서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이 인정한 삼성전자 직업병 종류는 8가지로 늘었다. 2007년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 사례 이후 10년 동안 유방암·뇌종양 등 직업성 암과 다발성신경병증 등 희귀질환이 산재로 인정됐다.
31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법원 등에 따르면 다발성경화증으로 투병 중인 이모(33)씨에 대해 서울고등법원 행정2부(재판장 김용석)는 지난 26일 산재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다발성경화증을 산재로 인정하지 않은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항소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1심에서는 산재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씨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입사해 2년 동안 일하다 2005년 그만뒀다. 반도체 생산라인 카파 공정에서 오퍼레이터로 근무했다. 반올림에 따르면 이씨는 퇴사 2개월 뒤 실신하는 증상과 감각저하 증상이 나타났다. 2008년 다발성경화증 확진 판정을 받은 뒤 현재 하반신이 마비된 상태다. 근로복지공단은 이씨의 산재 신청에 대해 "업무 연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불승인됐다. 이에 이씨는 2013년 소송을 냈다.
2심 재판부는 이씨가 업무 중 유기용제에 노출된 점과 교대근무를 한 점이 다발성경화증이 발병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햇빛 노출 부족으로 비타민D가 결핍된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봤다.
법원은 삼성전자 반도체·LCD 생산라인에서 발생한 직업병 중 희귀질환까지 산재로 인정하는 추세다. 다발성경화증은 인구 10만명 당 3.5명이 발병하는 희귀질환이다. 반올림에 따르면 삼성전자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노동자 중 4명이 다발성경화증에 걸려 투병 중이다. 지난 2월 서울행정법원은 삼성전자 LCD 생산공정 오퍼레이터로 근무하다 다발성경화증에 걸린 노동자 김모씨에 대해 산재로 인정했다. 법원은 밀폐된 공간에서 보호장비 없이 작업하다 유기용제와 화학물질에 노출돼 질병이 발병했다고 판단했다.
2007년 기흥공장에서 근무한 황유미씨가 사망한 뒤 10년 동안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로 인정된 질병은 8가지로, 직업성 암은 백혈병·뇌종양·난소암·유방암, 혈액 질환은 재생불량성 빈혈·악성림프종, 희귀질환은 다발성신경병증·다발성경화증이다. 산재 피해자 13명 중 8명이 숨졌다. 피해자들은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삼성전자 반도체·LCD 생산라인에서 근무했다.
삼성전자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최근 산재 소송에서 인과관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도 개연성만 있으면 인정해주고 있는데, 한 번도 산재로 인정되지 않은 질병까지 산재로 인정되고 있다"며 "삼성전자의 작업환경이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고, 법원에서도 삼성의 작업환경이 안전하지 않다는 게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백혈병 보상위원회를 자체적으로 설립해 직업병 피해자를 보상하고 있다. 현재까지 160명의 피해자가 보상을 신청해 120명에게 보상금이 지급됐다. 반올림은 직업병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사과를 요구하며 600여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반올림과 삼성전자는 각각 변호인단을 통해 대리교섭을 진행 중이지만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진전이 없는 상태다.
문재인정부 출범으로 10년 동안 이어온 반올림과 삼성의 갈등이 해결될지도 관심사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반올림이 지난달 정책 협약식을 체결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다면 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대책 마련을 추진할 의향이 있나'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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