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하면서 은행권도 고민에 빠졌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이미 정규직 전환이 90% 이상 이뤄졌지만, '무늬만 정규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준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정규직과 임금이나 복지여건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데, 현 정부의 비정규직 철폐 정책에 맞물려 노동 불균형 해소가 은행권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을 보인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 비정규직 철폐에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면서 은행권 비정규직 향배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중은행 대부분은 이미 대규모의 정규직 전환 작업을 마쳤다고 알려졌다.
지난 2007년 우리은행이 노사 합의를 통해 약 3100명을 한꺼번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2011년 신한은행(약 1000명), 2014년 국민은행(약 4200명), 2015년 외환은행(현 KEB하나은행, 약 1800명) 등 주요 은행 대부분이 비슷한 절차를 거쳤다.
하지만 외형상으로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지만 이름만 정규직일 뿐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은행별로 비율은 다르지만 정규직 전환 직원의 20~40%가 무기계약직 직원에 해당된다. 전자공시시스템 상의 정규직으로 인식되는 '기간 정함이 없는 근로자'에는 무기계약직도 포함된다.
또한 무기계약직 형태가 아니더라도 기존 정규직 직원과 명칭, 월급 등 구분되는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한 경우도 있다. 한 시중은행의 경우 1000여명 규모를 정규직 전환했지만, 일반 행원직군의 하위 직군을 신설하며 선을 그었다.
다른 은행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비용 부담이 급증하는 문제 때문에 은행들은 비정규직을 100% 정규직화하기보다는 '창구영업(RS)직군' '준정규직' 등 별도의 직군을 만들어 사실상 임금과 승진에 차별을 둬왔다.
정규직 전환에 따른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짜낸 것인데 새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시대' 정책에 맞추려면 이들의 임금과 승진에도 차별을 두기 어렵게 됐다.
실제 기업은행의 경우 노조의 반발 확산으로 작년부터 대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기업은행의 준정규직(3000여명)은 전체 직원의 30%에 달한다.
작년 말 취임한 김도진 기업은행장은 '차별없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준정규직을 비롯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지시했다. 노사 협의를 거치면 이르면 연내 정규직 전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기업은행 사례를 보더라도 이름만 정규직으로 분류된다고 생각하는 직원들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하면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국책은행이 정부 정책을 따르면 나머지 은행들도 눈치를 보다가 시늉이라도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은 비정규직 이슈 뿐만 아니라 하반기 공채 등 일자리 창출에도 신경을 써야하는 형편이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정부 정책은 따라야겠고 비정규직 이슈도 신경이 쓰이는데 일자리까지 늘리라고 압박하면 선택지가 없을 듯하다"며 "하반기 신규 채용 규모와 연계해 기존 직원들의 처우 문제가 노사 차원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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