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고은 기자] 우리나라의 재벌구조 개혁 논의는 1980년대 본격 시작됐다. 1960~70년대 특정 재벌에 기댄 중앙집권적인 개발시대를 지나 사회 전반에 민주화 열망이 커지고, 정경유착 등 특권에 취한 재벌의 병폐가 서서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별로 추진한 재벌개혁 논의 과정을 살펴보면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이던 1981년 도입된 공정거래법을 빼놓을 수 없다. 1987년에는 여기에 출자총액제한, 상호출자금지, 지주회사설립금지, 금융·보험회사의 의결권금지 등의 보다 구체적인 재벌규제 조항이 포함됐다. 재벌개혁의 틀은 갖췄으나 말뿐이었다. 정권 스스로가 정경유착의 핵으로 등장하며 대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다. 재벌로부터 598억원을 모금했던 '일해재단 사건'이 대표적이다.
버머 아웅산 테러 당시 희생된 유가족을 위로하고 지원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일해재단은 전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으로 판명나면서 국회에서 '5공 비리 청문회' 대상이 되기도 한다. 1988년 겨울 5공 비리 청문회에 출석했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발언을 보면 당시 정권과 재벌의 관계가 보다 명확히 드러나기도 한다.
정 명예회장은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해 일해재단의 기금 모금 과정에 대한 질문에 "1차는 날아갈 듯이 냈고, 2차는 이치가 맞으니까 협력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자발적으로 냈다고 보고, 그 다음에는 내라고 하니까 그저 내는 것이 편안하게 산다는 생각으로 냈다"고 답변했다.
1987년 개헌으로 경제민주화 정신이 헌법에 명시됐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헌법 119조2항이 도입됐다. 이런 토대 위에 세워진 노태우 정권 당시에는 재벌기업들의 문어발식 다각화가 문제로 대두됐다. 업종전문화를 유도하고 부동산 투기의 주범으로 꼽힌 비업무용 토지 매각 등 조치를 시도했다. 그러나 노태우 전 대통령의 5000억원대 비자금 조성 사건이 터지는 등 정경유착의 고리는 여전히 공고하게 이어졌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재벌개혁을 위한 상징적 과제들이 추진됐다. 정부 주도의 중앙집권적 경제성장 방식이 아닌 민간의 자발적 참여와 창의력을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으려던 '신경제 100일 계획'으로 재벌에 대한 견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며 정치권과 재벌 간의 음성적인 정치자금 거래 통로를 없애려는 노력도 시도됐다. 그러나 재벌의 저항이 강했고 결과적으로 외환위기가 닥쳐오면서 재벌개혁 과제는 흐지부지됐다.
외환위기 수습의 책임을 지고 등장한 김대중 정부에서는 기업 간 구조조정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재벌개혁의 5+3 원칙이 제시됐다. 5원칙은 ▲경영투명성 ▲채무보증해소 ▲재무구조개선(부채비율 200%) ▲핵심역량집중 ▲지배주주 책임성 강화 등이며, 3원칙은 ▲금산분리 강화 ▲간접상호출자축소 ▲세습경영방지(변칙상속방지) 등을 말한다.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정권과 재벌 간 긴장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지만, 결과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시인하며 재벌개혁의 높은 벽을 실감하게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기업가 출신 대통령답게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이 다수 추진됐다. 경제민주화 과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지주회사규제 완화 ▲금산분리 완화 ▲법인세율 등 감세 등이 패키지로 추진됐다. 임기 중반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꾀하는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하기도 했지만 실효성은 낮았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가 재조명됐다. 포문을 연 쪽은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이었다. 2011년 7월 당내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를 설치하면서 공정경쟁과 참여경제, 분배정의를 3대 축으로 하고 출총제 부활, 법인·소득세 최고소득 구간 신설 등을 중심으로 하는 10대 핵심정책을 발표했다.
한국의회발전연구회의 '경제민주화 관련 논의의 쟁점' 논문은 "경제민주화 논의가 정국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에서 경제민주화 노선을 경제와 복지정책의 전면에 내세우면서부터였다"며 "선거를 앞두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당으로 인식돼 온 민주당과의 이념적 거리를 좁히며 중도층을 겨냥한 포석으로 평가받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당시 새누리당은 ▲경제적 약자의 권익 보호 ▲공정거래 관련법의 집행체계 개선 ▲대기업집단 총수일가의 불법 및 사익편취행위 근절 ▲기업지배구조 개선 ▲금산분리 강화 등의 큰 주제 하에 개별적인 경제민주화 정책 추진을 약속했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함께 국회에서는 경제민주화의 구체적 입법 과제들이 추진됐다. 지난해 1월 청와대와 관계부처들은 '경제민주화 성과 참고 자료' 등을 배포하며 대통령 취임 후 경제민주화 국정과제 20개 법안 중 13개를 입법 완료했으며, 7개가 국회 계류 중이거나 입법 준비 단계로 경제민주화 약속을 이행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야권과 시민단체에서는 '자화자찬, 아전인수'라고 혹평했다. 당시 경제정의실천엽합회 "대선 공약집에 따른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은 18개인데 박근혜 정부가 주장하는 경제민주화 법안은 20개로, 공약 18대 중 4개는 20개 법안 목록에도 넣지 않았다. 대부업 관리감독 강화 등은 경제민주화 중점법안으로 둔갑시켜 이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평가의 자의성을 비판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감사위원 분리선출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법무부가 입법예고까지 한 뒤 재계의 반발로 법안 발의를 미뤘던 2013년을 경제민주화 공약의 수명이 다한 때로 지목하기도 한다. 경제민주화의 빈자리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경제활성화' 구호로 이내 대체됐다. 경제민주화를 내세웠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결국 탄핵, 구속 수감됐으며 재벌 총수들과 함께 재판을 앞두고 있다.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4대 재벌 개혁에 집중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문 대통령은 ▲집중투표표제·전자투표·서면투표 의무화 ▲감사위원·이사 선출 제도 개선 ▲소액주주 권리 강화를 위한 주주대표소송 단독주주권·다중대표소송제·다중 장부열람권 제도화 ▲재벌 중대 경제범죄 '무관용 원칙' 대통령 사면권 제한 등을 약속하고 있다.
지난 2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제3차 포럼에 참석한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고은 기자 atninedec@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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