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광표기자] "드르륵~드르륵." 좁은 다세대주택 골목가에 빼꼼히 열려있는 문 틈 사이로 미싱 소리가 울린다. 화답이라도 하듯 원단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들이 가파른 비탈길을 요란하게 오간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는 수레를 단 오토바이도 자주 눈에 띈다. 10일 오후 찾은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봉제거리. 900개에 달하는 봉제공장이 모여 있는 이 거리는 1970년대 섬유를 한국의 대표적인 수출산업으로 일궜던 곳이다. 최근에도 하루 30만벌이 넘는 옷을 만들어내는 봉제산업의 메카다.
하지만 이곳의 일상에도 '사드'의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앉고 있다. 매일 치열하게 살아가며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내도 쏟아지는 일감에 행복했던 삶의 터전이었지만,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일감이 크게 줄어들면서 생계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재봉틀 소리가 멈춰가는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봉제거리. 사진/이광표 기자.
1960~1970년대 동대문 근로자들의 주거공간이었던 창신동은 평화시장에서 운영되던 봉제공장들이 임대료 상승을 피해 옮겨오면서 거대한 봉제 공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동대문 의류산업의 원동력이 바로 창신동 봉제공장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10년 사이 1만7000여명이던 창신동의 봉제사는 현재 1만여명만 남았고 공장도 100여개가 문을 닫아 900여개가 남았다는 게 이곳 사람들의 전언이다.
이처럼 침체기에 빠져 있던 상황에서 중국의 경제보복까지 더해지니 피해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체감 한파가 더욱 크다. 수십년 생업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창신동에서 30년 넘게 봉제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65)씨는 "재봉틀 소리가 더 요란하게 들렸던 시절이 있었는데 몇 년전부터 거래하던 의류 업체 대부분이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이나 동남아로 이전하면서 창신동도 침체기를 맞았다"며 "요즘엔 사드 탓인지 중국쪽 오더도 뚝 끊겨 일감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 11월부터 동대문 의류시장 쪽 창고에 통관에 막혀 반송된 물품이 쌓이기 시작했다고 한다"며 "동대문이 죽으니 100% 하청받다시피 하는 봉제업자들의 일감이 씨가 말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걱정했다. 그러면서도 김씨는 "이곳 봉제거리에 일하는 사람들은 내로라하는 대한민국 재단, 미싱 고수들"이라며 "아마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은 창신동표 옷을 입었을 것"이라고 자부심을 잊지 않았다.
원단을 나르느라 여념이 없던 또 다른 봉제공장 직원 정모(51)씨는 "이 정도 원단은 평소 주문량의 3분의 1도 안된다"며 "우리가 거래하는 시장 일대는 중국 보따리상 매출이 큰 데 사드 문제가 불거진 후 다 막혔고, 그래서 우리가 피해보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우리 말고도 동대문 의류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창신동 일대 봉제업자들도 눈에 띄게 일감이 줄었다"며 "작년 말부터 30% 가량은 문을 닫았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봉제거리 곳곳에는 문을 닫은 공장이 여럿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런 영세한 곳들은 구체적인 피해 조사도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여성 토탈 의류를 생산하는 한 봉제공장 사장은 "우리 공장은 중국과 거래가 많은 온라인 사업자 매출이 대부분인데 이대로 가다간 여기 일대 모든 공장은 올스톱 된다"며 "영세 소규모 사업자들이 주로 종사하는 동대문과 봉제공장이 연쇄 파산을 맞게 될 지경"이라고 전했다.
공교롭게 이날은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한 날이었다. 창신동 봉제거리의 민심도 대통령 파면 이후의 정국을 궁금해하는 분위기였다. 중국쪽 일감 비중이 크다는 한 봉제공장 사장은 "대통령이 파면됐으면 이 정권에서 추진한 사드배치도 다시 검토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우리는 생업이 달려있는데 새 대통령은 미국 눈치만 볼 게 아니라 소시민의 생계도 돌아볼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서울 창신동 봉제거리에 위치한 한 봉제공장에서 일감이 줄어들어 홀로 남아 있는 직원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이광표 기자.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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